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의 눈] 승리자 시시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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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의 눈] 승리자 시시포스
  • 염지선 KBS PD
  • 승인 2014.02.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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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하를 따라서>(Chasing Ice)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수년 간 빙하가 녹아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고정카메라를 통해 추적하며 지구온난화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주인공인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사진작가 제임스 베이로그는 세 번의 무릎 수술을 받아가면서까지 극지를 종횡무진 움직이면서 이 위대한 기록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 이 외로운 투쟁에 대해 작가는 말한다. 미래에 자녀들이 지구온난화가 진행될 때 아버지는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면 떳떳하게 노력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관련한 또 하나의 다큐멘터리, <아일랜드 프레지던트>(The Island President). 해수면 상승 후 사라질 운명에 처한 몰디브의 대통령을 취재한 내용으로, 그가 선진국들을 상대로 전지구적 탄소배출량 감소 합의를 이루어내려는 외로운 투쟁에 대한 것이다. 몰디브 대통령 모하메드 나시드는 30년 독재 정권 하에서 투옥과 망명 생활을 반복하며 탄압을 받던 언론인 출신으로, 몰디브 최초의 민주 정권을 수립한 정치인이다. 민주화 투사였던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지구온난화 저지를 국가 어젠다로 설정하면서 단순한 국내 정치인에서 세계적인 지도자로 성장한다. 그는 말한다. 결국 몰디브가 바다 밑으로 사라질지언정 올바른 일을 하다가 사라져야 한다고.

▲ 다큐멘터리 영화 ‘빙하를 따라서’ (왼쪽), ‘아일랜드 프레지던트’포스터
두 다큐멘터리 주인공의 공통점은 이들이 낙관적인 염세주의자들이라는 점이다. 해수면 상승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상임을 이들은 알고 있다. 제임스 베이로그는 국가나 산업이 변할 때는 이미 너무 늦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나시드 대통령은 결국 과거 독재정권 세력의 군부 쿠데타로 하야하고 다시금 감옥에 갇히게 되지만, 그 이전까지는 탄소배출량 감소에 정권의 총력을 다 한다. 자녀에게, 국민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싶은 이들은 결코 올려놓지 못할 바위를 밀고 있는 시시포스(Sisyphos)처럼 꿋꿋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카뮈는 소설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행복한 시시포스를 상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무런 의미도 희망도 없는 노동을 하던 시시포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상황에 대해 의식하고 있었고 자신의 비참한 존재 상황을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기에, 이런 부조리를 알고 있기에 그는 승리자라고 말했다. 그의 운명은 그의 손에 속해 있으며, 그의 바위는 그의 소유물인 것이다. 그는 자신이야말로 하루하루를 지배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 정상을 향한 투쟁, 다만 이것만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가득 채우기에 충분한 것이다.

언론사 파업이 합법적이었다는 판결에도 불구하고 파업 참여 조합원에 대한 징계에 앞장섰던 안광한 전 부사장이 MBC사장으로 취임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박창신 신부 관련 뉴스를 전한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JTBC <뉴스9>에 대한 징계를 내렸고, 심지어 2년 전에 방송된 <KBS스페셜> ‘정율성’편에 대해서도 주의 처분을 내렸다. 언론계는 아직도 언제나처럼 시절이 하 수상하다.

▲ 염지선 KBS PD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인은 절뚝거리는 극지대 사진작가처럼, 다시 감옥으로 돌아간 몰디브 전 대통령처럼, 그리고 다시금 바위에 달라붙어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취재하고 보도하고 연출하고 방송해야 한다.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같이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언론인의 숙명이 아니겠는가. 이런 부조리를 알고 있기에 우리는 승리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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