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방송 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 등을 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을 행정 예고한 가운데 시청자단체들은 “광고를 위한 프로그램만 양산되어 질 좋은 프로그램을 볼 시청자 권리는 박탈되고 말 것”이라며 개정안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매체비평우리스스로·미디어세상열린사람들·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등 시청자단체는 지난 24일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과 그 이유를 밝히고 해당 의견서를 방통위에 제출했다.
지난 6일 최성준 위원장을 비롯한 방통위 여권 추천 상임위원 3인은 야권 추천 상임위원 2인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 개최한 전체회의에서 협찬고지의 허용 범위를 확대하고 협찬고지 허용시간·횟수·고지 방법 등의 형식 규제를 대폭 개선하는 내용의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행정 예고된 개정안 중 논란이 되는 것은 제6조(방송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 사용 허용)로, 방송사업자로 하여금 로고를 포함한 협찬주명과 기업표어, 상품명, 상표 등을 프로그램 제목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다만, 어린이를 주 시청대상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 보도·시사·논평·토론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제목에 협찬주명 등을 고지할 수 없도록 했다.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행정 예고된 대로 시행될 경우 사실상 ‘제목광고’를 도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협찬주명과 기업표어, 상품명 등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만큼 향후 프로그램 제목이 <갤럭시S6와 함께하는 무한도전>(MBC), <셰프콜렉션 냉장고를 부탁해>(JTBC), <고티카로 시작하는 삼시세끼>(tvN) 등으로 표기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지적이다.
“방통위, 시청자 외면하고 사업자만을 위한 정책 펼쳐”
시청자단체들은 개정안대로라면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에 더 많은 협찬이 몰리고, 반면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은 오히려 협찬을 받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결국 프로그램의 시청률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될 것을 우려했다.
시청자단체들은 “이 조항은 협찬을 통한 광고를 가능케 하여 협찬주에게 명백하게 광고 효과를 주는 것”이라며 “이러한 광고 효과는 향후 방송제작에 있어 협찬이 더욱더 활성화 되어 광고 시장이 점점 더 불투명한 음성화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시청자단체들은 개정안이 시청자에게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결국 시청자의 ‘볼 권리’를 박탈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로그램과 광고가 구별이 되지 않는데다 협찬주에 따라 프로그램명이 수시로 바뀔 경우 시청자가 겪는 혼란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광고를 위한 프로그램이 양산되면서 결국 질 좋은 프로그램을 볼 시청자의 권리보다 광고를 집행할 협찬주의 권리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시청자단체들은 “이러한 시청자들의 바람을 무시하고 이 조항을 허용한다면 시청자들은 수신료도 내고 유료방송료도 내면서도 광고로 도배된 저질 프로그램만을 보게 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라며 “이는 방통위가 시청자를 봉으로만 여기는 행태일 뿐 아니라 시청자를 외면하고 사업자만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내용・형식 규제 완화, 시청자 기망하는 것”
이밖에도 시청자단체들은 협찬고지 허용 범위를 확대할 경우 ‘양악수술’, ‘종아리 퇴축술’, ‘지방 흡입술’, ‘○○○ 의사의 물방울 가슴 수술’ 같은 상품명과 용역명은 고지가 가능하게 되는 것으로, 이는 모든 방송광고금지 품목에도 광고를 할 수 있는 길을 합법적으로 열어주는 개정이기에 허용할 수 없음을 밝혔다.
또한 시청자단체들은 협찬고지의 방법, 시간, 횟수 등 형식 규제를 완화한다는 것은 협찬주에게 더 많은 광고의 기회를 주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것으로 드러내 놓고 협찬을 통한 광고를 허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청자단체들은 “협찬을 통한 광고를 제안하려면 지금처럼 규제 완화를 내 놓을 것이 아니라 규제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통위가 이렇듯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까지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시청자를 기망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