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프로듀싱을 말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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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로듀싱을 말하는 이유
[배기형 PD의 글로벌 프로듀싱]
  • 배기형 KBS PD
  • 승인 2015.12.31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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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살림살이는 매우 팍팍하다. 방송사 형편이 어려워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벌써 수 년 전부터 그러하여 왔고, 어쩌면 이번 세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진작 예고되었던 일이기도 하다. 그 이유를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프로그램 제작비는 올라가고 돈 쓸 곳은 많아지고 있는데, 방송사의 주 수입원인 광고가 예전만큼 잘 팔리지 않아서이다. 일시적으로 경기(景氣)가 좋지 않아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이겠지만, 지금 방송사들이 겪고 있는 불황은 보다 구조적인 데에 원인이 있다. 즉, 방송사 채널의 경쟁력이 없다거나 혹은 방송사에서 경영을 아주 못했다거나 하는 뭐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방송사들을 궁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방송 광고 시장이 좁은 탓이다. 우리나라 미디어 광고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에 놓여 있다. 이 말의 속뜻은 국내 광고 시장 전체의 파이가 한정되어 있기에, 채널의 경쟁력과는 상관없이 더 이상 광고 수요 자체가 늘어나기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프로그램을 제대로 만들려면, 제작비로 들어가는 돈은 계속하여 늘어만 가는데, 광고 시장은 꽉 막혀 있다니 그야말로 큰일이다. 지난 25년 동안 방송사를 직장으로 삼아 일해 왔고, 앞으로도 수 년 이상 더 일을 해야 하는 필자로서는 현재의 상황이 무척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방송사들을 궁핍하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방송 광고 시장이 좁은 탓이다. ⓒpixabay

방송 콘텐츠 생태계의 위험요인

방송사의 업(業)은 네트워크를 통한 콘텐츠 서비스 제공이다. 특히 그 서비스 상품 중에서 텔레비전 콘텐츠는 모든 시청각 문화 콘텐츠의 중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콘텐츠의 플랫폼과 네트워크의 확장이 가속화 되고 있지만, 그 시발(始發) 플랫폼으로서 방송은 여전히 가장 많은 대중의 접근성을 담보하고 있는 매력적인 매체이다. 방송 콘텐츠에는 우리 사회가 가지는 가치의 공정(工程)과 그 결과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방송 콘텐츠 그 자체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문화적 가치와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콘텐츠를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서만 보는 시각으로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비시장적 가치 영역이다. 그렇지만 시장 논리로부터 이러한 문화적인 가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방송 콘텐츠의 지속적인 생산을 유인하기 위한 시장에서의 산업적인 물적 토대가 중요하다. 방송 콘텐츠 산업이 건강하게 발전해야 우리 사회의 문화적 가치들이 온전히 제대로 소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장에 있는 수많은 기업 중의 하나 일수밖에 없는 방송사의 살림살이를 우리가 공적(公的)으로 걱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방송사에서 우리가 매일 매일 소비하는 문화적 가치인 콘텐츠를 생산하고 또 유통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콘텐츠가 만들어져서 소비자는 그 대가를 흔쾌히 지불하고, 이것이 다시 양질의 콘텐츠 생산에 투자되는 것이 콘텐츠 산업의 선순환(善循環) 시스템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광고 중심 시장 구조 어디에선가 이 시스템이 삐꺽거리고 있다. 콘텐츠를 제작하였으나 수입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그 대가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그래서 콘텐츠에 대한 재투자 또한 부실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 산업의 지속가능한 에코시스템(ecosystem)에 균열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 신문이나 방송과 같은 미디어 기업들은 거의 예외 없이 광고를 주 수입원으로 삼았다. 신문사의 경우 신문 구독료가 아니라 광고 수입에 기업의 재정을 대부분 의존하여 경영해왔다. 방송사의 경우에도 광고가 주된 수입원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시청자로부터 수신료를 받고 있는 KBS도 예외가 아니다. 즉, 미디어 기업의 보편적인 수익 모델은 광고인 것이다. 지상파의 독과점이 깨어지면서 광고에 기반을 둔 방송 미디어 시장 구조가 아주 각박하게 변하게 되었다. 케이블방송과 IPTV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게다가 종합편성 채널들까지 한꺼번에 가세하게 되었으니, 엎친데 덮친격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큰 진짜 위협은 바로 인터넷으로 인한 미디어 환경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미디어 시장 구조 자체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는 혁명적인 변화이다. 미디어 이용 환경의 패턴이 종이 매체에서 TV로 이동하였고, 이후 포털(portal)이 급격히 세(勢)를 넓히어 가던 중, 지금은 콘텐츠 소비의 중심 플랫폼이 모바일과 소셜 미디어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는 모양새다. 기업들이 광고에 쓸 수 있는 돈은 제한되어 있기 마련인데, 소비자들이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는 공간이 전통적인 TV 뿐만 아니라 인터넷과 모바일로 확장되다 보니 자연스레 포털과 소셜 미디어 사업자에게 기업의 광고비가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수년 동안 인터넷 및 모바일 부문에서 방송광고시장의 파이를 많이도 잠식하였다. 아니 그냥 잠식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온라인 광고가 전통적 신문과 TV의 광고 시장 매출을 크게 압도하고 있다. 그러니 더 더욱 방송사에서는 내수 광고에만 의존하기가 힘들게 되었다.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한 방송사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는 중이다.

