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회 맞았지만 박수받지 못하는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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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체제 이후 ‘PD수첩’ 명맥 흔들… 조용한 ‘축하’

MBC의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이 지난 1일 방송으로 1000회를 맞았다. 햇수로 24년째. <PD수첩>은 국내 최장수 시사 프로그램이다. 여전히 파헤쳐야 할 불편한 진실이 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데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PD수첩>의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게 안팎의 평가다.

<PD수첩>은 1990년 5월 8일 케이블TV 안테나 제조회사의 횡포를 고발한 ‘피코 아줌마 열받았다’편을 시작으로 ‘PD저널리즘’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 저널리즘의 생산자는 기자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PD수첩>은 PD들이 직접 아이템을 발굴, 취재해 사회적 의제를 만드는 데 기폭제 역할을 해왔다.

또 <PD수첩>은 ‘시대의 목격자’를 자처하듯 성역 없는 비판으로 명성을 떨쳤다. 1990년대 사회 비리나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고발하는 성격이 강했다. 1999년에는 방송을 앞두고 신도들이 <PD수첩>이 방영되는 MBC 주조정실을 점거해 방송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에 작동하는 권력을 비판하고 치부를 드러내는 데 집중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과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 1000회 특집 '돈으로 보는 대한민국' ⓒMBC

2000년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변칙 상속 문제, 2002년에는 미군 전차와 두 여중생의 죽음, 2005년에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 2010년에는 검사와 스폰서,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문제를 고발해 사회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2010년 김재철 전 MBC 사장이 부임한 이래 권력과 자본을 비판해온 <PD수첩>은 권력의 눈엣가시가 됐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아이템이 불방 조치되기 일쑤였고, 제작진은 징계로 몸살을 앓았다.

“시사 프로그램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는 내부의 저항에도 경영진은 시사교양국을 해체하고, 170일 파업 당시 석연치 않은 이유로 <PD수첩> 작가 6명과 간판 PD인 최승호 PD를 해고했다.

이로써 <PD수첩>은 프로그램 신뢰도 조사에서도 자꾸만 뒷걸음질 쳤다. <시사IN>이 매년 진행한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 <PD수첩>은 2010년 ‘신뢰하는 프로그램’ 2위(11.8%)였지만 2012년과 2013년 2%대로 하락했다. <PD수첩>은 파업 종료 이후 재도약의 계기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조용기 목사의 비리 의혹 보도 등으로 시청률 5%대 이상으로 반등을 꾀했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PD수첩>이 탐사 보도의 선구자의 역할을 해왔지만 이명박 정권 들어서면서 김재철 전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PD수첩>의 가치나 역할을 망가뜨리고, PD로서의 사명을 발휘할 만한 기회들을 빼앗았다”며 “탐사 저널리즘에 대한 노하우나 능력을 지닌 제작진이 배제되면서 <PD수첩>만의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인 관점과 명맥이 흔들리고 있다”고 평했다.

▲ 20주년 특집 ‘대한민국, 안녕하십니까’ 토크 콘서트 녹화 현장. ⓒMBC

상황이 이렇다보니 <PD수첩> 제작진은 상징성이 있는 ‘1000회’를 맞았는데도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다. MBC는 “<PD수첩>은 한국 사회를 들여다보는 ‘정직한 목격자’가 되고자 성역을 두지 않고 한 자리를 지켜왔다”고 의미를 짚는 데 그쳤다. 제작진도 이전처럼 대대적인 특집보다 ‘돈으로 보는 대한민국’(1·8·15일)을 내보내는 것으로 1000회 특집을 대체하고 있다. 돈이 모이고, 분배되고, 쓰이는 단면과 중산층의 현주소를 밀착 취재한 3부작이다.

기존에 방영된 10주년 특집 ‘<PD수첩>, 10년을 말한다’에서 44명의 PD들이 모여 ‘PD 저널리즘’을 살펴보고, 15주년 특집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향하여’와 20주년 특집 ‘대한민국, 안녕하십니까’라는 토크 콘서트에서 <PD수첩>의 역사를 되짚어보던 때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20주년을 맞아 송일준, 한학수 PD 등 굵직한 사건을 보도한 PD 9명의 육성을 담은 책 <PD수첩-진실의 목격자들>이 출간되기도 했다.

<PD수첩>을 연출했던 MBC의 한 중견 PD는 “국내 최장수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1000회를 조용히 보내는 작금의 상황을 보면 <PD수첩>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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