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들이 말하는 지상파 심야 예능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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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채널·고령화 고민…“경직된 편성과 과도한 심의 개선돼야”

심야 예능 프로그램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면서 지상파 예능PD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매체 다변화로 시청률이 신통치 않기 때문. 예능 황금기 시절 20%대를 넘나들던 시청률은 10%대 이하로 내려앉은 지 오래다. 현재 방영되는 KBS <대한민국 토크쇼 안녕하세요>, <우리동네 예체능>, <해피투게더3>, MBC<황금어장-라디오스타>, <나 혼자 산다>,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등의 시청률도 한 자릿수에서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더구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인 JTBC와 CJ E&M 계열 tvN 등이 ‘19금’을 넘나드는 예능 프로그램들을 내놓으면서 화제성에서도 밀리고 있다. 물론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유료방송채널보다 여전히 높긴 하지만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고 있는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위기감을 느낀 지상파는 최근 새 심야 예능을 투입하는 등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아직 성적이 신통치 않다. 지상파 심야 예능 프로그램의 위기에 대해 실상을 현장에서 뛰고 있는 예능PD들에게 들어봤다.

▲ MBC <나 혼자 산다>, <별바라기>,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KBS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사진 좌측 상단부터 시계방향) ⓒKBS, MBC, SBS

■ 지상파 고령화·다채널 ‘직격탄’= 예능 PD들의 가장 큰 고민은 젊은층이 TV를 잘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청률의 기본 토대인 ‘본방 사수’부터 줄어들고 있다. 시청률조사회사 TNmS가 발표한 올 상반기 가구당 TV 시청 시간량은 지난해 상반기와 비교해 하루 평균 8시간 3분에서 7시간 57분으로 6분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예능의 시청 타깃인 젊은층은 ‘본방’보다 모바일, 인터넷, IPTV, 케이블 등을 통해 자신의 구미에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보면서 중장년층이 TV 주요 시청층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지상파의 한 PD는 “지상파 시청층 자체가 고령화되면서 젊은 감각과 트렌드가 반영돼야 할 예능이 나오기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월화, 수목으로 이어지는 드라마의 시청 효과가 심야 시간대 예능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시청률 견인 효과’도 옛말이다. 심야 예능은 밤 10시대 드라마에 뒤이어 황금 시간대에 ‘띠 편성’돼 있지만 예전만큼 효과를 누리기 어렵다. 한 PD는 “과거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보고 예능까지 연결해서 봤다면 요즘은 다르다”며 “온라인 커뮤니티, 유투브 동영상에 웃음거리가 넘쳐나는데 웃자고 굳이 예능을 찾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후발주자들의 과감한 반란= 종편 채널 등장과 케이블 방송의 약진도 지상파 심야 예능이 주춤거리는 데 한몫했다. 지상파의 또 다른 PD는 “채널과 프로그램이 다양해지면서 시청률도 분산되고 있다”며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여러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몇 개월 사이 시청률이 5%가량 빠졌다”고 전했다.

지상파 심야 예능이 흔들리는 틈을 타 종편과 케이블 방송의 공세가 거세다. 지상파 출신 PD들이 대거 이적한 JTBC와 CJ E&M은 지상파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과감한’ 아이템으로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19금 연애 토크’를 선보인 JTBC <마녀사냥>, 정치와 콩트, 토크를 버무린 tvN <SNL 코리아>, JTBC <썰전>에서 나온 발언은 다음날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한 지상파 PD도 “종편과 케이블 방송에서 정치와 섹스 코드를 다뤘다는 건 예능에서 할 만한 아이템은 다 나온 것”이라며 “지상파에선 같은 소재를 메이킹해도 정제하는 경우가 많고, ‘지상파다워야 한다’는 자기 검열로 비슷한 포맷에 그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케이블 예능에서 정착된 10부작 안팎의 시즌제의 경우 트렌드 변화를 빠르게 반영해 젊은층에게 소구력이 높다. 오디션 열풍을 지핀 Mnet<슈퍼스타 K>(15부작)는 내달 8일 시즌6 방송을 앞두고 있고, tvN<꽃보다 할배>(8부작) 시즌2에 이어 스핀오프 격인 <꽃보다 누나>에 이은 <꽃보다 청춘>도 내달 방영된다. <지니어스>(12부작)도 시즌3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에 비해 지상파 심야 예능은 편성의 경직성 때문에 시즌제 예능 편성이 쉽지 않다. 또 안정적인 시청률을 추구하다 보니 실험적인 시도에도 인색하다. 광고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예능 프로그램의 방송 시간을 80분까지 늘려 제작진의 부담도 가중된 상황이다.

한 지상파 PD는 “종편과 케이블은 시즌제로 예능을 편성하지만 지상파에서는 시청률이 잘 나오는 예능을 정규 편성해 투자액을 회수하는 구조”라며 “정규 편성처럼 지속적으로 수익 창출이 어려운 시즌제를 라인업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상파 내부 현실을 전했다.

또 다른 PD도 “신생 채널은 허물고 세우기 쉽지만, 지상파는 채널 경직도가 있다”며 “심야 예능 중 장수 프로그램이 많았던 것도 프로그램을 마구 폐지하기보단 지켜보자는 분위기 때문이다. 관리자 입장에선 프로그램을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 JTBC <썰전>, <마녀사냥>, tvN <꽃보다 할배>, <지니어스2> ⓒJTBC, tvN

■ ‘미디어 정글’에서의 생존법은= 그렇다고 지상파가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심야 예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KBS는 장수 프로그램 <사랑과 전쟁> 자리에 내달 8일부터 ‘국민 MC’ 유재석을 앞세운 <나는 남자다>를 편성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MBC도 MC 강호동을 내세운 <별바라기>를 정규 편성해 내보내고 있다.

지상파 예능 PD들은 심야 예능의 시청률과 화제성이 흔들리는 건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지상파 PD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올드 미디어’로 취급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처럼 PD들은 위기의식과 함께 변화에 대한 목마름도 있다.

또 다른 PD는 “종편과 케이블로 시청자들이 빠지고 난 뒤 지상파의 고정 시청률은 하향 평준화될 것 같다”며 “PD 개별적으로 열심히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새로운 포맷과 아이템 발굴이 필요하겠지만 국지전이 되진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지상파 예능에 대한 동등한 심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상파는 케이블과 같은 방송 심의 규정을 적용받지만 지상파이기에 엄격한 잣대로 심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한 PD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비대칭적 심의가 과할 때가 있다”며 “지상파로서 역할은 알지만, 아이템의 맥락을 간과하고 비속어나 자막을 과도하게 검열하는 행위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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