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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1.21 15:59
  • 수정 2016.01.29 05:09

“해고자 수식어 민망하다…나는 3년차 예능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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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어느덧 해고 1년, 권성민 전 MBC 예능PD

▲ 인터넷에 회사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가 MBC 입사 3년차에 정직, 그리고 4년차에 해고를 당한 권성민 PD ⓒ김성헌

“MBC로 돌아가서 프로그램을 한다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팀에 가고 싶어요.”

권성민 전 MBC 예능PD는 “MBC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MBC로 돌아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선배들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해고무효 소송 1심 승소 판결이 난 후에 “근로자로서 복직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능국에 돌아가는 게 제일 의미가 큰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PD가 해고된 지도 어느덧 1년. 입사 3년차이던 지난 2014년 5월 17일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린 MBC의 세월호 보도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올려 권 전 PD는 회사 명예 실추 및 소셜미디어가이드라인 위반을 이유로 정직 6개월을 받았다. 징계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직 기간이 끝난 후 예능국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권 전 PD를 기다린 건 비제작부서인 경인지사로의 발령이었다.

한창 제작 현장에서 배워야 할 입사 3년차 PD에게 경인지사 발령은 마치 ‘유배’와도 같았다. 권 전 PD는 웹툰을 그렸고 자신의 처지를 그렇게 비유했다. 그러나 웹툰이 이야기하는 바는 자신이 몸담았던 MBC 예능국이 어떠한 곳이고, MBC 예능은 어떻게 제작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지였다. 그러나 MBC는 “회사를 향한 반복적 해사 행위”라며 지난해 1월 21일 1차 인사위원회에서 해고를 결정한 뒤 그달 30일 권 전 PD에게 최종적으로 해고를 통보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항상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있다. '웹툰 해고'. 징계 이유를 납득하기 어려워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2015년 9월 1심 판결, 그리고 이후 2심이 개시되고 단 한 번의 변론을 거쳐 난 선고가 나는 등 재판이 신속하게 진행됐다. 이는 권 전 PD에 대한 해고, 그리고 경인지사 수원총국으로의 전보조치가 갖는 ‘부당함’이 그만큼 명백하다는 뜻일 거다.

해고 1년. 축하할 일도 기념일도 아닌 그런 날이지만 지난 20일 서울 서교동 한 카페에서 권성민 PD를 만났다. 법원에서도 인정한 ‘MBC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내내 밝게 웃는 그는 예능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평범한 한 명의 조연출이었다. <편집자주>

▲ 권성민 PD는 인터뷰 하면서 밝은 표정으로 내내 이야기했다. ⓒ김성헌

“꼬박 1년, 시간 참 빠르다”

- 요즘 뭐하고 지내고 있나요? 지난해 9월 시작한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영상제작 전공 강의도 끝났는데.
권성민 전 MBC 예능PD(이하 권성민): 사실 12월까지는 채점하고 피드백을 주고, 의외로 강의 말고 처리해야 하는 게 많더라구요. 1월은 잠깐 여유롭게 보내고 있어요.

-근황은 페이스북을 통해 많이 보고 있어요.
권성민:
그래서 인터뷰 한다고 할 때 새삼스러웠어요.(웃음)

-강의는 다음 학기에도 하나요?
권성민:
제안은 들어왔는데, 사실 고법(해고무효 등 2심 판결)도 너무 빨리 났고, 대법원 판결도 빠르면 학기 중에 날 수도 있을 거 같아서 고민 중이에요. 학기 중에 혹시 복직하게 되면 나머지는 학교에서 알아서 할 테니 강의를 해 달라고 해서 생각하고 있어요. 설령 대체 강사가 들어온다 해도 학기 중간에 강사가 바뀌면 가장 피해보는 건 학생들이거든요.

