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 소년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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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청소년기획 6부작 ‘세상 끝의 집’ 김동일·김범수 PD

대한민국 유일의 소년교도소인 ‘김천소년교도소’. 그곳에 있는 220여 명 소년수들. 폭행, 절도, 방화치사, 말만 들어도 섬뜩한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그곳에 있다. 꽃처럼 환하게 피어나야 할 나이에 푸른색 수의(囚衣)는 그들이 가진 ‘죄’의 무게다.

그들에게 세상은 격자무늬다. 쇠창살 사이, 높다란 담 너머로 겨우 보이는 바깥세상. 그림자조차 쇠창살에 갇힌 아이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곳에 있을까. 그들은 어떤 미래를 꿈꿀까.

지난 7월 6일부터 일요일마다 방송된 KBS 청소년기획 <세상 끝의 집> 6부작은 제목 그대로 세상의 끝으로 내몰린 아이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그렸다. 1부 ‘첫 만남/장기수와 할머니’ 편(7월 6일), ‘2부 징벌/아버지와 아들’ 편(7월 13일), 3부 ‘시험/날개’ 편(7월 20일), 4부 ‘교도관/엄마’ 편(7월 27일), 5부 ‘밥/유데모니아’ 편(8월 3일), 6부 ‘어떤 가족/출소’ 편(8월 10일) 등 6편에 걸쳐 나온 아이 하나하나는 어른들이 짊어져야 할 또 다른 삶의 무게로 다가왔다. <PD저널>은 지난 11일 연출을 맡은 김동일 PD와 김범수 PD를 만나 제작 뒷얘기를 들어보았다.

▲ 철창으로 둘러싸인 김천소년교도소의 모습. ⓒ화면캡처
촬영 내내 소년수들의 깊은 상처와 고민을 마주한 제작진의 마음은 무거웠다. 프로그램을 기획한 김동일 PD는 제작 내내 자신을 따라다니는 ‘무력감’에 힘겨웠다고 했다. 인터뷰 중에도 김 PD는 간간이 한숨을 내쉬며 먼 곳을 응시했다.

김 PD는 “이들의 이야기를 세상 밖에 알리지만 과연 이들이 돌아갈 세상은 이들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을까. 방송이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계속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고 토로했다.

김범수 PD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아이들이 다시 세상 속으로 돌아오더라도 전과자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뛰어넘기 어려운 게 현실이죠. 우리는 죗값을 치르고 나온 아이들에게 제대로 살아갈 기회를 주고 있는가에 관해 묻고 싶었어요. 그 아이들은 ‘괴물’이 아닌,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죠.”

세상을 등진 아이들의 종착지라 할 수 있는 소년교도소는 청소년기 방황과 갈등에서 비롯된 비극적인 행위의 마지막 지점이다. 제작진은 극단의 장소에서 이들이 현재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최초의 원인을 되짚어보고 싶었다.

법무부의 허가가 난 후 김천소년교도소를 찾았지만 매번 촬영대상, 장소, 인터뷰 내용, 카메라 수 등은 다시금 교도소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촬영 중에도 교도관이 배석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지켜봤다. 취재진의 휴대전화 반입 마저 허락되지 않아 외부와 연락이 되지 않는 일도 빈번했다. 이처럼 제약이 일상화된 곳이 ‘교도소’였다.

김동일 PD는 소년수들을 만나기 전까지 ‘보통 아이들이 아닐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처음 아이들과 마주한 스태프 모두가 긴장했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가진 경계와 불신의 벽은 점차 사라졌다. 그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소년’이었다.

지난해 11월. 교도소에 카메라가 들어오자 또래 여느 아이들처럼 그들의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아이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나서는 아이도 있었고, 부모에게 KBS에서 취재를 왔다며 인터뷰 허락을 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제작진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얼굴 공개를 한 아이도 있었는데 아이와 부모의 동의에 따른 것이다.

▲ KBS <세상 끝의 집>을 연출한 김동일 PD(사진 오른쪽)와 김범수 PD. ⓒPD저널
아이들의 일상은 매일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계 바늘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성인과 달리 노역 대신 제과·제빵, 용접, 자동차 정비기술 등을 배운다. 악기를 배우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거나 사고를 치면 ‘징벌 거실’이라 불리는 독방에서 최대 45일을 지낸다. 기술자격증 합격 소식에 기뻐하며, 어느 날 사회 속에 던져졌을 때 잘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도 한다.

부모의 폭력과 방임, 무관심, 부모의 이혼 등 암울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힘겨워했던 아이들은 미래에는 평범한 일상, 평범한 가정을 꾸리기를 원한다.

그러나 일상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죄의식,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스스로에 대한 징벌이기도 하다. 두 명의 사망자를 낸 방화, 반복된 절도, 폭행 등 죄를 지은 소년수들은 후회와 죄책감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서도 교도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리적으로 불안한 아이들을 위해 교도소 내에서 ‘유데모니아’(부끄러움 없이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이란 뜻의 고대 희랍어)란 심리 프로그램을 병행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을 불편해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죗값을 치러야 할 범법자인데도 그곳이 오히려 따뜻한 안식처로 보인다는 것이다. 왜 우리가 그들의 일상을 봐줘야 하는 거냐는 글도 인터넷 게시판에 심심찮게 올라왔다.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기는 하나 그들은 ‘소년수’이고, ‘가해자’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비판은 예상됐던 바다. 그래서 방송을 만드는 내내 제작진도 고민이 깊었다. 김범수 PD는 “방송 전에 고민을 많이 했다. 주변에도 이걸 방송에 내보내는 게 도덕적으로 타당한지 계속 물었다”며 “얼굴 공개에 동의한 아이들을 방송에 내보내는 것 역시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상처받지 않아야 했기에 철저하게 검토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레이션도 최대한 줄이고 편집을 하면서도 감정적인 멘트도 최대한 자제했다. 내레이션도 평균 15초 정도 나가는 기존 다큐멘터리와 달리 7초 정도의 짧은 분량을 내보냈다.

다큐멘터리의 화자인 배우 정찬과 가수 이지훈도 불편해질 수 있는 지점에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했다. 특히 내레이션까지 맡은 정찬은 방화치사로 13년형을 받은 장기 복역수 김환수 군에게 “누가 시켰든 누가 협박을 했든 네가 움직인 거야. 네가 선택한 거야. 냉정하게 얘기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소년수와 소년, 죗값과 동정심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준다.

▲ 소년수들이 제빵기능사 시험을 치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화면캡처
제작진이 진짜 말하고자 한 것은 단순히 그들의 일상이 아니다. 제작진은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집단인 가족, 그리고 공동체의 의미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진다. 또 소년수를 바라보는 세상 사람들의 선입견에 대해 돌직구를 날린다. 도움을 요청하는 목소리를 외면하고 그들을 세상 끝으로 몰고 간 어른들의 책임을 묻고 싶기도 했다. ‘유데모니아’란 말처럼 소년수들이 부끄러움 없이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을 찾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방황의 시작점이자 아이들이 마음의 결핍을 겪었던 곳은 다름 아닌 가족이에요. 가족은 사회의 최소단위이죠.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을 방기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해요.”(김동일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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