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섹남’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쿡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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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섹남’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쿡방’
[대담] 요리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적 접근
  • 정리=구소라 기자
  • 승인 2015.08.04 18:3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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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섹남’.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라는 뜻이다. 먹방에 이은 쿡방·열풍으로 시청자들은 TV만 틀면 쉽게 요리하는 남자들을 볼 수 있게 됐다. ‘허세셰프’ 최현석을 비롯해 ‘중식의 대가’ 이연복, ‘맛깡패’ 정창욱, '성자셰프' 샘킴까지. 이들은 ‘멋있고 섹시한 셰프’라는 수식어를 내걸며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지상파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채널에서 ‘셰프테이너’로 활약 중이다.

우리의 쿡방은 이대로 괜찮은 걸까. 요섹남과 셰프테이너, 그리고 쿡방으로 요약되는 지금의 방송 풍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러한 열풍이 가능케 했던 사회문화적 요인은 무엇이며, 이것이 방송 제작 환경에 가져올 영향은 무엇일까. <PD저널>은 쿡방이 가지는 경향성과 그 한계,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와 김수철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교수를 초청해 ‘쿡방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적 접근’이란 주제로 대담을 진행했다.

▲ 홍경수 교수(왼쪽)와 김수철 교수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 ⓒPD저널

쿡방 음식, 스타일 드러내는 기호로 소비

김수철 교수(이하 김수철) : 방송가 쿡방 프로그램의 최근 경향성을 보면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셰프가 출연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고 또 시청률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에 쿡방 프로그램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 다른 하나는 요리나 음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커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사람들이 SNS나 인터넷을 통해 음식 식재료와 레시피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 또 해외 경험이나 여행, 이주 등으로 외부 음식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생긴 변화다.

홍경수 교수(이하 홍경수): ‘먹는 것’은 생존에 관한 문제다. 누구나 하루 세 번은 먹는 것을 떠올리기에 먹는 것은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 생활의 측면에서 취향과 기호에 관해 관심이 증폭하면서 쿡방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이제 음식은 ‘풍요’를 상징한다. 음식은 내가 어떤 음식을 알고 먹음으로써 얼마나 유행에 앞서는지를 보여주는 기호로 소비된다. 음식은 멋진 스타일이다. 방송 생산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쿡방은 적은 비용으로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효율적인 포맷이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으로 셰프를 섭외해 스튜디오 안에서 준비된 재료로 음식을 만든다. 비용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이와 더불어 식료품 만드는 회사로 시작해 지금은 tvN의 <삼시세끼> 등 여러 요리프로그램을 제작하는 CJ E&M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CJ E&M은 tvN과 올리브TV를 통해 음식 재료로 쓰이는 계열사의 제품을 간접홍보 하면서 방송 콘텐츠가 흥행하지 않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 토대를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케이블 채널들이 만든 요리 콘텐츠는 흥행에 성공했고 지상파 방송도 유명해진 셰프들을 데려다 쓰기 시작하면서 쿡방이라고 하는 대중문화가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자본의 계획과 전략에 따라 방송 트렌드의 방향이 정해지는 측면도 있다.

혼자 밥 먹는 이들에게 쿡방은 미디어의 위로

▲ 홍경수 순천향대 미디어콘텐츠학과 교수 ⓒPD저널

홍경수: 2000년대 초반, 음식 혹은 요리 프로그램이었던 <결정! 맛 대 맛>이나 <이홍렬쇼>의 ‘참참참’은 인기가 있었지만, 지금처럼 예능 음식 프로그램이 전 채널에 걸쳐 나온 적이 없었다. 외국 PD들이 ‘한국에선 왜 음식 프로그램이 잘 안 되느냐’ 라고 물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렇게 ‘예능=음식’이 될 정도로 성공하게 된 문화적 배경에는 음식 만화의 성공이 자리 잡고 있다.

<심야식당>, <미스터 초밥왕>, <고독한 미식가> 등 일본의 그루망(미식가를 뜻하는 일본어 ‘구루메’와 만화를 뜻하는 ‘망가’의 합성어로 음식과 관련된 만화)을 한국의 대중과 제작자들이 접하면서 요리 콘텐츠에 대한 감수성이 형성됐다. 한국의 쿡방 트렌드는 일본의 만화 콘텐츠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한국의 쿡방 프로그램을 보면 일본 만화적 요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촬영기법과 화면구성도 만화 컷과 비슷하다. 말풍선 대신 자막을 넣고 일본 만화의 특징인 감탄사, 의성어, 의태어들이 출연진의 음향 효과로 대체되어 TV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김수철: 쿡방 프로그램을 얘기하자면 백종원 신드롬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 씨가 자신의 칼럼을 통해 ‘백종원은 외식사업가이고, 그의 음식은 외식업체에서 그대로 사용되는 레시피다’라는 발언을 해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그 논란을 둘러싼 댓글들을 살펴보니, 음식이 하나의 대중문화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음식에 대한 아마추어 문화와 전문가적 취향 사이의 대립과 충돌이 표면상으로 드러난다는 느낌을 받았다.

백종원 신드롬을 만드는 데 기여한 <마이리틀텔레비전>의 네티즌들은 시청자이지만 동시에 아마추어적 문화를 형성하는 사람들이다. <냉장고를 부탁해>에도 의외의 인물인 만화가 김풍이 출연해 아마추어적 레시피를 선보이지만 큰 인기를 끌고 있고, <오늘은 뭐먹지>의 신동엽이나 <집밥 백주부>에 게스트로 등장하는 요리 초보 게스트들도 아마추어 문화를 대변하는 중요한 캐릭터다.