-인기 많은 강사였나보죠?
권성민:
교수평가는 잘 받았어요. 학생들이 점수를 높게 줬더라구요. 강의를 해보니 참 재밌어요. 대학생들이랑 실습수업도 하고, 같이 제작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대학 때 과외를 오래해서 그런지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알려주는 게 잘 맞는 거 같아요. 그런데 과제에 대한 피드백을 잘 줘야 하니까 최대한 성심성의껏 하려고 노력했는데 생각보다 노동력이 많이 들더라구요. 저는 지금 다른 일도 하고 있고, 노조에서 생계비를 지원해주고, 또 이게 제 생업이 아니라 괜찮지만, 강사들에게 이 정도 노동의 대가를 받으면서 이 정도 강의나 피드백의 퀄리티를 요구하는 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업으로 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쉽지 않겠더라구요.

-지금 말하는 것도 그렇고 평소 글을 쓸 때 자신의 일상과 경험을 사회적 문제에 잘 엮어 풀어내던데.
권성민: <PD저널>에 처음 기고한 글이 제 경험을 비추어서 쓴 글인데요. 학교가 마치 그런 기회의 평등을 제공하는 것처럼 말하는데, 저는 집안 사정이 별로 좋지 않아 사교육도 못 받았지만 운이 좋아서 성적이 좋았던 케이스예요. 그런데 제가 과외를 하면서 많은 친구를 만났는데, 가정형편이나 환경에 의해 성적이 좌우된다는 걸 느꼈어요. 첫 글이 그렇다보니 뭔가 개인사랑 같이 대중적인 이슈를 이야기해야 할 거 같은? 원래 그런 걸 요구하신 건 아니었는데 말이죠. 기고하게 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 거 같은데, 2주에 한 번이니까 한 20편정도 쓴 건데요. 20편을 쓰면서 느낀 건 내가 콘텐츠가 금방 바닥나는 사람이구나.(웃음)

-그런데 글을 보면 소외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요. 글감은 어디서 찾나요?
권성민: 집이 쭉 가난했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과 늘 같이 살았고, 그랬던 게 경험들,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던 게 제일 컸던 거 같아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신앙의 영향도 있는 거 같아요. 물론 신앙이 다 있다고 그렇게 사는 건 아니지만.(웃음) 저 교회 다니거든요. (기타 치는 행동을 하면서) 이거 한 5년 했습니다.(웃음)

-그나저나, 21일이면 해고 1년(1차 인사위원회 기준)을 맞아요. 기분이 어떤가요?
권성민: 꼬박 1년이 됐군요. 시간이 참 빠르네요. 하하. 어떻게 생각하면 되게 긴 거 같기도 해요. 왜냐면 회사에 있을 때는 1년이라고 해봤자 프로그램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내고 촬영하고 편집하고 방송내고, 이거 밖에 일과가 없으니까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거든요. 지난 1년 동안은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을 경험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다 보니, 1년은 더 된 거 같아요.

페북에 1년 전 오늘, 2년 전 오늘, 3년 전 오늘 이렇게 뜨는 게 있잖아요? 지난달부터 만화가 뜨더라구요. 제가 작년에 올렸던 만화요.(참고: 여기서 만화는 권성민 PD 해고 계기가 된 웹툰) 사실은 그걸 공유할까 하다가 안 했는데, 그 전에 11월, 12월 이때에는 제가 4년 전에 한 단계씩 MBC에 합격했던 게 떴어요. 처음에 수험표를 캡처해서 페북에 올리면서 ‘여기에 지원합니다’라고 이야기했던 거, 그 후 한 단계씩 합격했던 거, 이런 게 꼬박꼬박 올라오더라구요.

그걸 보니, 아 이게 이맘때였구나, 이맘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지.(웃음) 붙을 줄도 몰랐는데 붙고 나서 잘리기까지 할지 몰랐지 이런 생각도 좀 하고. 겨울에 페북이 알려주는 게 재밌는 거 같아요. 저도 회사에 있었으면 벌써 5년차고, 올해 지나고 하면 금방 입봉하는 연차더라구요. 사실 입사했을 때는 ‘언제 입봉해?’ 이랬는데, 그거 생각하면 시간이 참 빠른 거 같아요. 그리고 복직 하더라도 입봉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웃음)

