실체 없는 창조경제, 더 모호한 창조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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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업무보고]수신료 인상 주장만, 방송 공정성 ‘뒷전’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 이하 방통위)가 17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기조인 창조경제에 발맞춰 2014년을 ‘창조방송’ 구현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난 지금도 창조경제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방통위가 들고 나온 ‘창조방송’의 개념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당장 방통위의 업무보고 내용을 접한 기자들조차 ‘창조방송’의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을 가장 먼저 던졌다. 이에 브리핑에 나선 김대희 상임위원은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창조경제를 중심 테마로 해서 우리(방통위)가 도울 수 있는 것들은 돕겠다는 취지로, (현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에 부응해 방송 차원에서 뜻을 맞춰 가겠다는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답했다.

하지만 방통위가 이날 창조방송을 구현하기 위한 방안들로 제시한 △KBS 수신료 인상 △방송광고 제도 개선 △UHD(초고화질) 방송·지상파 다채널 방송(MMS) 가시화 △방송채널의 해외 진출 등의 내용은 구체성이 떨어질 뿐 아니라 방통위 결정만으로 추진할 수 없는 내용들이거나, 현재도 충돌하고 있는 방송사업자들 간의 이해를 조율하지 못한 내용들이다.

또한 방통위는 창조방송을 위해 방송 신뢰성을 제고하겠다며 내달 예정된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공적 책임을 중점 심사하고 막말 방송 등에 대한 심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 언론계 안팎에서 요구하고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및 독립성 확보 방안 등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 ⓒ방통위
창조방송 하겠다면서 수신료 인상 등 방통위 권한 밖 방안 제시

방통위는 이날 오전 청와대 영빈관에서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와 함께 ‘2014년도 창조경제 분야 방통위 업무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경재 위원장은 “올해를 창조 방송통신의 원년으로 삼아 한류를 재도약시키고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방송 분야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국민 신뢰를 받는 창조 방송통신 실현’을 비전으로 내세우며 이를 위한 3대 정책 목표로 △창조방송 구현과 세계화 △방송 신뢰성 제고 △국민행복을 위한 이용자 보호 등을 제시했다.

우선 창조방송 구현과 세계화를 위해 방통위는 △KBS 수신료 인상과 방송광고제도 개선 △시청자미디어센터 설치 전국 확대 △국내 애니메이션 활성화 △중소·벤처기업 광고비 할인 △UHD(초고화질) TV·지상파 다채널(MMS) 가시화 △방송채널 해외진출 등의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KBS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방통위는 “현재 방송시장은 경기침체로 인한 광고 축소와 인터넷으로의 광고 이동, 33년째 동결된 KBS 수신료로 인해 극심한 경영난에 봉착해 콘텐츠 제작능력이 약화, 즉 한류 추동력이 하락 중”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수신료 현실화로 공영방송 재원을 안정시키고, 축소된 KBS 광고(연 2100억 원 규모)를 타 방송사의 콘텐츠 역량 강화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KBS 수신료 인상의 가능성이 현재로선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12월 KBS는 현재 월 2500원인 수신료를 4000원으로 인상하고 광고도 연간 2100억 원 줄이는 내용의 인상안을 방통위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60일 이내에 검토의견서를 첨부한 인상안을 국회로 넘겨야 하는데, 야당 추천 상임위원 2인은 KBS이사회에서 여당 추천 이사들끼리 통과시킨 수신료 인상안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이미 밝힌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위원장을 포함한 방통위 여권 추천 상임위원 3인끼리 의결해 인상안을 국회로 넘긴다 하더라도 민주당의 벽을 넘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민주당 소속의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위원들은 KBS이사회 여당 추천 이사들이 수신료를 인상안 처리를 강행하자 즉각 성명을 내고 “국민의 공감과 납득 없는 인상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들은 수신료 인상의 전제조건으로 △보도 공정성 및 제작 자율성 강화 △국민부담 최소화 원칙 △수신료 사용의 투명성 제고 등을 제시하고 있다.

