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기 위해 우리는 카메라를 들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립PD 6명, 세월호 영상 기록 공동작업

24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100일째 되는 날이다. 그 사이 계절은 봄에서 여름으로 바뀌었지만, 유가족의 시계는 사고 당일인 4월 16일에 멈춰있다. 사망자 294명. 실종자 10명.(24일 기준) 유가족 순례단은 세월호 진상 규명과 실종자의 조속 귀환을 염원하며 땡볕 아래 750㎞ 도보 순례를 하고, 또 다른 유가족 20여 명은 답보 상태인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 중이다. 이처럼 세월호 희생자를 잊지 않고, 비극적인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이들의 눈물을 기록하는 이들이 있다. 박정남, 이승구 독립PD다.

<W>, <세계는 지금>등 국제분쟁 지역 전문 박정남 PD와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 중국 쓰촨성 대지진,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을 취재한 재난 전문으로 손꼽히는 이승구 PD, 그리고 10~15년 차 독립 PD 4명(제작진 요청으로 이름을 열거하지 않는다) 등 6명은 ‘세월호 기록자’를 자처해 공동 작업에 나섰다. “아이들이 잊힐까 봐 두렵다”는 유가족 앞에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숨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이들은 누군가 끈질기게 기록하지 않으면 가라앉고 마는 사고의 실체를 건져내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었다.

▲ 박정남 PD(좌)와 이승구 PD(우)ⓒPD저널

기록의 시작은 사고 직후인 4월 17일 새벽 다섯 시에 걸려온 전화 한 통에서부터였다. 이 PD는 “조카가 단원고 2학년인데 구조 작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도와 달라”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 실종자 가족들이 ‘전원 구조’ 오보로 분통을 터뜨리는 상황을 지켜본 독립PD들은 사흘 뒤인 20일 카메라를 메고 세월호 참사 현장인 진도로 달려갔다.

이들은 기록 영화를 만들자는 데 뜻을 같이했다. 다만 모든 기록은 가족의 동의를 우선으로 하고 수익성을 앞세운 영화를 제작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따라서 제작비도 후원금 대신 사비로 충당하고 있다. 프로듀서를 맡은 박봉남 PD가 다른 작품을 위해 모아 둔 자금과 대출을 일부 받아 현재까지 제작비 2500만원을 투입한 상태다.

지금은 유족들을 ‘다윤이 엄마’, ‘장환이 아빠’라고 부를 정도로 이들 PD들과 가까워졌지만, 사고 초기만 해도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컸던 터라 어려움이 많았다. 가족들에게 촬영 동의를 얻는 게 쉽지 않았다.

“대책위 측에 수차례 찾아가 가족들을 설득했죠.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촬영분을 폐기하겠다는 약속도 했어요. 가족들과 신뢰를 쌓는 게 먼저였으니까요.”(이승구 PD) 박 PD와 이 PD는 어렵사리 대책위의 동의를 얻어 각각 진도 팽목항과 가족 숙소인 실내체육관 촬영에 나섰지만 현장에서 선뜻 카메라를 들기 어려웠다.

언론의 속보 경쟁과 정부의 더딘 구조작업에 가족들의 상처가 깊어진 탓이다. 이에 박 PD는 비슷한 또래였던 실종자 부모들과 가끔 술잔을 기울였다. 같은 부모로,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그들의 처지가 남 일 같지 않아서다. “취재진은 체육관 2층, 가족들은 1층에 머무는데, 어느 날 실종자 가족 한 분이 ‘1층에 내려와서 함께 지내자’고 하더라고요. 어떨 땐 우리 PD들더러 촬영 안 할 거냐고 재촉할 정도가 됐죠.”(박정남 PD)

이들은 또 실체육관에서 함께 먹고 자면서 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에 마음이 무거웠다고 한다. 딸의 대학 등록금을 차곡차곡 모아뒀지만 “더 이상 필요가 없게 됐다”는 한 아버지, 사고 직전 이사 간 집에 처음 자기 방이 생겨 좋아했던 아들 모습이 눈에 밟혀 이민 가버릴까 했던 마음을 접었다는 한 부모의 타들어 간 속내를 들을 때가 ‘기록자’로서 쉽지 않은 순간이었다는 것이다.

이 PD는 “부모들이 카메라에 대고 무엇이든 얘기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는데 막상 PD로서 카메라를 들고 무언가를 묻는다는 게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저 진실을 지켜보는 관찰자로서 조용히 기록해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 이승구 독립PD가 진도 팽목항 앞바다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을 벌이는 바지선 위에서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촬영하고 있다. ⓒ이승구 PD

이들은 세월호 사고를 기록하면서 정신적 충격에 빠진 유가족과의 인터뷰를 자제하고 있다. 오히려 사고 발생한 이후 은폐된 사실과 각종 의혹을 둘러싼 증언들을 모으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부가 발표한 각종 브리핑, 생존자와 사고 목격자, 그리고 구조작업에 참여한 잠수사의 증언을 모으는 등 광범위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또 세월호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지난달 22일 세월호 내 CCTV 화면을 저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상저장장치(DVR)를 사고해역에서 수습한 과정을 기록하는 등 현장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등 사고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아이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꿈을 펼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어요. 미래를 보고 외치는 거죠. 사고에 대한 진상이 규명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박정남 PD)

석 달 넘게 세월호 사고 현장을 누비면서 또 다른 ‘기록자’인 국내 언론의 민낯을 이들은 목격하기도 했다. “사고 초기만 해도 국내 언론들이 과도한 속보 경쟁을 벌이면서 유가족들의 불신을 자초했다면 요즘은 취재 자체가 뜸해지면서 유가족들은 점점 더 불안감을 느끼고 있죠.”(이승구 PD)

이처럼 세월호 참사 100일을 앞둔 지금 세월호 유가족들은 언론의 무관심을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박 PD는 “세월호 소식이 뉴스 뒤로 밀려나는 상황을 바라본 가족들은 참사 100일을 기점으로 사고가 잊힐 거라는 생각이 많다”며 “만약 지상파가 세월호 참사 200일, 300일 때 편성해준다면 죽기 살기로 프로그램을 만들 텐데 과연 지상파가 끝까지 관심을 가질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내년 4월까지 실종자와 유가족 곁에 있을 예정이다. 그 사이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겠지만, 카메라의 전원을 켜고 현장을 묵묵히 기록하겠다는 그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어 보인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