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기] 현실이 된 ‘슈퍼차이나’ 그리고 슈퍼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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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현실이 된 ‘슈퍼차이나’ 그리고 슈퍼파워
KBS 1TV ‘슈퍼차이나’
  • 박진범 KBS 기획제작국 PD
  • 승인 2015.02.1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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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1TV <슈퍼차이나> ⓒKBS
“우리는 <슈퍼차이나> 또는 <슈퍼파워차이나> 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후안강 교수는 이번에도 질러버렸다. 칭화대 교수이자 국정연구중심(國情硏究中心)을 이끌고 있는 후 교수는 KBS가 1월 8부작으로 방송한 <슈퍼차이나>에서 중국이 조만간 슈퍼파워가 될 것이라고 과감하게 선언해 버린 것이다. 업계 아니 학계의 선수들 사이에서는 후 교수가 저렇게 말해놓고 사후에 어떻게 수습할지 벌써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국제정치학계에서 중국을 슈퍼파워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여전히 유보적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경제력으로는 어떻게 미국을 넘어설지 몰라도 종합국력의 차원에서는 중국이 미국에 대등해지는 것은 아직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론이다.
 
그렇다면 “슈퍼파워”란 무엇인가?
 
1940년대 일련의 학자들은 강대국(great power)들 중에서도 더욱 월등한 국가, 전세계적으로 강력한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대국이라는 의미로 슈퍼파워의 개념을 도출하였다. 당시 학자들이 슈퍼파워로 염두에 둔 것은 대영제국, 미국, 소련이었다. 2차대전 이후 특히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를 겪으면서 대영제국은 탈락했고,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냉전이 종식된 이후 미국이 유일한 슈퍼파워로 국제사회를 이끌어 왔다.
 
슈퍼파워를 이루는 핵심요소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면서 군사, 경제, 정치, 문화 분야에서 전세계의 축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개념으로 발전하였고, 정치학자인 조지프 나이(Joseph Nye)는 이를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 2가지로 단순화하였다. 영국 옥스포드에서 만난 나이교수는 취재진에게 슈퍼파워가 되기 위해서는 군사력이나 외교적 압력, 월등한 경제력 등 강압적인 수단을 동원해 다른 나라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는 능력인 하드파워와 함께 한 국가의 매력이 다른 국가에 끼치는 영향력, 즉 문화의 전파나 도덕적 우위의 확산 등을 통해서 다른 나라를 리드해가는 능력인 소프트파워를 겸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KBS의 <슈퍼차이나>가 제시한 6가지 힘의 프레임 중 3가지는 중국이 향후 슈퍼파워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여부를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의 관점에서 조망하기 위한 도구로서 디자인된 것이다. <머니파워>편과 <팍스시니카>편은 세계 외환보유고 1위, 무역액 1위로 나타난 중국의 무한 경제력과 동아시아를 넘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중국의 군사·외교력을 통해 중국의 하드파워를 살펴보았고, <소프트파워>편은 공자학원, 중국영화, 그리고 CCTV의 네트워크 확대를 조명해 소프트파워 강국을 향한 중국의 도전을 다루었다.
 
각 분야별로 중국이 슈퍼파워에 근접한 정도는 일정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경제력은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때 구원자로 나타나 큰 역할을 했듯이 이미 슈퍼파워로 진입하고 있는 단계로 보인다. 군사·외교력은 중국 정부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항공모함 건조, 우주항공기술의 과시는 물론 인도양과 아프리카에서 군사용 용도로 전환될 수 있는 항구 확보에서 보여주듯 중국은 꾸준히 군사대국의 길을 달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5,000년 문명대국이 21세기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려고 꿈틀거리는 중국의 소프트파워 전략을 보여주지만, 사회주의라는 국가이념과 국가주도의 추진방식이 중국 소프트파워 확산에 부담이 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처럼 각 영역에서 속도는 다르지만 분명한 것은 슈퍼파워로 가기 위하여, 중국 정부는 엄청난 국력을 쏟아 붓고 있으며, 이는 중국의 무한한 경제력이 그 바탕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시진핑이 국가 주석에 선출된 이후 첫 일성으로 “중국의 꿈“을 외치고, 이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고 풀이한 이면에는 중국이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고자 하는 오랜 소망이 담겨 있다.
 
