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언론 받아쓰기, 균형 잃은 국제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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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점령 37일째…“분쟁의 실체적 진실보다 무기 홍보의 장”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6월 자국 청년 3명이 납치 살해되자 지난 7월 7일부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했다. 팔레스타인인 1939명이 사망했고 이중 어린이 447명, 민간인이 최소 1380명이다. 이스라엘 측은 민간인 3명과 군인 64명 등 총 67명이 숨졌다. (9일 기준,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 자료)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공격을 국제법상 범죄행위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언론들은 서구 언론 보도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전쟁의 참상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보다는 공습 과정을 게임 하듯이 보도하거나 언론이 신형 무기에 대한 홍보의 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은 갈등과 반목의 역사를 60년 넘게 이어오고 있지만 분쟁 소식을 전하는 국내 언론 보도 행태는 서구의 주류 언론 받아쓰기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언론 대부분은 속보성 기사를 위해 서구 언론에 기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일 KBS <미디어 인사이드>의 ‘언론은 왜 팔레스타인을 외면할까’편에서 이 같은 사실이 보여진다.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된 지난달 7일부터 25일까지 18일간 주요 5개 일간지 뉴스 105건을 분석한 결과 신문들이 인용한 외신의 70% 이상이 미국·유럽 등 서구 언론(AP·NBC·CNN(미국), BBC(영국), AFP(프랑스))에 치중했다. 이 중 팔레스타인 현지 매체(<마안뉴스>·<미들이스트아이>)는 <한겨레>·<경향신문>이 인용한 3%에 그쳤다.

서구 언론 받아쓰기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들 언론 대부분이 유대인 자본과 지식인들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여주듯 CNN·NBC 등 미국 방송사들은 이스라엘을 비판한 자사 기자들의 현장 철수를 지시하는가 하면 영국 공영방송인 BBC도 역사적 맥락 없이 팔레스타인의 로켓 공격을 ‘보복’으로 언급해 공정보도 촉구 시위에 직면하기도 했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와 시민들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공습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행진을 벌이고 있다. ⓒ팔레스타인평화연대

이러한 현실은 서구 언론의 시각으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PD는 “국내 언론들이 친(親) 이스라엘 위주의 미국 언론과 팔레스타인에 대한 동정적 시선과 신파조로 보도하는 유럽 언론 보도를 받아쓰는 건 반복적인 보도 행태”라며 “이러한 소모적인 기사 생산은 국내 취재진의 인프라나 역량을 키우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이렇다 보니 국내 언론 보도는 친(親) 이스라엘 보도로 귀결된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10일 ‘피가 피를 부르는 보복전…텔아비브 주민들 지옥문 또 열리나’라는 기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조직인 하마스가 이스라엘 전역에 로켓포 수백 발을 쐈다는 소식을 전했을 뿐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이번 기회에 하마스의 근간을 무너뜨리겠다는 전략을 이미 세웠기 때문”이라는 서구 언론의 분석을 그대로 따랐다.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활동가는 “정작 이스라엘이 국제법상 명백한 팔레스타인 영토를 점령하고 있다는 얘기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내 언론 기사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두고 ‘보복전’이나 ‘교전’, ‘충돌’이라고 표현해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언론들은 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이 고조된 지난달 11일 이스라엘의 무기 ‘아이언 돔’을 홍보하는 데 주력했다. MBC <뉴스데스크>의 경우 ‘최첨단 요격시스템 아이언 돔 전투 양상 바꿨다’라는 리포트에서 “위력이 뛰어나 팔레스타인과의 전쟁은 하나마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인들은 마치 게임을 관전하듯 환호한다”라고 전했다.

뎡야핑 활동가는 “아이언 돔의 성능을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구매를 부추기는 보도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12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8일 교전’ 당시 아이언 돔 국내 도입을 검토했으나 지형적 조건과 비용 문제로 보류했다. 하지만 지난 10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 방산업체 라파엘사 관계자는 “한국이 아이언 돔 구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한국의 아이언 돔 구매 가능성을 시사했다.

무엇보다 국내 언론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국제 분쟁에 대한 한국의 입장과 이를 바탕으로 국제 정세를 판단하는 준거점을 제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쓴 소리가 나온다. 한국은 지난달 23일 유엔인권이사회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에 대한 군사 공격 중단과 인권침해조사위원회 구성을 내건 결의안 표결에서 기권해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탄 목소리를 방송 3사와 보수 일간지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거나 단신 처리했다.

이 같은 보도 행태를 두고 분쟁 전문인 지상파의 한 PD는 “국제 이슈가 천대받는 국내 저널리즘의 현 상황”이라고 요약했다. 지난 2003년 이라크전 반전 시위가 전지구적 이슈로 급부상했을 당시 국내 언론에서도 분쟁 이슈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자 특파원 파견 확대 필요성이 논의됐지만 인력과 비용 부담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실정이다. 국제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다룬 MBC 국제시사프로그램 <W>도 지난 2010년 시청률 잣대로 폐지 수순을 밟았다.

분쟁 전문 지상파 PD는 “언론사들은 돈과 인력이 많이 드는 분쟁 지역 현장 취재를 꺼리는데다가 분쟁 이슈 자체가 열독률과 시청률을 높이는 이슈도 아니라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분단국가로서 국제 정세 파악이 무엇보다 중요한데도 국제 뉴스에 무감각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상파 PD도 “외신을 통한 담론이 아닌 우리 시각으로 바라본 국제 분쟁 사태의 본질을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이 많이 사라져버렸다”며 “<W>가 지구촌 이슈를 대한 시청자의 안목을 넓혀줬듯이 국제 분쟁 이슈에 대한 관심을 살리는 통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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