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의 판타지에 응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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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의 판타지에 응답하는 이유
[방송 따져보기] ‘응답하라 1988’ 익숙한 ‘남편찾기’와 함께 소환한 ‘공동체’의 가치
  • 김세옥 기자
  • 승인 2015.12.09 07: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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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tvN, 이하 <응팔>)의 인기가 뜨겁다. 이제 겨우 반환점을 돌았을 뿐인데 전작인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를 뛰어넘는 시청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 5일 방송된 <응팔> 10화의 시청률은 13.4%(닐슨코리아)로 같은 날 지상파 시청률 4위를 기록한 <무한도전>(MBC, 13.8%)과 거의 비슷할 정도다.

3년 전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로 이 시리즈가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유료방송의 한계를 말하기 머쓱할 만큼 높은 시청률로 인기를 증명했던 터라 두 자릿수 시청률의 의미를 말하는 건 사실 새삼스럽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방송이 끝난 후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는 방송 클립을 기다리는 이들도 많은데 지난 5일 택(박보검)이 친구들 앞에서 덕선(혜리)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장면을 담은 영상은 현재(12월 7일 기준) 45만회 이상 조회됐다.

이미 성공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응답하라> 시리즈의 이야기 구조와 연출, 그리고 평범한 남자/여자 아이의 설렘의 감정들을 반짝반짝하게 표현하는 배우들이 <응팔>의 인기를 견인하는 가장 큰 요인일 터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작인 <응사>의 최고 시청률(마지막회 11.9%, 닐슨코리아)을 뛰어넘는 시청률을 보이는 <응팔>의 인기를 모두 설명할 순 없어 보인다. 시청자들이 <응팔>에 이렇게 열렬하게 응답하고 있는 이유는 뭘까.

▲ tvN <응답하라 1988> ⓒtvN

사실 <응팔>은 전작들과 비슷하고, 또 다르다. 이야기의 축이 되는 여주인공의 남편 찾기나 시대의 트렌드와 소품을 세밀하게 고증하는 모습은 전작들과 다를 바 없지만, 중심이 되는 가정의 범위가 넓어졌다.

그 결과 전작들에서 일화(이일화)와 동일(성동일)이 먼저 떠난 친구의 자식들을 제 새끼처럼 거두거나(<응칠>) 하숙집 주인이라는 역할 속에 대학 입학으로 서울이라는 낯선 도시에 모인 청춘들을 넉넉히 품는(<응사>) 유사 부모의 모습은 <응팔>에서 골목의 가족들을 책임지고 있는 어른들로 확대됐다. <응팔>의 이 가족들은 끼니마다 가장 맛있는 찬을 나누고, 끼니를 챙겨줄 엄마 혹은 아빠가 부재한 골목 안팎의-자식의 친구인-아이를 기꺼이 가족의 밥상에 앉힌다.

쌍문동 골목길에서 이런 돌봄은 아이들만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전작인 <응칠>과 <응사>의 이야기가 일화와 동일이 꾸린 가정에서 시작했던 것과 달리 쌍문동 골목으로 확장된 <응팔>의 어른들은 아이들뿐 아니라 서로의 삶을 돌본다.

몇 년 전만해도 골목 최고의 빈곤층이었으나 하루아침에 최고의 부자가 된 미란(라미란)은 꼴찌에 가까운 성적으로 부모를 근심케 하는 덕선이 과외를 받을 수 있도록 때때로 1등을 할 만큼 성적이 좋은, 그래서 사실 과외가 필요 없는 아들 정환(류준열)의 과외 선생으로 덕선의 언니 보라(류혜영)를 붙여주며 함께 공부하도록 돕고, 덕선의 수학여행 비용을 빌리러 온 일화가 차마 입을 떼지 못하고 돌아가자 밤늦게 무심히 건넨 옥수수 바구니 속에 돈을 넣어둔다.

부인과 사별하고 천재 바둑기사인 아들 택과 둘이 조용하게 살아가는 무성(최무성)의 냉장고엔 늘 이웃들이 챙겨준 반찬이 떨어지지 않는다. 무성이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고 입원하자 이웃들은 돌아가며 병원을 찾아 그의 머리를 감겨주고 식사를 챙긴다. 1988년 그 시절에 연봉 1억이 넘는 아들을 뒀음에도 절대 허튼 돈을 쓰지 않는 무성이지만 그 역시 이웃이자 고향 동생인 선영(김선영)이 돈 때문에 어려움을 겪자 1000만원의 거금을 망설임 없이 내놓는다.