▲ 후안강 칭화대 교수. ⓒKBS
여기서 우리가 또 한가지 살펴볼 것은 “부흥”이라는 단어다. 앵거스 매디슨은 과거 2,000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연구를 통해서 세계경제를 비교·분석했다. 서기 0년, 즉 약 2,000년 전 중국의 GDP는 전세계의 26.2%였고 이후 줄곧 20% 후반대를 유지해 왔다. 아편전쟁 직전인 1820년 중국의 GDP는 전세계의 32.9%를 차지했다. 당시 미국은 1.8%, 전체 유럽을 합친 것도 21.9%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급격하게 몰락의 길을 걸었고, 1950년에는 전세계 GDP에서 중국이차지하는 비중은 4.5%로 줄었고, 이때 미국은 27.3%를 차지했다.** IMF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중국의 GDP는 10조 달러를 넘으며 전세계GDP의 13.3%를 차지했다. 2020년이 되면 미국을 따라 잡을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보다 긴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그리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닌 것이다. 중국은 이제 옛 지위를 회복하는 단계이며 이전 최고점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의 경제적 초강대국화는 마오쩌둥 시대부터 원대한 국가목표의 하나로서 설정되었다는 것이다. 1956년 마오쩌둥은 60년 후면 중국이 미국의 철강생산을 앞지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당시 GDP의 개념을 몰랐던 마오는 철강생산을 국가의 경제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본 것이다. 중국의 철강생산은 90년대 후반 이미 미국을 추월했고 58년째인 지난해에는 구매력평가지수(PPP)로 환산한 중국의 GDP는 이미 미국을 앞질렀다는 전망까지 나왔다. 사실 70년대 말 시작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인해 중국의 강대국화는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과감하게 시장경제를 도입했고, 2001년 WTO에 가입하며 세계 무역판도에 큰 변화를 예고했다. 광활한 중국 대륙과 13억 인구가 고속성장의 잠재력으로 작용하리라 예상됐지만 중국이 이렇게 빨리, 그리고 강력하게 성장하리라고 내다본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와중에서 미국마저도 휘청거릴 때 중국이 보여준 재력과 위기대응능력은 세계가 중국을 이른바 G2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편전쟁 이후 세계 최빈국 중의 하나로 몰락했던 중국이 이제 세계의 구원자로 나선 것을 문정인 교수는 한 중국학자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소개했다. "1949년에는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고, 1979년에는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으나, 1989년에는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있었고, 2009년에는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후안강 교수 얘기로 돌아가보자. 문화대혁명 당시 16살의 나이로 헤이룽장성 베이다황(北大荒)에서 7년간이나 황무지를 개간하던 지식청년은 이제 강단에서 중국의 미래를 개척하고 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브레인으로 통하는 후 교수는 취재진에게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은 어떻게 미국을 따라잡을 것인가”라는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고 밝혔다. 필자도 청강했던 “중국 경제발전 – 이론과 실습”(China Economic Development: Theory and Practice) 수업은 후 교수의 중국발전에 대한 연구 성과가 집약된 수업이다. 칭화대로 모여든 전 세계 유학생들은 비록 어눌한 영어로 진행되지만 방대한 데이터와 확신으로 가득 찬 그의 수업을 듣기 위해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다.
 
▲ KBS <슈퍼차이나>'공산당 리더십'편 ⓒKBS
2011년에 나온 <2030 중국: 다 함께 부유해지는 사회로>(2030 中国:迈向共同富裕)에서 “위대한 국가는 위대한 꿈이 있고, 위대한 시대는 위대한 꿈이 있다” 라고 밝혔다. 이듬해 나온 <중국 2020 - 새로운 행태의 슈퍼파워>(中国 2020 - 一个新型超级大国)에서 2020년이 되면 중국이 전체적으로 미국을 따라 잡고 세계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뿐 아니라 성숙하고 책임감 있고 매력 있는 슈퍼파워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중국의 슈퍼파워화는 후 교수도 말한 것처럼 경제적 분야에 큰 무게중심이 있다. 경제력 이외의 분야에선 중국이 아직 미국과 대등해지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더군다나 급속한 경제성장의 그림자인 지역·계층간 불균형, 환경문제, 부동산 버블과 지방정부 부채문제를 비롯하여 이념적 한계에서 나오는 언론자유의 부재, 시민사회 미성숙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도화 되어가는 시장경제, IT기술의 발달이 몰고 온 네트워크 시대로의 변화는 폐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공산당통치의 정당성과 그 효율성마저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세계적 대국으로 가는 마당에 계속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만을 외친다면 세계인을 포용할 수 있을 것인가?
 
글을 마치면서 나의 이런 의문에 대한 후 교수의 답변을 예상해본다. 현존하는 슈퍼파워 미국과 떠오르는 중국 사이에 위치한 한국의 답변은 무엇일까?
 
“그런 문제들이 모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아직 경제력 이외의 많은 분야에서 중국이 미국을 따라가기에는 여전히 큰 차이가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과거 30여 년간 중국의 성장 과정에서 서방인들의 예상을 깨고 세계를 놀라게 만든 것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마오쩌둥이 50년대 중국이 미국의 철강생산을 추월할 것이라고 얘기했을 때, 60년이란 긴 기간을 전제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것이 실현되리라 믿었던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중국의 현재상태를 가지고 미래를 예단하지 말라, 더군다나 그것이 서방이 설정한 표준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라면….”
 
*Angus Maddison, <World Economy – A Millennial Perspective>, OECD, 2001
 
**Angus Maddison, <World Economy – A Millennial Perspective>, OECD, 2001
 
***문정인, <중국의 내일을 묻다>, 삼성경제연구소, 2010

▲ <슈퍼차이나> '13억의 힘' 편 ⓒKBS

*글쓴이 박진범 PD는 보통 중국인보다 중국의 더 많은 곳을 다녔다는 사람. 특히 4년간 살았던 베이징의 문화유산에 관심이 많다는데 중국은 공부하면 할수록 더욱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면서 마치 중국사람같다는 평가에는 껄껄 웃고마는 지중파 PD다. 1995년 KBS에 입사해 <추적60분>, <KBS스페셜>, <인물현대사>, <세계는 지금>, <KBS 파노라마> ‘부국의 조건’ 등을 연출했으며, 2010년 칭화대 석사학위를 받고 2010~2013년에는 KBS 베이징 PD특파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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