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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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KBS 새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

▲ 자신을 찬 첫사랑에게 당당히 대응하는 주은의 모습.ⒸKBS

또 ‘외모’와 ‘변신’이다. KBS 새 월화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는 김아중 주연의 영화 <미녀는 괴로워>부터 한예슬 주연의 SBS 드라마 <미녀의 탄생>, 최근 주가를 올리고 종영한 드라마 MBC <그녀는 예뻤다>의 연장선에 있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그녀는 예뻤다>의 여주인공 혜진(황정음 분)이 과거에는 예쁜 아이였지만 주근깨 가득, 촌스러운 폭탄머리로 ‘역변’했다면 <미녀의 탄생>이나 <오 마이 비너스>의 여주인공들은 뚱뚱하다. <오 마이 비너스>의 여자 주인공인 강주은(신민아) 은 고등학교 때는 동네가 알아주는 ‘퀸카’였으나 변호사라는 꿈을 이룬 후부터 점점 살이 쪄 ‘투턱’이 됐다.

이처럼 주인공의 외모나 ‘역변’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가 갖는 기본 설정은 비슷하다. 주인공(여자든 남자든)은 보통 자신의 외모에 불만족해하고 자존감이 낮다. 주변 상황은 이보다 절망적이라 주인공을 더 ‘불쌍하게’ 만든다. 남자친구에게 차이고(<오 마이 비너스>), 취업에서도 불이익을 받고(<그녀는 예뻤다>), 심하게는 배우자의 외도 이유까지도 단지 주인공이 멋있거나 예쁘지 않아서(<미녀의 탄생>)라고 설정한다. 하지만 모두 결론에 가서는 남녀 주인공이 외모가 아닌 서로의 진심을 발견하는 과정을 그려내 사랑을 강조한다. 외모가 아닌 내적 가치의 소중함을 알아본다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는 항상 복잡한 4각 관계 애정 구도에서 진행된다.

▲ 드라마는 '역변'한 주은(신민아 분)과 '정변'한 수진(유인영 분)의 경쟁 구도를 부각한다.ⒸKBS

<오 마이 비너스>의 기획의도 역시 ‘비너스의 완성은 예뻐지는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 사랑받고,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드라마 역시 외모가 아니라 내적인 미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겠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비너스>의 1회부터 뚱뚱한 여주인공, 백마탄 왕자 재벌 2세와 나쁜 옛 애인, 여주인공을 무시하는 예쁜 악녀로 구성된 4각 관계가 시작한다. 주은(신민아 분)에게 일방적 이별통보를 하는 첫사랑 임우식(정겨운 분)은 이렇게 말한다. “넌 지성과 미모의 법조인이 되고 싶다고 했어. 근데 너 너무 많은 걸 잃었어. 주은아.” 라고 말하는 우식의 대사. 과연 주은은 뭘 그렇게 많은 걸 잃었을까.

우식이 과거에 비해 살을 빼 예뻐진 오수진(유인영 분)과 이미 몰래 썸을 타고 있는 걸 보면 주은이 잃은 건 분명 ‘예쁜 외모’일 것이다. 드라마는 과거 수진이 지금의 주은보다 더 뚱뚱한 ‘슈퍼 뚱땡이’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주은과 수진의 전세역전을 계속해서 회상 장면을 통해 교차한다. 그리고는 마치 예전엔 뚱뚱했던 수진이 날씬한 몸을 얻어 성공한 것으로 묘사되고 반대로 살이 찐 주은을 대비해 승자와 패자 구도로 연결 짓는다. 진정한 사랑을 담아낼 거란 기획의도와는 달리 드라마부터가 연출과 대사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살찌면 애인도 잃고, 직장에서도 무시당한다“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끊임없이 주입시키고 있는 모습이다.

특히 이 잣대는 여성에게 더 엄격하다. 뚱뚱한 여성은 자기관리에 실패한 여성이며, 전문성이 결여된 여성이라는 인식을 준다. 누구든 남들보다 무게가 좀 더 나간다고 해서, 사회에서 인정하는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해서 극 중 주은이 받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고, 그럴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주은의 모습은 사회에서, 직장에서, 15년 간 만난 애인에게까지 “뚱뚱해서 문제야”라는 식의 말을 들을 정도로 뚱뚱하지 않다는 점도 시청자의 공감과 감정이입을 방해한다. 실제로 신민아는 극 중 주은 역을 위해 특수 분장으로 턱을 하나 더 만들고 실제 몸집을 불려 방영 전부터 화제가 됐다. 77키로그램 운운하지만 얼굴에 살 좀 붙은 신민아의 ‘본판’ 때문인지 주은은 귀엽기까지 하다.

▲ 본격 시작되는 4각 구도. 백마탄 왕자 존 킴(소지섭 분)은 역시나 재벌 2세다.ⒸKBS

2회에서 자신에게 ‘역변한 외모’로 많은 걸 잃었다는 우식의 말에 “그래? 나 변호사 된 게 다행이다. 미모는 무너졌지만 지성은 아직 건재하거든”이라고 당당하게 대응하는 주은의 대사가 통쾌하고 가슴에 와닿는다. 변호사라는 꿈을 이루고 로펌에서 커리어를 쌓아가는 주은이 대체 왜 그렇게 위축되어 있고,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시청자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의 전문분야를 개척하는 주인공, ‘억울한 사람을 위해 변호한다는’ 철학을 가진 변호사 주은은 누구보다도 멋지기 때문이다.

결말이 예측 가능할 정도로 진부해져버린 소재와 상황을 앞세운 드라마 <오 마이 비너스>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 아직 모를 일이다. 하지만 단순히 ‘뚱뚱했던’ 주인공이 다이어트에 성공해 전 남자친구에게 복수하고 재벌 2세와 사랑까지 쟁취한다는 식의 스토리라면 <미녀의 탄생>의 아류나 ‘TV판’ <미녀는 괴로워> 정도로 시청자의 기억에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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