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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광장

|contsmark0|여의도광장은 지금 우리 전통 숲을 재현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광장 사면을 둘러싼 칸막이 틈 사이로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광장의 아스팔트 바닥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동산을 조성하는지 곳곳에 다른 곳에서 날라온 흙더미들이 산을 이루고 있었다.여의도 생활 17여 년 동안 몇십 년도 내다보지 못하고 새로운 개발지를 황량한 시멘트 군락으로 전락시킨 도시계획자를 탓한 적이 여러 번 있던 나로선, 내가 살고있는 여의도 중앙에 울창한 숲이 들어선다는 사실에 작은 흥분마저 느낀다.
|contsmark1|여의도광장이 새로 태어나는구나.푸른빛으로 가득한 울창한 숲이 조성되면 맑은 공기를 호흡하며 산책도 가능하겠지. 잠시 상념에 잠긴다. 돌아보면 여의도광장은 최근 우리역사의 질곡을 모두 껴안고 왔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나도 같이 호흡하며 살아왔다. 여의도에 첫발을 내디뎠던 80년대 초, 취재차량이 불타고 돌팔매질 당하던 암울했던 그 시기에 술에 취해 여의도광장을 밤새 헤맨 적도 있었지. 그때 ‘그만두자. 그만두자.’ 수없이 되뇌다가 결국은 결단을 내리지 못했는데. 두달 이상 계속되던 90년 4월 kbs 파업 때도 여의도광장은 우리의 무대였다. 거기서 모두가 모여 달리기도 하고, 자전거 타기도 하고, 구호를 외치며 집회도 했었다.그뿐인가. 87년, 92년 대선 때 여의도광장은 선거유세의 열기로 가득 찼었다. 1백만 명 이상의 군중이 집결해 이 나라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그러기 위해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하는지 가늠하며 가슴을 졸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수시로 노동자 대회가 열려 잘못된 노동법과 정치권을 질타하며 목소리를 높였고, 모두가 하나임을 확인할 수 있었던 자리였는데….
|contsmark2|그 광장이 없어지고 그곳에 숲이 들어선다. 우리들의 슬픔, 고뇌, 분노가 스며있는 자리, 곳곳에 최근 역사의 편린들이 박혀있는 자리가 변화하고 있구나. 이제 과거의 슬픈 역사는 지나가고, 마침내 새역사가 시작되는 것인가.한편으로는 우리가 함께 할 공간이 사라진다는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여의도광장에 대한 기대가 훨씬 크다.다시 상념에 잠긴다. 여의도광장은 지금과 완전히 다른 새로움으로 다시 태어나는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방송의 철학과 방향성을 다시 세우고, 혁신적 내부 개혁과 잘못된 기존 관행을 타파해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태어날 가능성은 과연 있는 것인가. 그러나, 여전히 최소한의 논의구조도 없이 충성심 경쟁으로 프로그램 조정이 이루어진다. 지금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필요하며,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함께 찾고, 함께 공유하며 나아가도 시원찮건만, 여전히 몇 사람의 독선으로 정책은 결정되어진다. 그 속에서 프로듀서들은 소외자일뿐, 자율성과 창의성이란 단어는 꺼낼 여지조차 없다.한편으론 프로그램의 질이 심각하게 손상받을 정도로 제작현장에만 imf한파가 쏠리는데도 제작자가 아닌 다른 직종은 남의 일이다. 당장 자신에겐 불이익이 없으니까, 자기가 있는 곳이 방송공장이고, 그곳에서의 중심이 방송이어야 한다는 상식적인 사실도 애써 외면한다. 그 속에서 자신의 변화는 회피하고 제작비 30% 삭감을 거품이었던 것이니까, 당연히 없어져야 한다는 묘한 합리화로 본질을 희석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contsmark3|위기를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화두는 말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개혁과 변화이며 imf극복이 아무리 시급한 현안이라도 그 본질 위에 놓여져 선후가 뒤바뀌어서는 안된다. 그러자면 우리가 주체로 나서야 하고 함께 모여 논의하고, 그 결과를 요구하여야 한다. 여의도광장은 머지않아 울창한 숲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우리는 그때쯤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게 될 것인가. |contsmark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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