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드라마 전성시대?!] ②막장인 듯 아닌 명품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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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장드라마 전성시대?!] ②막장인 듯 아닌 명품 드라마
막장이라 함부로 말하지 말라
  • 김연지 기자
  • 승인 2015.10.29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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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① 막장의 공식
② 막장인듯 아닌 명품 드라마
③ 막장드라마를 위한 변명

출생의 비밀, 기억상실, 불륜, 복수···. 이른바 ‘막장’코드. 그러나 이런 막장코드를 갖고 있는데도 막장이라 욕을 먹지 않는 드라마들이 있다. 곰곰이 따져보면 소재는 분명 지극히 통속적인데도 오히려 ‘수작’ 혹은 ‘명품드라마’라고 평가받은 드라마들이 부지기수.

막장일 것 같은데 막장 아닌 드라마. 이 드라마들이 막장이 아닌 명품이라 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쟤네도 막장인데 왜 우리만 욕하느냐고 억울해 할 막장극들이여,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요한 건 맥락!

막장극이 막장이라고 욕을 먹는 가장 큰 이유는 막장코드가 전후 맥락을 무시한 채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의 준말)하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장면 그 자체보다는 그 장면이 엉뚱한 전개로 이어진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극의 흐름과 맞지 않는 장면이 툭 튀어나온다거나 개연성 없이 갑자기 사람이 죽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면 시청자는 실소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극적인 상황이나 장면이라 하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을 해치지 않고 납득 가능하게 표현한다면 오히려 흡인력 있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현재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애인있어요>가 그 예다. 온갖 자극적인 코드들로 버무려져있지만, 어째서인지 시청자에게 욕을 먹지 않는다. 구설수에 오르기는커녕 일부 시청자들은 ‘명품 드라마’라고 극찬하기까지 한다.

유선주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에 대해 “자극적인 설정이 있더라도 전후 사건이 충실하고 탄탄하게 뒷받침 된다면 시청자는 설득을 당한다”라며 “1차적으로 납득이 되도록 만들어진다면 그건 편의상으로 자극만 추구하는 막장극과는 달리 평가되는 작품이 된다”라고 설명했다.

설정 하나하나, 장면 하나하나를 놓고 막장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감정선의 미학

▲ JTBC '밀회'

시청자가 극중 인물에 공감하도록 끌어가는 힘도 ‘수작’이라 평가받는 드라마들이 갖춘 요소다. 같은 행동, 같은 말을 하더라도 얼마나 섬세하게 극중 인물의 심리를 묘사하고 감정을 전달하느냐에 따라 시청자의 반응은 달라진다.

JTBC <밀회>(2014)나 KBS <비밀>(2013)의 경우, 소재 자체는 통속적이지만 인물의 감정선을 충실하고 섬세하게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재의 자극성 그 자체보다는 그런 장치들로 인한 인물의 심리변화와 행동을 충실히 다루었다는 것이다.

<밀회>에서 ‘어린 제자와 중년 여성의 사랑’이라는 자극적일 법한 소재가 상류사회의 위선과 인물들을 둘러싼 역학관계 등을 드러내는 장치로서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1차적으로는 시청자의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시청자들이 극중 인물의 감정선을 이해하도록 하는 데 실패했다면 <밀회> 역시 막장으로 기억되는 드라마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같은 소재를 쓰더라도 감정선을 어떻게 살리느냐에 따라 공감할 수 있는 인간 본성의 이야기가 되기도, 막장극이 되기도 한다.

‘막장’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이런 소재들로 무엇을 말하려 하느냐이다. 우리가 막장이라고 부르는 소재와 설정들은 사실 오래된 고전이나 신화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코드들은 어쩌면 ‘극’의 본질적 특성일지도 모른다. 불륜과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장치로 쓰이거나 예술적 접근 방식이 있다고 하면 그것을 막장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우리가 현재 ‘막장’이라고 이야기하는 소재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도 찾아볼 수 있듯이 오래전부터 쭉 존재해왔고, 그게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는 건 그런 소재들이 꽤나 본질적인 것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라며 “대부분의 드라마가 막장스러운 소재와 코드들을 어느 정도는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어 “단순히 시청률을 확보하려는 목적으로 자극적인 코드와 설정을 사용한다면 막장이 될 수밖에 없지만, 소재 자체보다는 어떤 목적으로 어떤 주제를 그려내려고 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라며 “결국에는 그걸 어떻게 활용하느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 KBS '비밀'

결론적으로, 소재 자체만을 막장의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게 핵심이다. 흔히 막장이라고 지적되는 요소들이 소재로 등장하더라도 전후 맥락 상 납득이 가능하고, 인물의 감정선이 잘 살아있고, 이를 통해 도달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다면 그 드라마는 막장이 아닌 수작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 뿐 아니라 영화, 소설 등도 마찬가지다. 장르를 넓혀 생각해봐도 소재로만 막장 여부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에서 ‘막장 소재’는 시청자들을 흡인력 있게 끌어들여 극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장치가 된다. 결국 드라마의 본질적인 특성상 막장이라 보일법한 여러 소재들을 차용할 수밖에 없지만, 그 소재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표현하는지, 그 소재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중요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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