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규제 완화, 시청자에게 약일까 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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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사 "고품질 프로그램 제작 위해 완화 필요"…언론·시민단체 "방송을 광고로 만들려 하나"

“지금의 안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광고를 풀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시청자단체가 반대했던 중간광고를 제외하고는 모든 동원 가능한 방법을 찾아낸 게 아닌가. 참담한 심경이다. 방송광고 규제 완화와 시청자 보호가 어떻게 양립할 수 있는지 질문하고 싶다.”(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총장)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 이하 방통위)가 방송 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 등을 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과 함께 가상광고의 시간과 방법 등을 완화하는 내용의 가상광고 세부기준 고시 제정안을 행정예고한 가운데 언론·시민사회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시청자의 시청권 침해는 물론 방송제작자의 제작 자율성마저 자본권력에 의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러나 방통위가 의견수렴을 위해 26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KT본사 대강당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방송사 관계자들은 광고재원이 줄어드는 상황 속에서 양질의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안정적으로 재공하기 위해서라도 개정안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성준)가 가상광고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 제정과 협찬고지에 관한 규칙 개정에 대한 의견수렴을 위해 26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KT본사 대강당에서 진행한 토론회에서 언론・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과 방송사 관계자들이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PD저널

방통위, 가상광고·협찬고지 등 방송광고규제 완화 추진

지난 6일 방통위 여권 추천 상임위원 3인은 야권 추천 상임위원 2인이 불참한 가운데 단독 개최한 전체회의에서 협찬고지의 허용 범위를 확대하고 협찬고지 허용시간·횟수·고지 방법 등의 형식 규제를 대폭 개선하는 내용의 협찬고지 규칙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이번 행정예고 된 개정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제6조(방송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 사용 허용)로, 방송사업자로 하여금 로고를 포함한 협찬주명과 기업표어, 상품명, 상표 등을 프로그램 제목에 포함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다만, 어린이를 주 시청대상으로 하는 방송프로그램 보도·시사·논평·토론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제목에 협찬주명 등을 고지할 수 없도록 했다.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시행되면 사실상 ‘제목광고’를 도입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협찬주명과 기업표어, 상품명 등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만큼 향후 프로그램 제목이 <갤럭시S6와 함께하는 무한도전>(MBC), <셰프콜렉션 냉장고를 부탁해>(JTBC), <고티카로 시작하는 삼시세끼>(tvN) 등으로 표기하는 게 가능해진다는 지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방통위는 그동안 스포츠경기 중계에만 허락됐던 가상광고를 예능과 스포츠보도 프로그램에서 내보낼 수 있게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가상광고의 종류도 동영상형 가상광고 뿐 아니라 컴퓨터 그래픽과 음향이 결합된 가상광고도 가능하게끔 마련했다.

이 같은 규제 완화의 이유로 방통위는 지난 7월 20일 협찬고지 허용 범위가 확대되는 내용으로 방송법 시행령이 개정됨에 따라 이를 반영하고, 규제를 개선해 고품질 방송프로그램 제작 기반을 조성하려는 것이라고 들고 있지만 방송계 안팎에서는 사실상 광고주, 기업을 위한 개정안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방통위의 취지와 달리 해당 개정안이 사실상은 광고주의 광고효과를 강화할 뿐 아니라 프로그램에 대한 광고주의 영향력을 키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 tvN <삼시세끼-정선 편>에서는 협찬사이자 간접광고를 집행하고 있는 코카콜라의 캔커피 조지아 고티카를 출연진들이 마시는 장면이 프로그램 시작과 중간에 계속 등장한다. ⓒtvN 화면캡쳐

방송사 "고품질 프로그램 제작 위해서라도 광고규제 완화 필요"

토론회 발제를 맡은 이헌 방통위 방송광고정책과장은 이번 개정안이 방송사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광고매출을 늘리기 위한 것임을 강조했다.

이 과장은 VOD 활성화 등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방송광고시장은 물론 방송사의 광고매출까지 큰 폭으로 감소하는 상황에서 방송사가 늘어나는 프로그램 제작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을 직접 지원하라 수 있는 협찬규제 완화가 하나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 과장은 “사업자의 자율이 늘어나면 광고가 늘어날 수 있고, 시청자가 불편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지만 광고를 개선하면서 최소화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 제목에 협찬주명을 사용하더라도 방송프로그램 내용에는 제한을 두게 했다”며 “(협찬집행과 관련해) 투명성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아서 투명한 집행을 위해 노력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사후심의를 강화해서 자율성을 강화되는 동시에 침해되는 것을 최대한 금지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회에 참석한 김인주 SBS 광고팀 부장은 2000년 방송사 전체 실시간 시청률은 28.9%, 구매력이 높아 광고주가 선호하는 2049 세대의 시청률은 12%에 달했는데,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2015년 실시간 시청률이 17.9%, 2049 시청률이 4.9%로 하락한 점을 들며 방송광고에 대한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음을 설명했다. 실시간 광고에 대한 필요성이 감소하면서 광고주 입장에서는 방송광고를 줄이게 되고 이는 방송수익 하락으로 이어진다는 뜻이다.

김 부장은 “방송광고가 어렵다는 말은 방송사 입장에서는 프로그램 제작재원 자체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라며 “(시청권 보호는) 시청자가 보고 싶고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방송사에서 제공할 때 가능한데, 방통위의 고민도 이런 방송현황을 판단해서 시청자에게 고품질 프로그램을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는데서 나온 개정안”이라고 말했다.