기본적인 대책으로는 비용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력과 작업 공정에서 방만한 경영 요소를 찾아 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프로그램 제작 프로세스를 최소화 하고 핵심 사업에 보다 집중하며,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등 혁신적인 예산 절감이 요구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그야말로 소극적인 임시처방 일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수익을 증대하여 안정적인 방송 서비스를 할 수 있는 재정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수입이 줄어드니 거기에 맞추어 지출을 줄이는 식의 미봉책(彌縫策)이기 때문이다. 마치 이미 다 헤어진 신발을 신어놓고 신발 끈만 동여매는 식이다.

▲ 작금의 환경은 방송사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고심하게 하고 있다.

글로벌 프로듀싱은 생존에 대한 실천적 고민이다

필연적으로, 작금의 환경은 방송사들로 하여금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고심하게 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보다 많은 외부 협찬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협찬을 통한 제작비 조달과 수익금 마련은 우선은 달콤한 꿀 같지만 결코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서는 안 될 독(毒)이다. 왜냐하면 협찬은 미심쩍은 그 대가 여부와 상관없이, 미디어 기업의 정체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고, 시장질서와 콘텐츠 산업 생태계의 왜곡(歪曲)을 가져오는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TV 광고 등 올드 미디어의 매출 하락 속에 방송사가 선택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바로 콘텐츠 유료화 모델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국내 케이블 및 IPTV에 대한 재전송료 인상을 통해 콘텐츠 제 값 받기에 나서고 있으며, 온라인 콘텐츠 유통 수익 배분을 통해 재원을 다변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이제까지는 대부분의 콘텐츠를 간접 수혜자인 광고주에게 팔았지만 이제는 미디어 소비자에게 직접 콘텐츠를 파는 것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찾고 있다. 그래서 방송사들은 콘텐츠가 유통되는 디지털 플랫폼의 개수를 늘리거나 기존 플랫폼을 통해 추가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

사실, VOD 및 능동형 미디어 소비가 증가하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 행태의 획기적 변화는 방송사들에게 기회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경쟁적으로 N 스크린 서비스를 가져온 새로운 플랫폼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포털과 통신사업자 등 막강한 자본과 플랫폼을 보유한 경쟁자들이 할거(割據)하고 있어, 자칫 잘못하면 방송 사업자들이 시장에서 도태되어 퇴출될 위기가 상존(常存)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모호해진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이미 정글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이래저래 방송사들의 채산성은 어둡고, 미래는 불안하다. 이것의 핵심 원인은 시장 상황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플레이어들을 뛰어들게 한 정치적 논리에도 원인이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우리의 미디어 내수 시장이 좁아서 고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콘텐츠 비즈니스는 고부가가치의 미래 성장 동력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디지털화에 따른 빠른 파급효과와 추가적인 소비와 판매를 위한 저렴한 한계비용 덕분에 제대로만 만들면 대박을 칠 수 있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추가적인 소비와 판매를 담보할 수 있는 시장이 있을 때에 비로소 유효하다. 전 국민들에게 회자되는 인기 프로그램을 한 시즌에 몇 개씩이나 만들어 내는 채널도 (필자가 지금 말하는 채널은 지상파보다 훨씬 상업적인 선택을 하고 또 시장 경쟁력도 뛰어난 케이블 채널이다) 여전히 만성적인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방송 콘텐츠 사업자들은 새로운 서비스 영역인 OTT 사업에도 뛰어들어 확장된 플랫폼으로 수익을 추가해 보지만, 좀처럼 전체 수지(受支)는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굉장히 히트를 쳐도 이것을 만든 회사는 경제적으로 별 재미를 못 보는 구조라면 우리 방송 콘텐츠 산업은 원천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 이유는 다시 말하거니와 우리 콘텐츠 시장의 파이 자체가 작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나라 콘텐츠 비즈니스에 주어진 가장 큰 한계와 위험 요소는 좁은 내수시장이다. 제대로 경쟁력 있는 우수 콘텐츠를 만들었다 하여도 내수에서 콘텐츠 판매나 광고를 통해 크게 이익을 보기 힘든 구조라는 것이다.

