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교황 방한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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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교황 방한이 남긴 것
정운현· 언론인
  • 정운현· 언론인
  • 승인 2014.08.18 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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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동안 한국사회의 키워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언론보도는 말할 것도 없고 가는 곳마다 교황 얘기가 단연 화제였다. 방한 일정 내내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어록’까지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마치 교황이 한국사회의 구세주라도 되는 듯 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미사에는 전국에서 100만여명이 참석했으며, 그들 중 일부는 밤을 새웠다고 한다. 지난 89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했을 때와는 또 달랐다. 대체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해 이토록 열광한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우선, 교황의 권위주의를 내려놓고 그가 성직자의 참 모습으로 다가옴을 들 수 있다.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이다. 전통적으로 격식과 권위를 중시해온 가톨릭은 교황과 관련한 물건들을 황금으로 휘황찬란하게 치장했다. 역대 어느 교황도 이를 거부감 없이 사용해 왔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달랐다.

그는 역대 교황들의 황금 스카프를 거부하고 황금 왕좌를 나무 의자로 교체했으며, 또 교황의 반지를 금에서 은으로 바꾸었다. 또 루비와 다이아몬드로 된 십자가 대신 쇠 십자가를 사용했으며, 교황청의 레드카펫도 치웠다. 그는 교황의 권위주의를 과감히 내던져버렸다.

▲ 4박 5일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친 프란치스코 교황이 18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노컷뉴스
대신 그는 본분인 신부의 모습을 강조했다. 겉옷 안에는 일반 신부복을 항상 착용했으며, 교황의 전통적인 붉은 구두를 거부하며 이전부터 신던 검은 구두를 계속 신었다. 이렇게 한다고 해서 교황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작년 3월 제266대 교황으로 취임한 이후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의 제 역할을 강조해 왔다. 예수의 참 사랑을 실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것이 교회의 본문임을 강조해왔다.

지난 15일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서 교황은 “비인간적인 경제모델을 거부하자”,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여야”,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자”, “희망은 절망의 정신에 대한 해독제” 등을 강조하며 인간성 회복을 외쳤다. 한국 사회는 물론 이 시대 전 인류가 귀담아 들어야 할 얘기를 그는 쏟아낸 것이다.

끝으로 이번 방한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상처 입은 이들을 보듬어 안았다. 광화문 미사 때는 세월호 참고로 세상을 등진 유민이의 아빠 김영오 씨를 찾아가 손을 맞잡고 위로하였으며, 실종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명하며 그 가족에게 위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특히 실종자 가족 가운데 한 분으로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달포 동안 전국을 도보 순례한 바 있는 이호진 씨는 교황으로부터 특별 세례를 받기도 했다. 12억 가톨릭 신자의 수장인 교황이 단 한 사람을 위한 세례식을 연 경우는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한다. 이씨는 “교황의 세례는 세월호 유족 모두에게 준 것”이라며 감사했다.

4박 5일 방한 일정 마지막 날인 18일 그는 마지막 공식행사로 서울 명동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했다. 이 자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7명을 비롯해 쌍용차 해고 노동자,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 용산 참사 피해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이 미사에 초대됐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폭력으로부터 상처 입은 사람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교황은 마지막까지 ‘낮은 곳’을 비추며 이들을 위로했다. 이 역시 그다운 행보라고 할 수 있다.

▲ 정운현·언론인
교황의 방한으로 한국 사회의 묵은 숙제들이 해결된 것은 없다. 그는 문제 해결사가 아니다. 그러나 그의 방한은 많은 한국인들에게 정신적 위로와 함께 큰 용기를 주었음이 분명하다. 훌륭한 지도자를 갈망해온 한국인들에게 그의 방한은 오랜 가뭄 끝에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한국의 정치인, 종교인 등 소위 ‘지도자’들은 부끄럽고 참담한 심정으로 교황의 방한이 남긴 의미에 대해 되돌아봐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소통과 진솔한 대화를 통한 참사랑 실천을 밤을 새워 배워야할 것이다. 그는 천주교 수장으로서가 아니라 이 시대의 살아있는 성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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