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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과의 대화

지난 18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TV를 통해 「국민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긴박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민에게 현재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던 「국민과의 대화」는 일단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53%대의 시청자가 지켜봤고 90%가 넘는 시청자가 신뢰할 수 있었다고 발표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된다.「국민과의 대화」가 성공적이었다면, 그 요인은 무엇이었을까.두 시간 내내 TV를 지켜보면서 내린 결론은 우선 대통령 당선자가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국민과 대화하고 함께 가겠다는 자세를 보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의 장막에 가려 장관조차 접견하기 어려웠다는 YS통치스타일, 아니 이승만 대통령 이래 우리 역대 대통령이 각하로 상징되는 독선과 권위에 빠져 있었던 점을 기억해내면 분명 이번 시도는 신선한 것이었다.다음으로는 나라의 지도자가 비전과 목표를 확실하게 제시하고 그것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이해를 구하는 의사결정과정의 투명성과 공개성을 앞세운 것이다.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의 통치스타일, 아니 범위를 좁혀 한 기업의 경영스타일조차 한 사람(혹은 많아봤자 극히 소수)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미 결정된 것을 지시와 명령에 모두가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 관행이었다. 그러다 보니 철학제시나 정책수립에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상황이나 국민들의 정서가 반영되기 어려웠고, 정작 그것을 인지하고 실천해야 할 국민들은 가슴으로 느끼지 못해 실천강령과 목표가 유리된 채 공허한 구호로만 맴돌았을 뿐이다. 그 결과 조직은 동맥경화를 일으키고, 언로가 막힌 조직은 점점 관료화되어 온 나라가 부패가 만연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노동운동의 불이 당겨진 80년대 후반, 나는 많은 파업현장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어떤 사안이든 양면성이 있게 마련이지만 당시 파업이 발생한 회사에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사장이 노동자들을 한번도 제대로 인간적으로 대우한 적이 없었다는 것과, 설득이나 대화조차 없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권위주의적, 폐쇄적 구조였다는 것이다. ‘내 돈으로 세운 회사 내 맘대로 하겠다는데, 지금까지 먹여주고 재워줬으면 감지덕지해야 할 것들이 감히 사장인 나에게 대들어’ 하는 인식이 저반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잘나간다는 회사내부를 들여다보면, 우선 사장은 회사의 운영을 공개하고, 참여시키며, 현장과 교감한다. 노동자들이 회사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가족적이니까 회사는 자기 회사고 일도 내 일이니 당연히 생산성도 높아지고 회사도 건강함을 잃지 않는다.이런 예를 우리는 노사모두가 똘똘 뭉쳐 부도직전의 회사를 다시 살려내는 모습을 통해서도 많이 보아왔다.그렇다면 우리 집단은 어떠할까.방송사 전체가, 실·국이, 좁게는 한 팀 내에서 리더가 현장여론을 반영한 비전과 목표를 갖고 있으며 그것을 제시한 적이 있었던가. 그리고 그것을 공유함과 동시에 작은 의사결정과정에서라도 구성원들을 참여시키는, 그래서 모든 것이 공개되고 투명한 상태에서 한 마음으로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인가. 나의 판단은 아니다. 이제 방송사 사장은, 실·국장은, 부서장은 모두가 공감할 철학과 비전을 갖고 제시해야 한다. 개편을 비롯한 각종 의사결정과정에 조직원들의 의견 수렴과정도 거치자. 그리고 리더가 직접 나서서 목표를 설명하고, 납득시켜 우리가 공동운명체임을 공유하고, 함께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그러나 IMF시대를 맞아 프로그램 조정이나 인원·예산 삭감 등도 여전히 상부의 일방적 결정과 지시에 의해 이루어지고, 그 과정에 조직원들의 자발적 목소리가 담길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내가 만들던 프로그램이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없어지고, 어느 날 다시 어디선가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할당되는, 그리고 최소한의 배려도 없이 노비문서에 의해 이쪽저쪽 끌려 다니는 게 지금의 실정이라면 지나친 과장인가.방송계에 있어 지금은 혁명적 상황이다. 방송의 존재의미와 철학을 다시 세우고, 내부개혁과 체질개선을 이루지 못하면 IMF위기를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러자면, 이제부터 권위와 독선, 관료주의와 결별을 선언하고, 모든 세포가 산소를 제대로 공급받아 활기 있게 움직이게 하여, 우리조직을 투명하고도 살아있는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과의 대화」는 그런 뜻에서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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