이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나라의 콘텐츠 생태계는 건강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自明)하다. 우리 콘텐츠 산업이 제 살길을 찾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에 진출해야 한다. 앞서 말한 저렴한 한계비용의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추가적인 소비와 판매를 위한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내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부문으로 영역을 확장하여 우리 콘텐츠의 소비 시장을 넓혀야 하는 것이다. 이미 글로벌 콘텐츠 시장은 북미와 유럽이 전통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선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마냥 주저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는가. 이것이 바로, 이제 우리가 콘텐츠를 말할 때 세계시장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 콘텐츠 산업이 살아남자면 세계 시장에서, 세계적으로 사고하고, 세계적으로 프로듀싱 하여야 한다.

▲ 미디어의 광고 매출 하락보다 더 큰 진짜 위협은 바로 인터넷으로 인한 미디어 환경 변화에서 비롯되었다.. ⓒpixabay

플랫폼과 국경의 경계를 넘어서

방송의 가치 사슬을 보면, 프로그램의 장르나 성격에 관계없이 기획-제작-서비스 전달- 고객 마케팅 및 사후 관리의 기본적인 과정을 통해 가치를 부가해 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보다 단순화 하자면 콘텐츠 제작과 플랫폼에서의 서비스, 이 두 영역이 방송 사업이 가지는 고유한 경쟁력의 원천이다. 플랫폼은 이제 전통적인 TV에 한정되지 않는다. 콘텐츠가 유통되는 플랫폼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브로드밴드 환경의 개선과 전송 기술의 향상 그리고 이용 가능한 단말기의 확대라는 기술적인 발전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는 소비자들의 콘텐츠 이용에서 시공간적 제약을 해체했다. 소비자가 언제 어디서 어떤 콘텐츠를 어떤 단말기로 이용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오픈 플랫폼으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방송사의 구조적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TV를 넘어서는 콘텐츠의 기획과 생산 그리고 유통이 필요하다. 이제 전통적인 TV를 벗어나 다양한 플랫폼과 단말기에서 방송 콘텐츠의 소비가 확산되고, 모바일과 인터넷 등 여러 매체 플랫폼에 대응할 수 있는 콘텐츠가 요구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트렌드 요구를 반영해 다각적인 차원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 개발하는 것이 방송사 재정위기를 타개하는 한 축의 해결 방안일 것이다. 그 축의 수평적 확장이 바로 국제공동제작을 통한 글로벌 시장 개척이다.

플랫폼 서비스에 있어서 국경(國境)이라는 지리적 영역은 이제 점차 없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국경 진입이 용이한 범용 인터넷 망이 콘텐츠의 유통 창구가 됨으로써 경쟁 구도가 국내에서 전 세계로 확대된다. 이것은 방송 콘텐츠 사업자에로 하여금 콘텐츠 유통 창구를 극대화하고 이를 통한 수익 창출을 다원화하는데 기여한다. 이 사실은, 콘텐츠가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기에 수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방송 사업자들의 글로벌 콘텐츠 전략이 더욱 더 중요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미디어 환경 변화로 방송 콘텐츠 소비자의 채널 및 플랫폼 충성도가 낮아지고 소비자의 선택이 콘텐츠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여러 플랫폼에서 콘텐츠가 소비되다 보니, 개별 콘텐츠의 경쟁력이 더욱 더 중요해지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와 플랫폼의 증가로 콘텐츠의 유통 경로와 수명이 연장된 것은 콘텐츠 산업 종사자들에게 희망적인 신호이다.

방송 선진국들은 세계적인 유통을 감안하여 콘텐츠 제작에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하고 있다. 국내 방송 시장은 인구와 지리적 한계 이외에도 광고 시장의 저성장과 규제, 저가에 형성된 유료방송 시장구조 등 개별 콘텐츠에 투입할 수 있는 제작비 규모가 주요 방송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투자와 배급의 시장을 전 세계로 넓혀야 한다. 이것이 글로벌 프로듀싱과 국제 공동제작을 화두(話頭)로 삼는 이유인 것이다. 콘텐츠와 플랫폼의 구분을 넘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지우고 변해야만 하는 것이 대세인 것처럼, 투자와 제작 그리고 배급도 마땅히 국경을 넘어서야 한다. 방송 콘텐츠 산업에서 핵심 가치의 창출은 기술 향상과 시장 경쟁 속에서 그 가능성이 폭발적으로 증대된 ‘글로벌 유통’을 통해 비로소 실현된다. ‘TV를 넘어서(Beyond TV)’, ‘국경을 넘어서’(Beyond Borders) 변화하고 있는 거시적 유통 환경을 읽고 우리 콘텐츠 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이루어 내기 위한 열쇠를 찾아야 한다. 글로벌 프로듀싱은 바로 그 실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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