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공공성은 뒷전, ‘돈’만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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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대통령 업무보고…광고규제 완화, 수신료 인상 등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는 15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방송 산업 활성화’를 올해의 핵심 정책 방향으로 제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올해부터 본격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가운데 방통위를 비롯한 5개 부처는 이날 ‘역동적 혁신경제’ 실현을 위한 계획을 보고했다.

‘역동적 혁신경제’의 실현을 위해 방송 산업 활성화를 핵심 정책 방향으로 내세운 방통위가 제시한 방안들은 대부분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콘텐츠 제작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방송의 재원 마련을 위해 광고 규제를 풀고 KBS 수신료를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지상파 UHD(초고화질) 방송과 MMS(다채널방송) 등 새로운 방송서비스 도입과 ‘제2의 한류’ 진원지인 중국과의 콘텐츠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일련의 방안은 사실 새롭지 않다. 지난해부터 방통위가 관련법과 제도를 손질하며 추진하기 시작한 내용들이다. 문제는 규제 완화를 중심에 둔 일련의 정책을 놓고 방송 사업자들이 현재도 충분히 갈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가운데 규제 완화 등에 대한 부담을 져야 하는 국민의 시청권 보장과 방송의 공공성 등에 대한 논의는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시청자 부담 외면, 규제완화 돌려막기로 갈등 키우는 방송정책

방통위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방송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새로운 방송서비스 추진(지상파 UHD 방송, EBS MMS 시범서비스, 공영TV 홈쇼핑 채널 신설) △방송재원 확충(방송 프로그램 편성시간 당 광고총량제 도입, 가상·간접광고 규제 완화, KBS 수신료 인상) △시장질서 확립(재송신 등 분쟁조정 기능 강화, 재허가·재승인 제도 개선) 등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또 콘텐츠 역량 강화를 위해 중국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겠다며 한중 FTA(자유무역협정) 후속 조치로 시청각물 공동제작 협정 체결과 ‘펑요우(朋友) 프로젝트’를 통해 방송 및 디지털 콘텐츠 교류 협력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방송 산업 활성화라는 정책 방향 아래 방통위에서 추진하겠다고 밝힌 일련의 방안에서 공통으로 읽을 수 있는 내용은 ‘돈’과 ‘갈등’이다.

방통위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방송재원 확충’을 위한 광고규제 완화 의지를 밝혔다. 방통위는 지난해 12월 24일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를 통해 광고규제 완화의 첫 발을 뗐다. 줄어들고 있는 방송광고 매출, 특히 지상파 방송의 위축이 두드러지고 있는 가운데 그간 지상파 방송에 금지했던 광고총량제를 허용하기로 한 게 핵심이다.

방통위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 전부터 지상파 방송 광고총량제 허용에 강하게 반발한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등 유료방송에도 수혜가 가능하도록 방통위는 간접광고와 가상광고 등의 규제에도 빗장을 열고 있다. 현재 스포츠중계에만 허용하고 있는 가상광고의 범위를 교양·오락프로그램과 스포츠보도에까지 넓히고, 허위·과장하지 않는 이상 특정 상품의 기능을 시현하는 방식의 간접광고도 허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종편 등은 가상·간접광고 등에 대한 규제완화 효과는 지상파 방송에도 해당하는 것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이고, 광고총량제가 현재 유료방송에서만 가능한 중간광고를 지상파 방송에도 허용하는 지렛대 역할을 할까 우려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방통위는 현재 월 2500원의 수신료를 4000원으로 올리는 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 등에 반발하고 있는 종편 등 유료방송도 수신료 인상은 긍정하고 있다. 광고전문가들은 KBS 2TV 광고 축소를 전제하고 있는 수신료 인상이 현실화 할 경우 시장에 풀릴 광고를 3500억 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는데, MBC·SBS 등 다른 지상파 방송뿐 아니라 종편 등에도 상당 부분 수혜가 돌아갈 전망이다. 광고총량제 등 지상파 방송 중심의 광고규제 완화 정책에 반발하고 있는 종편 등을 달랠 ‘당근’으로 기능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방통위가 각 방송사업자의 민원 해결사 노릇을 자처하며 움직이다 보니 “규제완화 돌려막기”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의 반대에도 4개 종편을 승인한 방통위가 이들을 생존시키려 갖가지 특혜를 안기는 동안 지상파 방송이 위기의 끝에 몰린 상황인 만큼 규제 완화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게 방송계 안팎의 지적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 끝에 지상파에 규제 완화의 빗장을 열고, 이에 반발하는 종편 등 유료방송을 위해 방통위가 추가 규제 완화와 수신료 인상 등을 밀어붙이고 있는 모양은 여전히 논란일 수밖에 없다.