방통위는 KBS 수신료 인상과 함께 축소한 광고를 타 방송사의 콘텐츠 역량 강화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 또한 확실치 않다. 이는 지난 1월 15일 방통위 주최로 열린 수신료 인상안 의견수렴 토론회에서 지적된 부분으로, 문철수 한신대 교수(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는 “그간의 연구들과 광고시장의 현실을 감안할 때 KBS에서 줄인 광고가 MBC와 SBS로 옮겨 갈 것이라 확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재 지상파 방송은 인터넷에 광고매출 선두 자리를 내준 상황이다. 제일기획의 매체별 총 광고비 통계에 따르면 지상파 TV의 광고 매출(1조 9307억 원)은 2012년을 기점으로 인터넷(1조 9540억 원)에 역전됐으며, 2013년 또한 1조 8800억 원으로 인터넷(2조 800억 원)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문 교수는 “지상파 광고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 속 KBS에서 포기한 물량이 MBC나 SBS가 아닌 다른 매체로 흘러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이 경우 결합판매에 의존하는 중소방송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KBS 수신료 인상과 함께 방통위는 창조방송 구현을 위해 “획일적·경직적인 방송광고 제도의 개선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방통위는 지상파 방송에 대한 광고총량제 도입과 간접광고와 협찬 규제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며, 중간광고를 허용하기 위한 논의 또한 진행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에 광고총량제와 중간광고 등을 허용하기 위해선 방송법 시행령 개정이 필요하다. 시행령 개정의 주체인 방통위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악화된 재원 구조를 만회해 양질의 콘텐츠 제작을 할 수 있도록 중간광고 허용 등이 시급하다는 지상파 방송과 한정된 광고시장 재원이 지상파 방송에 쏠릴 수 있다며 반대하는 유료방송 사업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분위기만 살피는 모양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논란만 쌓이고 사업자들의 이해 다툼 속 시청자 주권에 대한 논의는 실종되고 있다.

창조방송의 개념조차 모호한 상황에서 수신료 인상처럼 방통위의 결정만으로 추진할 수 없는 사안들과 방송사업자들의 이해 조율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사안들을 창조방송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내세우는 게 적절하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대희 상임위원은 “물론 수신료 인상은 우리(방통위)가 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지만 우리 역할을 최대한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나. 국회에서 결정하니 손을 놓고 있는 건 바른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방송광고 제도 개선과 관련해선 “전반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것”이라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는데 그쳤다.

방통위가 창조방송 구현을 위해 제시한 방안에는 지상파 UHD 방송 활성화도 있지만, 관련 일정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위한 700㎒ 주파수 대역의 방송용 할당 문제 또한 미래부와 함께 논의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라는 게 방통위의 설명이다.

라봉하 기획조정실장은 “UHD 방송을 하려면 주파수가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700㎒의 용도가 정해져야 하고 기술표준을 정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만큼 미래부와 구성한 연구반을 통해 결정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언제까지 일정을 정해 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가 UHD에 투자하는 게 국가 경제와 산업적 측면에서 중요한가 등의 문제를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즉, 관련 일정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지상파 UHD 방송은 방통위 소관의 문제로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면 주파수 문제를 미래부와 논의해 언제까지 결정을 내리겠다고 확실히 밝힐 필요가 있다”며 “지금처럼 UHD 방송 가시화에 힘쓰겠다는, 하겠다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모호한 얘기에 대통령이 과연 흡족해 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방통위는 창조방송 구현과 세계화를 위한 방안으로 방송채널의 해외 진출도 제시했다. 방통위는 “최근 한류에 대한 각국의 견제로 인해 개별 방송 프로그램 진출이 한계에 봉착함에 따라 아리랑TV, KBS월드 등 방송채널의 해외진출을 지원해 한류 확산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관련 사례로 오는 20일부터 아리랑TV가 미국 디렉TV를 통해 서비스 된다는 사실을 전하며 향후 남미·유럽·중동·동남아 등의 주요방송으로의 진출 또한 희망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의 한류는 가수 싸이의 사례처럼 방송이 아닌 유튜브 등의 뉴미디어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방송채널 중심의 한류 확산 방안이 얼마나 실효성을 담보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방송 신뢰성 제고? 보도·제작·편성 자율성 확보 언급조차 없어