홍경수: 1인 가구의 증가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는데, 이들에게 음식 관련 콘텐츠는 미디어적인 위로다. 나는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을 먹고 있지만 TV에 나오는 맛있는 음식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쿡방 속 레시피는 실제로 따라 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제작진도 따라하라고 이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아니다. 그럴 의도가 있었다면 러닝타임이 실제 요리시간과 일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일반인들이 요리에 쓰여진 재료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 쿡방은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눈으로 보고 소비할 사람’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다. 눈으로 즐기는 ‘쇼’다. 문제는 이러한 방송들이 기본적으로 고립화된 개인을 더 고립시킨다는 거다. 결국 쿡방은 신자유주의 시대 미디어가 제안하는 콘텐츠다.

‘식욕’만 자극하는 푸드 포르노로 전락한 쿡방

▲ 김수철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연구교수 ⓒPD저널

김수철: 쿡방의 레시피는 접근성을 생각하면 계급의 문제로까지 확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외국 음식 프로그램에서도 말로는 ‘싸게 구할 수 있는 재료’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 논란이 된 경우가 많다. 먹는 것은 경제적 계층에 따라 계층화 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계급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음식에는 공공재적 측면이 있는데, 지금은 식욕을 자극하는데만 몰두해 쿡방 프로그램이 ‘푸드 포르노’가 되었다는 게 문제다. 슬로우 푸드운동의 창시자인 카를로 페트리니는 2009년 방한해 “농업을 얘기 하지 않은 음식 얘기는 다 푸드 포르노”라고 비판했다. 지금 프로그램에는 음식의 공공재적 측면에 주목하지 못하는 한계가 뚜렷하다. 우리는 여전히 ‘이 음식 너무 맛있다, 저 셰프 너무 섹시하다’는 것에서 한 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홍경수: ‘먹는 것’은 정치·사회·문화적 다양한 측면에서 해석될 수 있다. 오늘날 예능은 거대한 대중문화의 흐름을 만들어 가고 있는데, 예능에서 음식은 사적인 취향 정도로만 다뤄지고 있다. 먹는 것이 가진 정치사회적 의미에 대해선 전혀 언급이 없다.

예를 들어 학교 급식을 얘기해 보자. ‘쌀’이 가진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다. KBS 다큐멘터리 <요리인류>의 스핀오프 프로그램인 <요리인류 키친>은 업체의 협찬을 받아 지속적으로 빵을 소개한다. 쌀 농사를 짓는 농부들이 이걸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이러한 편성자체가 수용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영국의 젊은 셰프 ‘제이미 올리버’는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그들이 일할 수 있는 레스토랑 ‘피프틴(Fifteen)을 짓고, 학교 급식의 질을 높이는 공공 캠페인을 벌였다. 그에 비해 우리는 음식이 가진 사회적 의미를 외면하고 있다.

김수철: 말씀하신 제이미 올리버는 음식이 가진 공공성을 주목하면서 동시에 오락성도 가진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만들었다. 이 요리사는 원래 혼자 사는 젊은 남자가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요리를 소개했는데, 2000년 정크푸드 위주로 구성된 영국 공립학교 급식을 개선하는 내용을 담은 <제이미의 스쿨 디너>라는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큰 호응을 받았다. 덕분에 당시 토니 블레어 총리가 학교 급식에 엄청난 예산을 투입했고 이후 음식의 공공성에 주목한 프로그램이 많아졌다.

쿡방 이후를 생각한다

▲ 홍경수 순천향대 교수(왼쪽)와 김수철 한양대 연구교수 ⓒPD저널

홍경수: 지금은 검증된 셰프를 섭외하는 것이 흥행보장처럼 생각되지만 이러한 쏠림 현상이 더 중요하면서 재미있는 것들을 찾는데 장애물이 된다. 대중이 쿡방에 싫증을 느낄 때 새롭고 재밌는 영역을 발굴해내지 못하면 TV는 다시 뒤처지게 되는 악순환에 빠질 것이다.

김수철: 특정한 출연자에 의존하는 프로그램이 가져오는 부정적인 영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결국 쿡방의 인기도 사그라든다. 새롭게 진화된 ‘무엇’인가가 필요한 시점이다.

홍경수: 앞으로 나오는 프로그램은 골방에서 혼자가 아니라 광장에서 함께 먹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나오면 좋겠다. MBC 다큐스폐셜 <회사가 차려주는 밥상> 편은 사내식당이 얼마나 신경을 써서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지 사례를 보여준다. 굉장히 좋은 접근이다.

음식 프로그램 편성에 대한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급격히 일어난 현상이라 가이들인이 없을 거다. 건강 프로그램에서는 ‘지나치게 단 것을 먹지 말라’고 하면서 먹방에서는 ‘설탕을 부어 먹어라’, ‘맛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모순적이다. 밤 12시에 라면을 보여주는 것도 그렇다. 야심한 시각에 인스턴트 음식의 조리를 자제한다든가 전체 프로그램에서 예능프로그램처럼 음식프로그램의 비중을 규제해야 하는 것과 같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식재료의 장·단점에 대한 정보도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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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PD 2015-08-05 22:59:39
PD저널이라는 언론은 PD를 위한 언론인가요? PD들이 만든 콘텐츠를 비판해서 못 만들게 하기위한 언론인가요? 기사들이 주로 방송의 문제점만을 지적하는 것 같아서 이 언론의 정체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중징계를 예고 한다고 기사를 내질 않나 특정단체의 주장을 기사화 하지 않나 ~ PD들이 방송을 잘 만들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건전한 비판을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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