▲ tvN <응답하라 1988> ⓒtvN

이제 막 첫사랑의 두근대는 감정을 알게 된 골목의 아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향해 직진하거나(보라-선우(고경표)) 수줍게 마음을 내비치고(택-덕선) 낯선 감정에 수줍어하다 타이밍을 놓쳐 고민에 휩싸이는(정환-덕선) 동안, 골목의 어른들은 탈주범 지강헌이 인질극 끝에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외치며 자살하고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위해 하루아침에 서울 밖으로 쫓겨난 철거민들이 발생했던 시절을 서로를 이렇게 ‘가족처럼’ 보듬으며 살아낸다.

그러나 전작인 <응칠>과 <응사>가 그러했듯 <응팔>은 1988년의 골목이 삶의 대부분인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이 살아내야 했던 골목 밖을 포함한 현실을 직접 마주하지 않는다. 운동권 대학생인 보라가 1988년이라는 시대를 말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는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종국엔 골목의 어떤 어른들도 대하기 쉽지 않은 까칠한 서울대생인 보라가 때론 부담스럽기까지 했던 부모의 사랑을 느끼거나, 친구와 양다리를 걸친 남자친구의 뒤를 이어 등장할 새로운 인물(선우)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배경이 되는 풍경은 철저하게 고증하되 1988년의 사람들이 몸으로 부딪혀 살아낸 삶은 은유로 표현하다보니, 모두가 비슷하게 어렵던 시절을 거쳐 중산층이 급부상하며 빈부격차가 사회 문제로 거론되기 시작한 시대의 현실은 언급되는 듯 언급되지 않는다.

미란이 남편 성균의 생일선물로 2000만원을 턱하니 내주고 정환이 에어조던을 신고 있는 모습과 빚보증으로 재산을 날려 친구네 집 반지하에 세 들어 사는 일화와 동일의 둘째 딸 덕선이 차마 부모에게 사달라고 말할 수 없는 ‘마이마이’를 수학여행 장기자랑으로 획득하려 하는 모습에서, 사별한 남편의 연금으로 근근하게 생계를 꾸리고 있는 선영이 메이커 타령 한 번 하지 않는 어른스러운 아들 선우의 모습을 안쓰러워하는 데서 짐작 가능할 정도로만 드러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은유되는 빈부의 차이는 확장된 유사 가족, 하나의 큰 공동체로 살아가는 쌍문동 골목의 어른들이 서로를 챙기고 돌보면서 희석되고, 그렇기에 갈등으로 번지지 않는다. 어른들이 이렇다보니 골목의 아이들 역시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암암리에 형성될 수도 있는 서열화 된 모습을 보이거나 뒤에서 서로를 질투/조롱하지 않는다.

물론 이런 공동체의 삶은 골목 밖을 벗어나면 1988년에도 판타지다. 일화와 동일의 아들 노을(최성원)이 학교의 친한 친구들에게조차 “반지하”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놀림을 당하고, 구김살없이 밝은 덕선 역시 친구들을 반지하의 집으로 부르기까지 용기가 필요했음을 고백한다. 지강헌이 외쳤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세상은 <응팔> 속 아이들에게도 골목 밖을 벗어나면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응팔>이 그리는 1988년 쌍문동 골목의 아이들, 그리고 어른들도 매일 저녁이면 너른 공동체의 품안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렇게 덕선이네, 정환이네, 택이네, 선우네, 동룡(이동휘)이네 가족은 현실을 견디며 1988년을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 tvN <응답하라 1988> ⓒtvN

1988년이 지나고 2015년 현재 <응팔>을 시청하고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다. <응팔>이 그리는 1988년의 쌍문동 골목은 현실이기도 하지만 판타지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1988년에도 온전히 현실일 수 없던 <응팔>의 쌍문동 골목길은 2015년 벼랑 끝의 현실과도 삶을 살아내는 이들이 복원하고 새롭게 만들고 싶은 ‘마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2015년 지금에도 공동육아나 생활협동조합 등으로 관계 속에서 서로를 도우면서 사는 것을 실천하려는 모습들은 곳곳에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으며, 아직 당도하진 못하고 있지만 소원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연세대 교수는 <다시 마을이다>에서 작금의 ‘위험 사회’를 살아내기 위한 방안으로 ‘마을’을 얘기한다. “갈수록 사람들을 협박하고 몰아치는 신자유주의 무한 경쟁 시대를 개인 힘으로 어떻게 살아남겠는가. 개인 차원의 적자생존이 아니라 집단적 생존을 고려해야 하고, 집단적 생존은 모두가 모여 서로의 존재 자체를 축복하는 축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금수저와 흙수저의 계급 분류에 크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저마다 분투해도 삶을 살아내는 것 자체가 도전처럼 되어버린 2015년 ‘헬조선’의 현실에서 1988년에도 판타지였던 <응팔>의 공동체는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상상하고 싶은, 누군가는 이미 상상하고 그려내려 노력하고 있는 미래일지도 모른다. 이미 정점은 지나버린 ‘복고’ 트렌드를 정면에 내세우는 <응팔>에 여전히 많은 시청자들이 응답하고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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