임석봉 JTBC 정책팀장은 “방송사 입장에서 가장 답답한 부분은 부족한 재원으로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부분”이라며 “왜 꼭 방송광고로만 수익을 내려고 하느냐 하지만 어느 방송사가 수익 다각화를 안 하고 싶겠나. 다만 그게 지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어려움 있으니 국내 내수 시장에서 우리가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방안 마련해달라 요청하는 것이다. ‘내놔’가 아니라 ‘요청’드리는 상황이고, 시민단체 쪽에서도 그런 부분을 조금 이해해줬음 좋겠다”고 말했다.

임 팀장은 “(지상파 우위의) 비대칭규제 측면에서 보면 유료방송과 지역지상파에 먼저 (제목광고를) 허용해서, 거기서 생기는 문제를 보고 (제목광고를) 전면적으로 허용할지 말지 논의해 달라”고 말했다.

허성진 지역MBC 전략지원단장은 시청률 하락과 광고매출 감소 측면에서 보자면 지역방송이 더욱 열악하다고 설명하며 방통위의 규제완화에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다.

허 단장은 “방통위의 개정 취지에 가장 부합하는 게 지역방송 프로그램에 타이틀스폰서십을 허용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을 가장 많이 하는 데가 지역방송이다. 시청자들의 제약이 심하다면 지역부터 타이틀스폰서십을 시행해보는 게 어떤가 싶다”고 말했다.

▲ 2월 28일 MBC <무한도전>에선 진행자인 유재석이 갑자기 노트북을 사용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삼성노트북에 대한 간접광고였다. ⓒMBC 화면캡쳐

언론·시민단체 "방통위·방송사, 프로그램을 광고로 만드려고 하나"

이 같은 방송사들의 입장에 언론·시민단체는 납득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방송사 관계자들은 광고규제 완화가 시청자의 시청권 보장, 즉 고품질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주장했지만 프로그램 전후로 붙는 광고, 방송 중간 등장하는 가상·간접광고로 인해 지금도 시청의 흐름을 방해받고 있는데 프로그램 제목마저 협찬주나 상품명이 들어가게 된다면 이 같은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이미 프로그램을 광고로 만들기로 방통위와 방송사가 작정하고 있는 걸 누가 말리겠나”라고 비판하며 “프로그램의 질을 높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광고규제를 풀겠다고 하는데, 이렇게 광고규제를 풀어서 들어오는 돈을 어떻게 방송사가 사용하는지 관리·감독할 방안은 있나”라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가상광고의 범위를 확대할 경우 스포츠 보도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일반뉴스에까지 허용하게 될 가능성도 존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제목광고 역시 시청률이 낮아 방송 제작이 어려운 프로그램을 위해 도입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에 더 많은 협찬이 몰리려 시청률에 따라 ‘광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개정안에는 방송광고 금지품목과 허용품목을 함께 제공·판매 하는 경우에는 방송광고 허용품목에 한하여 ‘상품명’이나 ‘용역명’으로 협찬고지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는데, 이 경우 모든 방송광고금지 품목에도 광고를 할 수 있는 길을 합법적으로 열어주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병원의 경우 방송광고를 금지 하고 있으나 ‘수술명’, ‘수술에 대한 용역명’은 규정 자체가 없어서 ‘양악수술’, ‘종아리 퇴축술’, ‘지방 흡입술’, ‘○○○ 의사의 물방울 가슴 수술’ 같은 상품명과 용역명은 고지가 가능하게 된다는 것이다.

윤 소장은 결국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고 ‘광고형 프로그램’만 양산할 게 빤한 개정안”이 될 거라고 비판했다.

이어 윤 소장은 “(방송사는) 비정상적 제작비에 대한 구조조정은 왜 이야기 안 하는가. 시청자에게는 (광고·협찬) 돈 받아서 다양한 프로그램, 질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하는데 다양한 프로가 어딨는가. 요리 프로그램 하나 잘 되면 모두 다 요리 프로그램, 아이 나오는 프로그램 잘되면 다 아이 프로그램을 한다”며 “왜 자꾸 감언이설 하나? 시청자가 지상파 방송사를 외면하고 있다고 하는데 외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방송사들이 계속 만들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달라”고 강조했다.

▲ 야구중계에서 등장한 ‘알바몬’ 가상광고.

"광고규제 완화? 기업이 한 프로그램을 산다고 해도 과언 아냐"

노영란 매체비평우리스스로 사무총장은 “다들(방송사 관계자들) 동상이몽하고 있다. 방송광고 규제를 완화 하겠다는 방송통신위원회는 시청률 낮은 프로그램을 이런 거(규제 완화)라도 해서 프로그램의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지 않겠냐고 하는데, 김인주 SBS 광고팀 부장의 말을 들어보면 20%대 시청률이 나오는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이 시청권 보호라고 한다”며 “시청률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말하는데,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분(방통위)와 제도를 이용하고자 하는 분이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거다. 이 제도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굴러가야하는지, 이건 누가 설명해줄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노 사무총장은 “가상광고의 경우 모든 장르와 방식의 규제를 다 푸는 형태로 정리된 거 같은데, 이런 게 어떻게 프로그램 시청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지 적극 되묻고 싶다”며 “가상광고, 간접광고, 제목광고, 이 모든 것을 한 브랜드(기업 내지 광고주)가 (한 프로그램을) 관통해서 나오게 된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기업이 한 프로그램을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내용심의를 하는 방심위와 아무런 협의 없이, 심의기구를 배제한 것은 절차상 심각한 문제”라며 “제목광고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사후규제를 강화하거나 재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사무처장은 “시청권을 훼손할 우려가 많은 개정안을 방통위가 방심위와 협의 없이, 시청권 보호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방송법 시행령 개정에 따른 후속 조치라는 이유로 제목광고를 도입하는 것은 졸속행정”이라며 “이건 아무 대책도 없이 개정하겠다는 거다. 그래서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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