또한 방통위는 공공 플랫폼인 지상파의 붕괴 상황 속에도 규제 완화만 말할 뿐 직접 수신률 제고 등 공적 역할을 위한 방안은 내놓지 않고 있고, 갖가지 규제완화와 수신료 인상 등에 대한 부담을 져야 하는 시청자들에 대해서도 “최대한 시청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대안 없는 당위만 말하고 있다.

▲ 방송통신위원회 대통령 업무보고 PPT

지상파 UHD 방송·MMS 추진…방안 없이 의지만 읽히는?

방통위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한 방안을 마련하고 90억원 규모의 민관 합동 펀드를 조성해 콘텐츠 확보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업무보고에서 앞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이기주 방통위 상임위원은 “상반기 중 지상파 UHD 방송과 관련한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방통위는 또 EBS의 초·중등 교육 채널을 중심으로 MMS 시범 서비스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일련의 정책은 방송 다양성 등의 확보를 위한 것이지만 지상파 방송과 통신업계, 그리고 유료방송과의 갈등을 내포하고 있다.

지상파 UHD 방송을 위해선 우선 아날로그TV의 디지털TV 전환으로 비게 된 700㎒ 대역 주파수 108㎒ 폭을 어떻게 배분할 지에 대한 논의부터 마무리해야 한다. 지상파는 UHD 전국방송과 무료 보편 서비스로서의 제 기능을 다하기 위한 기본 조건인 난시청 해소 등을 위해서라도 700㎒ 대역 주파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통신업계는 4G 등 차세대 통신용으로 이 대역을 활용할 경우 27조원에 달하는 경제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방송용 할당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지상파 UHD 전국방송에 대한 방통위와 미래창조과학부(이하 미래부)의 입장은 현재까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일례로 지난해 11월 11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 주최로 열린 주파수 공청회 당시 조규조 미래부 전파정책국장(현 통신정책국장)은 “전국방송엔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주장했다. 동일한 UHD 콘텐츠를 전국에서 ‘시청’이 가능토록 하는 형태와, 전국 각 지역방송에서 자체 UHD 콘텐츠를 제작해 방송할 수 있게 하는 형태가 각각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의 경우 방송법에서 정하고 있는 지역별 방송권역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지상파 UHD 전국방송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여야 의원들과 방송계의 공통된 지적이다. 하지만 새해가 된 현재까지도 미래부는 지상파 UHD 전국방송의 정의를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반면 방통위는 현재의 지상파 방송 체제와 같은 UHD 전국방송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미래부와 방통위가 지상파 UHD 전국방송에 대한 입장을 빠른 시일 내에 조율하지 않을 경우 주파수를 둘러싼 갈등은 지상파 방송과 통신업계, 나아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지상파 방송과 지역 지상파 방송 사이의 갈등까지 부를 수 있다.

지상파 MMS 방송도 마찬가지다. 방통위는 EBS의 MMS 시범서비스를 내달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이기주 상임위원은 “EBS의 MMS 시범서비스 결과를 보고 (다른 지상파 방송으로의) 확대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23일 EBS MMS 시범서비스 방안을 의결한 방통위 회의에서도 “MMS는 누구나 시청 가능한 실시간 방송환경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공익가치 실현의 핵심 수단”(고삼석 상임위원)이라며 “객관적으로 허용해 줄 조건만 되면 (모두) 허가를 해야 한다”(김재홍 상임위원)는 의견들이 나왔다.

하지만 유료방송들은 지상파 MMS를 전면 허용하면 시청률 등의 이유로 상업방송으로의 변질 가능성이 크니, 상업광고를 배제하고 공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지상파 방송들이 MMS로 늘어난 채널에 광고를 넣을 경우에 대한 우려로, 지상파 MMS 범위 확대를 둘러싼 방송계 내부의 갈등이 불가피한 이유다.

