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동물원’에 사는 현대인에게 여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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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동물원’에 사는 현대인에게 여행은
[현장] 여섯 번째 PD인문학 포럼 ‘여행과 인간’
  • 강만지 한국PD연합회 사무국
  • 승인 2015.08.2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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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PD교육원 주최 8월 인문학포럼이 ‘여행과 인간의 관계’를 주제로 지난 26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1층 통인카페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PD연합회

한국PD교육원 주최 8월 인문학포럼이 ‘여행과 인간의 관계’를 주제로 지난 26일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1층 통인카페에서 열렸다. 이번 포럼에는 안나푸르나에서 파타고니아까지 1년 동안 세계를 여행한 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정신경영아카데미 대표)와 EBS <세계테마기행> PD인 김성문 엔미디어 테마기행 팀장이 발제를 맡았다.

문요한 박사는 “도시의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자연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도시 동물원’에 사는 것과 같다”며 동물원의 동물이 정형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인간에게도 자기파괴적 행동, 이상행동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그러했듯 ‘이동성’을 회복하는 것 즉 여행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문 박사는 1년 여간 유럽, 안나푸르나, 남미를 여행한 경험을 소개하며 “여행은 인생의 베이스캠프와 같다”며 “산을 오르다가 힘들고 지칠 때 베이스캠프에서 잠시 쉬었다가 산을 오르는 것처럼, 여행은 재충전을 통해 인생에서의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힘을 준다”고 말했다.

김성문 PD는 여행을 오프로드에 비유하며 "잘 포장되어 있는 길보다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말했다. 김 PD는 "해외 촬영을 위해 200여개 국을 여행하면서 관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동물이나 자연을 관광상품으로만 취급하지 말고 야생 상태 그대로 두고 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PD인문학 포럼’은 한 주제에 대해 화제의 프로그램을 만든 PD와 그 분야 최고 전문가를 초빙해 학계, 시민사회, PD의 시선으로 인간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로, 지난 3월부터 시작해 다섯 차례 포럼이 진행된 바 있다.

다음은 문요한 박사 강의 내용 주요 정리다.

우리는 ‘왜’ 여행을 떠나는가

야생의 상태가 아닌, 갇혀있는 공간에서 동물들은 이상 행태를 보인다. 동물원의 우리에 갇힌 동물들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이나 자기 파괴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사자 등이 같은 장소를 왕복하는 것이 대표적인 정형행동이다. 야생의 환경이 아니라 콘크리트로 지어진 우리 안에서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나타나는 이상행태다.

▲ 문요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인간도 다르지 않다. 도시의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여 자연과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은 ‘도시 동물원’에 사는 것과 같다. 동물들이 정형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인간의 자기파괴적 행동, 이상행동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우울증과 무기력 등 현대인들이 겪는 이상 증세는 자연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이동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

‘여행’은 이동성을 회복하는 좋은 방법이다. 인간에게는 ‘여행’ 유전자가 있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인간은 400만 년 가량 수렵과 채집을 하며 이동을 하다가 1만 년 전부터 정착하며 살기 시작했다. 여행을 통해 이동성을 회복해 나가는 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여행이 주는 힘

인간의 뇌는 각각 감각, 감정, 이성 영역을 관장하는 곳이 나뉘어 있다. 이 세 가지 뇌의 영역이 골고루 발달해야 건강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현대인들은 이성 영역만이 지나치게 발달되어 있다. 생각이 많게 되면, 현재에 머무를 수 없다. 생각과 감정은 늘 우리를 미래나 과거로 움직이게 한다.

반면, ‘현재’에 머무르게 하는 힘은 감각이다. 산책, 운동 등을 통해 인간이 움직일 때 감각기관이 활성화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동안 살아가면서 좀처럼 느끼지 못했던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행은 현실을 떠나서 현재에 머무를 수 있게 하는 힘을 준다.

삶을 살아가면서 불확실성을 견디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여행이 바로 이러한 힘을 불어넣어 준다. 모호함과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부정의 수용능력(negative capability)’이라고 한다. 불안한 사람들은 불확실함을 줄이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계획을 세우고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행을 하다보면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제들과 마주하면서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갈 힘을 준다.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심리적 퇴행’이 일어난다. 인생에서 아름다웠던 순간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퇴행을 나쁘게 볼 수 없다. 아름다운 추억을 통해 스스로 회복한 후 현실과 맞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여행이 그런 힘을 준다. 때문에 여행을 ‘인생의 베이스캠프’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 재충전을 하고 인생에 힘든 순간을 마주할 때 이겨낼 수 있게 한다.

물론 인간은 자유와 질서, 이동과 정착과 같이 상반되는 성향을 동시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두 성향을 잘 이해하고, 이동과 정착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계속 떠나려고만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모험을 두려워서 제 자리에만 머물러 있는 것도 문제다. ‘삶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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