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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5.08.23 01:43
  • 수정 2015.08.27 15:46

"다시 뛰는 청춘을 통해 희망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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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최재형 PD

▲ KBS<청춘FC 헝그리 일레븐> 최재형 PD ⓒ김성헌

“요즘 젊은 세대들의 답답한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해요. 확실히 제가 20대를 보낸 시절과는 많이 다른 것 같고요. 암울한 청춘에 대한 문제를 방치하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에 프로그램 연출을 결심했죠.”

20일 오후 KBS에서 만난 최재형PD는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KBS <청춘FC 헝그리일레븐>(이하 <청춘FC>)은 축구 국가대표 출신 안정환과 이을용, 이운재가 감독으로 나서 좌절 속에서도 축구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20대에게 두 번째 기회를 준다는 프로젝트다. 축구를 사랑하지만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게 된 2500명의 지원자들 중 단 21명만이 청춘FC의 선수가 될 수 있다. 선수들은 6주간의 벨기에 전지훈련에서 혹독한 트레이닝 후 한국에서 4번 정도의 경기를 성공적으로 치르는 걸 목표로 한다. 총 16부작 중 지난 23일 7회가 방송됐다. 앞으로 남은 9회 동안 벨기에 전지훈련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훈련과 경기 모습을 담아낼 예정이다.

▲ 벨기에로 전지훈련을 떠난 청춘FC 선수들. ⓒKBS

#청춘 #두번째_기회

처음 최재형PD가 AFC 투비즈를 인수한 스포티즌(대표 심찬구)로부터 받은 제안은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이었다. 투비즈 구단에 데려갈 선수를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해보면 어떻겠냐는 거였다. 하지만 최PD는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탈락과 합격여부만이 중요해지는 오디션 포맷이 이미 실패를 경험한 지원자들한테 아픈 상처를 또다시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우리 사회를 ‘세컨 찬스(Second Chance)가 아예 없는 사회’라고 진단한다. 프로그램은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사회는 절대로 건강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좌절을 경험한 축구선수들을 다시 일어나게 할 제도나 장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던 그는 축구 미생의 고군분투기를 담기로 결심했다. 재기를 꿈꾸는 젊은 선수들을 위해 한국 축구계가 할 일을 <청춘FC>가 하고 있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청춘FC>는 절대로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거듭 강조하며 “프로그램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 <청춘FC> 최재형 PD. ⓒ김성헌

#진정성 #다큐예능

그래서일까. <청춘FC>는 선수들의 사연을 다루는 방식도 여타 오디션 프로그램과는 다르다. 최재형 PD는 청춘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담아내기 위해선 프로그램의 틀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겐 인생이 걸린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데 이를 단순히 깔깔거리는 식의 예능 틀로 담아내기엔 어울리지 않는다는 판단에서였다. 기획 초기부터 ‘다큐스러운 예능’을 표방해 ‘다큐멘터리’의 포맷과 촬영 방식을 전적으로 차용하기로 했다. 큰웃음보다 사람 사는 이야기가 주는 감흥이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다큐 예능을 위해 KBS <인간극장>과 같은 휴먼 다큐멘터리나 외국의 스포츠 다큐멘터리들을 다 챙겨봤다.”고 말했다.

그 결과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예능이 나왔다. 예능 프로그램에 흔히 삽입되는 웃음소리 더빙도 뺐다. 코믹 코드도 되도록 많이 넣지 않았다. 자막도 다른 예능에 비해 확 줄였다. 리플레이나 슬로우 모션은 스포츠 예능에선 빠질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에만 최소한으로 사용했다. 방송 초기에는 현란한 CG나 자막이 난무하는 기존 예능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은 ‘밋밋하다’고 어색해했지만 6회가 지난 지금, 오히려 담백함이 청춘FC가 가진 강점이라 입을 모은다. 선수 소개도 깔끔하다. 포지션, 나이, 출신 학교 정도만 짚는 정도다.

예능 프로그램이 자칫하면 밋밋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해 힘을 준 부분은 따로 있다. 방송 매 회마다 남다른 선곡 센스다. 선수들의 진심 담긴 인터뷰나 훈련 장면에서는 토이의 ‘스케치북’이나 노리플라이의 ‘끝나지 않은 노래’가 흘러나오는 식이다. 방송이 끝나자마자 인터넷에 배경음악을 질문하는 문의 글이 쇄도할 정도다. 음악 선곡에 대해 실제로 “배경음악에 품을 많이 들이는 편”이라는 최PD의 말처럼 제작진은 편집 전부터 회의를 통해 ‘청춘과 도전’ ‘희망과 용기’라는 프로그램의 색깔에 맞는 노래 50곡 정도를 미리 선곡해 두었다.

▲ 방송은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한 선수까지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KBS

뿐만 아니다. 예비 엔트리 선수 28명을 소개할 때마다 등장한 캐리커처도 이목을 끌었다. 선수 한 명도 빠짐없이 일러스트 작업을 한 데에는 최재형 PD의 따뜻한 철학이 담겨 있다. “최종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실패한 건 아니거든요. 2500명이 지원했고 그 중 25명 안에 들었어요. 대단한 일 아닌가요?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남지 못하면 실패했다고 생각하죠” 라며 냉혹한 사회 분위기를 안타까워했다. 그래서방송 중 ‘이들은 낙오자가 아니’라고 자막 처리를 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선수 한 명 한 명을 조명해주기로 했다. 아쉽게 마지막에 탈락한 선수에게 힘이 됐으면 하는 진심이 전해지기 바랐기 때문이다.