방통위는 이날 업무보고에서 한류 재도약을 위해 콘텐츠 역량을 강화하겠다며 구체적 방안으로 중국과의 시청각물 공동제작 협정 체결을 추진하고 드라마·다큐 등의 공동제작과 함께 ‘펑요우 프로젝트’를 통해 방송 및 디지털 콘텐츠 교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 콘텐츠를 중심에 둔 제2의 한류는 침체 상황의 지상파 방송사들의 수익에 도움이 되고 있지만, 이 상황을 마냥 즐길 수만은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나온다. 바로 제2의 한류의 무대인 중국이 한류의 소비 시장이 아닌 생산 시장으로 거듭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한국 방송 프로그램 포맷 수입 등을 통해 제작 노하우를 갖추고, 드라마제작사 등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제작 역량뿐 아니라 수익까지 가져가기 시작한 것이다. 방송계 안팎에서 이에 대한 우려를 말하고 있지만, 이날 업무보고에서 방통위의 대책은 없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오전 세종시 세종행정지원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15년 정부업무보고 및 경제혁신 3개년 계획 1차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청와대

방송 공공성 방안 등 뒷전…공영방송 신뢰 제고·종편 정상화 대책 부재

이날 업무보고에서 방송의 공공성 제고 등을 위한 방안은 뒷전으로 밀렸다. 지난해 방통위의 대통령 업무보고 당시 실효성에 의문이 나오긴 했지만 핵심 목표 중 하나로 ‘방송의 신뢰성 제고’를 제시했던 것과도 비교되는 모습이다. 당시 방통위는 이를 위한 정책 과제로 지상파 방송 공적 책임 제고와 종편 공공성 확보 등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재도 방송 공공성의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당장 이명박 정부 이후 갖가지 조사에서 공영방송의 하락한 위상을 드러내는 수치들이 넘치고 있다. 최근 민간 연구소인 미디어미래연구소가 한국언론학회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KBS는 신뢰성·공정성·유용성 부문 어디서도 상위권(3위) 안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MBC는 2012년부터 아예 순위권 밖으로 사라졌다. 국책연구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시청자 만족도 평가지수’ 조사에서도 MBC는 지상파 방송 3사 4개 채널 중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MBC는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도 최저점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대거 투입한 낙하산 사장 논란 이후 심화된 노사 갈등에서 시작된 다툼도 현재진행형이다. 일례로 지난 2013년 재허가 당시 방통위로부터 조직 안정화 방안 마련을 권고 받았던 MBC에선 부당징계 등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현업 방송인들과 언론·시민단체에서 지배구조 개선 등에 대한 요구가 계속되고 있는 배경이다.

종편을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종편은 지난해 방통위 재승인 심사를 통과했지만 보도 편중 문제는 여전히 심각하다. 실제로 지난 3월 방통위의 종편 재승인 심사 결과에 따르면 2013년 종편의 보도프로그램 편성비율은 TV조선 48.2%, 채널A 43.2%, MBN 39.9% 등이었다. 보도프로그램 편성비율 14.2%의 JTBC를 제외한 나머지 종편들은 ‘종합편성’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막말과 편파 논란 역시 계속되고 있다. 윤성옥 경기대 교수(언론미디어학과)가 분석해 지난해 12월 2일 한 토론회에서 공개한 방심위 심의제재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사이 종편 4사의 보도교양 프로그램 심의제재 건수는 모두 135건으로 TV조선 66건, 채널A 35건, MBN 19건, JTBC 15건 등이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지상파 방송 3사의 심의제재 건수는 37건으로 종편의 4분의 1 수준이었다. 그러나 방통위는 종편의 보도 편중 등을 제어하기는커녕 보도 비율을 늘리겠다는 종편에도 후한 점수를 주며 재승인을 결정했다.

한편 언론노조와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이 구성한 공공성 태스크포스(TF)는 지난해 12월 통합방송법 시민사회 입법안을 공개하고 종편의 의무전송 조항 삭제, 과도한 보도프로그램 편성 비율 제한 등 기울어진 방송시장을 바로잡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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