창조방송을 위해 방통위가 제시한 정책 목표 중에는 방송의 신뢰성 제고도 있다. 이와 관련한 우선 방안으로 방통위는 “철저한 재승인 심사 등 종편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노력”을 제시했다. 내달 종편 재승인 심사에서 공적 책임을 중점 심사하고 사업계획의 철저한 이행 점검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 투자 확대를 유도하는 한편, 막말 등에 대한 심의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통위는 벌써부터 종편에 대해 ‘봐주기 심사’에 들어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방통위가 마련한 종편 재승인 심사 기준은 방송 공정성과 기획·편성 등 핵심 평가항목에서 과락 기준을 60%에서 50%로 후퇴시켰을 뿐 아니라, 전체 9개 평가항목 중 7개를 심사위원의 주관이 개입되는 비계량 항목으로 구성했다. 또한 종편 사업자 승인 당시부터 문제된 종편 사업자의 재무 능력이나 주주 구성의 적절성 등도 심사 기준에서 제외했다.

또 방통위가 지난해 11월 의결한 종편에 대한 ‘2012년도 방송평가’ 결과는 재승인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종편들은 1000점 만점의 재승인 심사에서 350점을 차지하는 방송평가 항목에서 80%에 가까운 득점을 해 과락 기준(40%)을 가볍게 넘겼다. 문제는 종편들이 그간 50%가 넘는 재방송 비율과 시사·보도 편중 등이 문제가 되면서 방통위로부터 시정명령까지 받았음에도 방송평가의 ‘방송편성 제규정’ 항목에선 4사 모두가 만점(30점)을 받는 등 현실과 다른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는 점으로, 언론계 안팎에선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왔다.

방통위는 종편의 막말 방송 등에 대한 심의도 강화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여야 추천 6대 3 구조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구조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실효성에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장 방심위는 정부와 여당에 비판적인 내용을 방송한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손석희 앵커의 JTBC <뉴스9> 등에 대해선 ‘중징계’를 밀어붙이면서도 야권 인사들을 ‘종북’으로 매도한 TV조선 <뉴스쇼 판>에 대해선 ‘문제없음’과 행정지도성 조치인 ‘의견제시’에 그치는 결론을 내는 등의 ‘이중심의’로 직원들로부터도 “편향 심의”(1월 27일, 언론노조 방심위 지부)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상파 방송의 공적 책임 제고와 관련해선 “수신료 현실화를 통해 KBS를 광고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참공영방송으로 확립할 것이며, 다문화 가정과 소수자·사회적 약자 배려, 지역문화 발전, 한류확산 관련 프로그램 제작 확대 등을 도모하겠다”고 밝혔다. EBS에 대해서도 수신료 인상을 통한 배분 확대를 전제로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지상파 다채널 실시 등 채널 확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송 신뢰성 제고를 위한 방안으로 방통위는 장애인 시청 접근권 보장을 제시하며 “수화화면 크기를 조정할 수 있는 스마트 수화방송을 개발해 청각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청자 모두 편하게 TV를 시청할 수 있도록 하고, 2017년까지 모든 저소득층 장애인에게 방송수신기(자막·수화)를 보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밖에도 “브라질 월드컵 등 주요 스포츠 행사에서 공동중계와 순차편성을 하도록 해 국민의 시청권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방통위는 그러나 현재 야당과 언론·시민단체들이 방송의 신뢰성 제고를 위해 우선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제작·편성 자율성 확보에 대한 부분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지상파 방송의 공정성 회복을 위한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이미 ‘봐주기 심사’의 토대를 마련한 종편 재승인 심사를 앞세워 방통위가 방송 신뢰성 제고를 언급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방통위가 이 문제(방송의 신뢰성 제고)에 의지가 없다는 점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상파 방송의 또 다른 관계자는 “업무보고 내용을 보면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들에 대한 점검이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외부의 요구들에 대한 고려는 없이 그저 방통위가 해온 것을 하겠다고 밝히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업무보고 시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는데 “한 달 뒤 새롭게 출범할 3기 방통위가 2기 방통위에서 마련한 비전대로 움직여야 할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새해 정부부처 업무보고 일정 속에 있다 하더라도 (대통령이) 유연함을 발휘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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