#세_감독 #국가대표

안정환·이을용·이운재 세 감독 역시 ‘착한 예능’의 또다른 주역이다. 연예인 없는 예능에서 <청춘FC>의 감독은 일단 웃음 포인트를 알고 있는 인물이어야 했다. 이외에도 최 PD만의 확실한 섭외 기준이 있었다. 축구인으로써 흠이 없어야 하고 공직에 있는 사람은 대상에서 제외했다. 축구를 잘 모르는 시청자도 프로그램을 챙겨볼 만큼 인지도도 높아야 했다. 추리다 보니 감독 후보가 그리 많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감독 섭외가 관건이었던 터라 고민은 커져만 갔다. 사실 안정환 감독은 탐났지만 처음부터 고려 대상은 아니었다. 안 감독은 MBC에서 해설위원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선수 선발부터 팀 운영과 훈련 내용 등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세 감독. ⓒKBS

우연히 KBS <우리동네 예체능>에 나오는 안 감독을 보게 된 그는 무릎을 탁 쳤다. “이보다 더 좋은 안은 없었다. 이을용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 모두 맨몸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었기에 청춘FC 선수들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최PD는 감독 섭외에만 한 달여를 매달렸다. <예체능>의 마지막 녹화 날, PD는 안정환 감독이 오는 술자리에 조용히 찾아갔다. 당시는 프로그램의 방향과 디테일이 정해지기 전이었으나 배우 차태현이 이날 안 감독에게 방송을 해보라고 부추겼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확답은 바로 받지 못했다. 열흘 정도 지나 안 감독으로부터 “(PD님이) 책임지겠냐”고 연락이 왔다.

최 PD가 본 세 감독은 어떤 사람일까. 그는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만큼 대단한 사람들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안 감독은 2차 테스트에 올라온 선수를 보고 1차 테스트에서 어떤 플레이를 보여줬는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었다. 참고로 1차에서는 약 2500명이 테스트를 봤다. 다른 두 감독 역시 선수들 개인의 성향까지 낱낱이 파악하고 있어 최PD를 놀라게 했다. 감독들은 열정도 최고였다. TV도 개인 화장실도 없는 벨기에 산골 마을의 기숙사에서 6주간 생활하며 불평 한 마디 없었다. 최 PD가 보기에 세 감독 모두 단기간에 선수들의 기량을 만들어야 한다는 스트레스와 부담감에 시달리는 모습이 괜히 미안했다. 최재형 PD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세 감독을 ‘무한 신뢰’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최재형 PD가 인터뷰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다. ⓒ김성헌

#제작진 #주도권

“전적으로 선수 선발과 훈련 방향은 이을용‧안정환‧이운재 세 감독이 쥐고 있어요. 사실 지원자들 중에서 제작진이 따로 주목했던 선수들이 있었거든요. 팔로업 촬영을 한 선수들이 20명 정도였는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선수가 둘 정도 될까요. 이건 세 감독들도 전혀 몰랐어요.”

방송 초기에 제작진은 촬영 분량 때문에 최종 엔트리 확정 전부터 미리 눈여겨보고 팔로업 촬영을 해놨던 선수들이 많이 붙었으면 하고 내심 바랐다고 했다. 하지만 주도권을 전적으로 감독에게 넘겼다. 팀 구성과 선수들의 잠재력에 대한 판단은 세 감독이 누구보다 정확할거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이 청춘FC의 제작진은 한걸음 뒤에서 제 3자의 눈으로 ‘촬영’에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다. 감독의 뒤에서 든든하게 서포트하는 제작진이 있기에 프로그램의 진정성은 배가될 수 있었다.

최 PD가 보기에 감독들의 판단은 프로그램 취지와도 들어맞았다. 그는 “청춘 FC 선수들 중 한 명이라도 축구선수라는 직업을 되찾게 된다면 성공적"이라고 프로그램의 목표를 설명했다. 감독 역시 이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장 기량이 뛰어나 보이는 선수보다 뭐라도 해보겠다는 의지가 있는 선수에게 기회를 더 주기로 했다. 비슷한 체력 조건이면 가급적 어린 나이의 선수를 뽑은 이유도 그라운드 재진출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청춘FC 선수의 대부분이 20대 초반이고 최고령 김동우 선수도 1987년생, 29살이다.

“나이가 많을수록 절박함이 커지는 건 맞다”며 “모든 선수에게 좋은 결과를 줄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최 PD는 말했다. 덧붙여 그는 벨기에에서 노장에 속하는 어떤 선수와 나눈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몇 달 째 해외까지 와서 축구에만 매달리는데 나중에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후회하지 않겠느냐”는 PD의 조심스런 질문에 그 선수는 “절대 아니다. 이렇게 축구만 생각하고 합숙하며 지내는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행복한 순간이다”라고 답했다. 최 PD의 가슴이 뭉클했던 순간이었다.

이어 그는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선수들을 지켜봤기에 이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웃음 소재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절박함이 느껴져 매 회마다 부담을 갖고 진지하게 제작에 임한다는 최재형 PD. 그럼에도 한 회 한 회 방송될 때마다 아쉬움을 느끼는 건 그도 어쩔 수 없다. “솔직히 사전 제작을 할 걸 하고 후회한 적이 많아요. 편집 일정이 빠듯해서 좀 더 잘 담아낼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서요. 회가 거듭될수록 선수와 감독의 진지함을 60분 분량에 꽉꽉 채우고 싶은 욕심이 나는 게 사실”이라는 그의 말에서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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