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이 못 보는 ‘프라임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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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 장애인의 날 기획] 장애인의 방송 접근권①

장애를 가진 사람은 누구나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평등하게 방송에 접근하고 정보를 접할 권리가 있다. 방송사들은 사회 통합과 공적 책무의 일환으로 수화, 자막, 화면해설 등 장애인 방송을 내보내고 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날이 갈수록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장애인이 스마트 미디어를 이용하는 데 진입장벽은 턱없이 높은 상황이다. <PD저널>은 오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두 차례에 걸쳐 장애인의 방송 접근권과 스마트 미디어 접근권에 대한 진단과 과제를 싣는다. <편집자 주>

한 장애인 활동가는 지난달 27일 지상파 3사에서 생중계된 공직선거정책 토론회에 자막만 나오고, 수화가 제공되지 않은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날 토론회 주제는 장애인과 밀접한 ‘복지·교육’ 분야였지만 정작 장애인의 참정권은 뒷전으로 밀려난 셈이다.

지방선거장애인연대가 정당과 후보자에 대한 정보에서 장애인이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에 전달하면서 일단락됐지만 선거 때마다 비슷한 문제가 반복돼 장애인 방송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12년 기준 장애인으로 등록된 250만 명 가운데 시각 장애인과 청각 장애인은 각각 25만 명으로 총 50만 명에 달한다. 장애인의 60%가 ‘TV시청’으로 여가를 보낸다고 답할 정도로 장애인에게 TV는 정보 격차를 줄이는 수단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인 셈이다.

▲ 장애인방송시청권수호를위한연대가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장애인 방송의 의무를 완화하는 고시 개정안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민중의 소리

따라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는 지난 2011년 7월 방송 소외계층의 방송 접근권 제고를 위해 방송법을 일부 개정해 방송사에 장애인 방송을 의무화했다. 방송법 제69조 8항에 따라 방송사는 수화, 자막, 화면해설 방송 등 장애인 방송을 편성해야 한다.

같은 해 12월 제정된 ‘장애인 방송 편성 및 제공 등에 관한 고시’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는 현행법에 따라 모든 방송 프로그램에 의무적으로 자막을 제공해야 한다. 또 화면해설을 전체 편성시간의 10%, 수화방송을 5%까지 제공해야 한다.

종합편성·보도채널은 지상파 방송의 절반 수준이다. 고시에 따르면 종편·보도채널은 전체 편성 시간에서 자막 50%, 화면해설 6%, 수화 3%를 제공해야 한다.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와 방송채널(PP) 중 고시에 지정된 사업자는 자막 45%, 화면해설 3~5%, 수화 2%(2014년 기준)에 해당하는 장애인 방송을 편성해야 한다.

이처럼 장애인의 방송 접근권은 법적으로 보장돼 있지만 현실과의 간극은 크다. 방송사들이 장애인 방송 의무 편성 비율을 준수하고 있지만 편의적이다. 방송사의 제작 여건과 제작비 부담 때문에 수화나 화면해설 방송은 이른 오전·오후나 심야 시간대에 몰려있거나 재방송 위주 프로그램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또 장애인의 프라임 시간대 프로그램에 대한 접근도가 떨어진다. 일례로 방송사의 메인뉴스뿐 아니라 밤 10시대에 편성된 미니시리즈 역시 자막 방송 외에 수화나 화면 해설 방송을 내보내지 않고 있다.

김철환 장애인정보문화누리 정책실장은 “방송 접근권이 개선되는 상황이지만 화면 해설이 낮방송과 주말 재방송에 몰려 있는 부분을 개선하고, 케이블 방송에서 수신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자막이 누락되는 부분에 대한 기술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김영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사무국장도 “장애인이 많이 시청하지 않은 시간대에 수화·화면해설 방송을 내보내 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특히 정치적 이슈가 불거질 때 자막이 제대로 나오지 않거나 단축시킨 내용으로 전달돼 장애인은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방송사는 장애인을 사회구성원의 일부로 여기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의 방송 접근권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만큼 지상파 방송사도 공적 책무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실제 방송사가 처한 제작 환경은 녹록지 않다. ‘생방송 드라마 제작 시스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 상황에서 시각 장애인을 위한 화면해설 방송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방송사의 제작 시스템 변화와 함께 정부가 장애인 방송 정책을 견인하고, 정책의 실효성을 위해 면밀하게 제도를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장애인 방송을 위한 지원책은 방송발전기금 중 장애인 방송 제작을 위한 예산이 유일하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에 따르면 방통위의 방송발전기금 중 장애인 방송 제작을 위한 예산은 2011년 27억 3000만원, 2012년 27억 6000만원, 2013년 37억 4000만원, 2014년 40억 8000만원으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유료방송 위주로 예산이 편성되면서 장애인 방송에 대한 지상파 방송사의 부담은 가중되고 있다. 종편은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예산 배정액 중 30%를 웃도는 교부금을 받지만 지상파 방송사는 기존 20~25%에서 올해 16~18%가량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시청 점유율이 높은 지상파 방송사에 교부되는 비율이 매년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상파 관계자들은 지상파 방송사가 전국 커버리지와 공적 책무를 지닌 만큼 정부의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각 방송사가 의무 편성 비율에 맞추기 위해 방송 제작비로 연간 17억원을 투입하는데 해가 갈수록 각 사가 체감하는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지상파 관계자는 “정부는 장애인의 방송 접근권 보장을 사업자에게만 떠밀어놓고, 종편은 초기 사업자라서 도움을 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며 “정부는 예산을 주지 못한다고 할 게 아니라 장애인 방송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예산 확보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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