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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PD상 공로상 수상자 강대영
경기방송 초대 PD협회장 백승엽 PD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조정하 사무국장
  • 승인 1998.0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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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0|수식이 필요없는 최고의 한국전쟁 전문가 제10회 pd상 공로상 수상자 강대영
|contsmark1|내가 그를 곁에서 보기 시작한 것은 87년, ‘6·25 40주년 특별제작반’이 구성되고, 그 일원이 되면서였다. 그때도 이미 그는 kbs의 한국전쟁 전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이전의 6·25특집 프로그램들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쳤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6·25에 대해서는 논하지 않아도 될 완결판을 만들고 싶어했다. 당시는 대외비였던 미국의 정부 문서들이 공개되기 시작해 부루스 커밍스 등 미국 학자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상당히 객관적이고 심층적으로 분석한 저서들을 내놓고 있었고, 옛 소련의 후르시초프 회고록도 발간됐다. 추측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판단이 아니라 사실(fact)과 자료(materials)를 근거로 한국전쟁에 대한 논리적 접근이 가능해진 것도 그가 완결판을 욕심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사실 그가 원했던대로 이후에 제작된 6·25특집들은 [다큐멘터리 한국전쟁[(10부작)의 아류에 불과하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 이상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새로 제기될 부분이 없다.그는 분명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사람이다. 그가 6·25 특별제작반을 구성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국내외의 각종 한국전쟁 관련 서적들을 모두 구입했던 것이다. 한국전쟁을 보는 다양한 시각들을 정확한 사실과 새로운 정보를 통해 재분석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세계에 흩어져 있던 한국전쟁 관련 영상자료들을 수집해 나갔다. 미국·영국·일본이 보유하고 있던 자료는 물론이고, 당시 외교관계가 없던 중국·소련의 관련자료들까지도 어렵게 구해나갔다. 한국전쟁에 얽혀있던 수수께끼들은 그렇게 제 모습을 드러내었고, 그가 수집한 자료들은 현대사 관련 프로그램 제작pd들이 꼭 한번씩은 찾아보는 기초자료가 됐다.그는 또 뛰어난 작가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 한국전쟁[(10부작)을 본 사람들은 내레이션의 간결함과 함축성을 기억할 것이다. 단어 하나, 심지어 쉼표 하나도 치밀한 계산에 의해서 쓰여진 것이다. 그의 글은 논리적이면서도 감성적이라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함과 동시에 그 속에 숨어있는 인간적 고뇌를 놓치지 않는다.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언뜻 보기에 눈매가 날카롭고, 말수가 적어 어려워하는 후배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그는 말이 아니라 작품으로 그를 드러낸다. 삶과 인간에 대한 사랑, 일에 대한 자부심이 그가 만든 프로그램 하나 하나에 스며있다. 몇가지 나의 단편적 느낌들로 그를 소개한다는 것은 사실 부족하다. 그러나 그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너저분한 수식이 필요 없는 ‘최고의 다큐멘터리 pd’다.홍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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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6|요령을 모르는 정면돌파 반딧불이 경기방송 초대 pd협회장 백승엽 pd
|contsmark7|평소 딴따라와 쟁이기질이 없인 이곳 화류계(?)에서 일찌감치 ‘쫑’해야 한다는 지론의 프로듀서 백승엽 차장은 외모상 변화를 모른다. 그만큼 자유스럽다고 하겠다. 외면적 모습보다는 안으로 꽉 들어찬 내용과 무게가 당연히 소중할 것이란 평면적 논리보다 인간성에 기인해서다.때론 다정다감하게, 하지만 맡겨진 일에 대해서는 결코 요령을 용납지않는 정면돌파방식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런 백 선배도 사석이나 가정에선 이따금 본의아닌 실수를 하는가보다. 역시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린 나이탓이라고 열심히 우겨보지만 오히려 이 다음에 두고보자는 식이니 누가 말릴까? …그럼에도 그놈의 정때문이란 한마디엔 수긍하니 다행도 여간 다행이 아니라고 여겨진다.십여년은 훨씬 더 됐을 그 시절, 선배라면 어렵고 송구스러워 얼씬거리기조차도 힘들었건만 따스한 말 한마디가 (비록 접대용일지라도) 기억속에 확연히 새겨진 바 있었다. 결국 지금엔 뜬금없이 마주보기 피곤한 선후배가 되어 지낸다. 사람이란 알고보면 알수록 오묘하고 특유의 속내음이 있게 마련인데 방송과 음악으로 이십년을 넘기며 종사했다는 사실에서도 그 근성을 짐작할 수 있다.주어진 임무, 맡겨진 일에 대하여 적당한 자기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는 의식이 그 자신을 지탱해온 모체로 보인다.프로듀서로서 고집하나 없다면 ‘모기허리 쌍권총’격인데 백 선배의 그런 일면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지난해 개국시절 부산스러움에도 일요일생방송을 자원했고, 지금까지도 휴일을 모른채 제작, 진행, 구성을 소화한다. 그사이 동료들 사이에선 천연기념물 - 반딧 불이와 흡사하다는 공통된 아호(?)로 불리나 정작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다. 한편은 모르는게 약이라는 생각이다.항상 앞서가는 생각과 감각에선지 평소 삭발을 선호하고 정장을 멀리하는 외모에서도 남다른 지금까지의 행로를 주위에 풍긴다. 하지만 여직원들에 투영되는 이미지란 아저씨 아니면 아버지 패션임에도 아니라고 박박 우기는 선비정신이란 실로 압권이다. 아직도 시그널 음악을 음반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광고(cm)는 오픈 릴로 방송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지, 거기에 한술 더 떠 방송실에서 맨발을 고수하는 드문 프로듀서다.그렇지만 동료 후배들에겐 중요한 노하우 전수라든가, 마음을 살며시 어루만져주는 너그러움이 존재하기에 선배다운 팀장으로 우린 함께한다.이따금 어디가 고장났는지 간단한 약을 자주 찾고, 또 후배들의 아픈 곳을 살펴주는 그 모습이 그분답다. 그런 이유에서 우린 그의 뒤를 따른다.박원희<경기방송(kfm) 편성제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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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1|미디어의 주인은 수용자임을 잊지 마시라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조정하 사무국장
|contsmark12|방송의 주인은 누구인가. 기계적인 대답, ‘국민’(혹은 시청취자, 수용자). 그렇다면 다시 묻자. 과연 ‘시청취자’들은 방송의 주인으로 대접받아 왔는가. 시청자들이 방송의 주인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아니, ‘주장’만이 아닌 구체적인 ‘실현’을 위해 뛰는 사람이 있다. 지난 12일 발족한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조정하 사무국장이다.“미디어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지금 수용자의 알권리와 미디어참여권 보장 등 실질적인 수용자주권을 실현하고 미디어가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감시하는 것이 절실합니다.”그가 밝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발족 이유다. 그동안 방송계는 산적한 현안을 해결하는데 전력을 다해왔으나 ‘수용자주권’에 대한 관심은 미진했었고, 이 문제는 방송노조 및 방송현업인보다는 ‘시민단체’, ‘시청자단체’에서 주도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이다.“수용자주권을 제도적으로 보장받아야 합니다. 영국 bbc는 시청자들의 기획안을 내고 채택되면 직접 프로그램 제작도 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은 공영방송의 방송시간 중 일정비율을 접근프로그램에 할당하도록 방송법에 규정하고 있구요.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각 방송사의 시청자위원회가 힘이 있습니까? 방송위원회 심의위원들이 시청자대표성이 있습니까?”‘수용자주권’의 제도적 보장을 위해 미디어운동본부는 수용자의 미디어교육, 미디어 감시 기능에 머물지 않고, 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 제도개선활동에도 주력할 것이라고 전한다. 또 미디어 속의 성차별문화 성상품화현상에 대한 개선활동은 물론 방송위원회를 비롯한 미디어 관련 공공기구 내 여성비율 상향운동도 벌여나갈 것이라고 했다.생각하면 결코 녹록하지 않은 일인데 89년부터 tv모니터 활동을 시작해 91년 ‘바른언론을지키는모임’을 정식 발족했고, ‘수용자를 위한 미디어교육’을 개최했으며, 94년부터 ‘어린이방송학교’ 등을 꾸려오면서 축적해온 민우회의 경험이 미디어운동본부 발족에 힘을 실었다.“좋은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제작진의 화두겠지만 요즘은 좋은 프로그램은 곧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처럼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시청률은 결국 경영진의 압력 아닙니까? 굴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직업인이기 이전에 방송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잊지 않기를 부탁드립니다.”시청취자들의 이중성-저질이니 뭐니 하면서 그 프로그램을 즐기는 것-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대한 조정하 국장의 답변이다. ‘시청률’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이 풍토에서, 더군다나 ‘imf시대’에 그는 ‘시청자단체’다운 선문답을 하는 것일까. 그의 말을 곱씹으니 pd들이 어쩔 수 없이(?) 잊고 있었던 ‘원칙’이었다.<이서영>|contsmark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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