▲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의 연출자인 박진경 PD. ⓒ화면캡처

“나에게 오는 스포트라이트 부담…PD로 알아봐 주길”

-그런데 해고 사유가 된 그 웹툰 덕분에 MBC 예능 보는 재미가 더해졌어요. 꿀벌 모자 쓴 사람이 저 프로그램 PD(<무한도전> 조욱형 PD)지? 아,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박진경 PD가 그때 그 캐릭터구나 하면서 말이에요.
권성민:
진경 선배가 저한테 카톡(카카오톡)으로, 전에 한국PD연합회에서 주는 상(이달의 PD상) 받으러 PD연합회 갔는데, 사람들이 권성민 만화에 나오는 PD라면서 수군수군 거렸다고 하더라구요.(웃음)

해고되기 전까지 조연출 시간의 대부분을 같이 보낸, 오래 같이 있었던 몇 안 되는 선배 중 한 명이 진경 선배예요. 해고 후 많은 선배들로부터 응원문자가 왔는데 솔직히 말하면 제일 위로가 됐던 게 진경 선배예요. 진경 선배가 그때 저한테 직접 메시지는 안 보내고 자기 페북에 ‘뜬금없는 해고에 약간 어처구니가 없지만 걱정이 안 되는 건 그 녀석이라서 그렇다. 일할 때 일 시켜놓고 한 번도 걱정됐던 적이 없었던 녀석이라 이것도 자기가 알아서 잘 써먹고 잘 이용할거다’ 이렇게 혼잣말처럼 써놨어요.

그 말에서 위안이 됐던 게 뭐냐면, 제가 PD 본연의 역할이나 일은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말만 내세우고 혹시라도 공명심이 넘치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자꾸 의도한 바가 아니었는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고 성명 전면에 내세워지고, 그렇게 고착될까봐 부담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진경 선배가 저한테 PD로서도 잘 했다고 해 주는데 되게 위로가 됐어요.

-사실 두 분이 친하다고 하니까 안 믿겨지네요.
권성민: 사실, 제가 친하다고 주장하는 거지, 요즘 잘 나가는 대PD님이시라….(웃음) 처음 보고 같이 있으면 되게 뚱하고 말수도 없고 표정도 음침해서 좀 어려운 사람인 거 같다고 말하는데, ‘심쿵’(심장이 쿵할 정도로 놀라움) 포인트가 있어요.

“따듯함과 날카로움 있는 MBC, 그 곳에서 예능을 배우고 싶었다”

-그런데 방송사 중에서도 MBC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권성민: 제가 TV를 많이 보는 편이 아니었는데 인상 깊게 봤던 프로그램은 대부분 MBC였던 거 같아요. 그때는 MBC 내부 사정도, 방송사마다 다른 특성도 잘 몰랐는데, MBC 입사해서 보니까 MBC 이데아가 나랑 잘 맞는 곳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따듯함도 있고 날카로움도 있고, 어렴풋이 그런 것들을 MBC 프로그램에서 느꼈던 거 같아요.

-그래도 한 번에 붙었어요.
권성민: 면접장에 가서도 내가 떨어져도 상관없다는 마음이 있으니까 물어보는 거에 대해 머리 안 굴리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하고 긴장도 안 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게 제 개인적으로 제일 큰 힘 아니었나 싶어요. 붙어서 전 깜짝 놀랐어요.(웃음) ‘붙었어!’ 이러면서.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저 해고됐을 때 서명운동 해준 고등학교 선생님이요. 졸업하고 꾸준히 뵙고 있어서 합격 후 인사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시면서 너 같은 애가 합격한 걸 보니 아직 채용과정이 살아있구나 라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대학 때 취업에 필요한 스펙 준비를 하나도 안 해서 선생님도 얘가 기업에 들어가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 같아요. MBC가 채용과정이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많이 기뻐하셨죠. 지금은 공채가 없어졌지만요.

-예능PD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권성민: 예능을 지원했던 건, 사실 그 이야기 제일 많이 듣는데요. 시사교양 PD 같다는 말이요.(웃음) 사실 콘텐츠 만드는 일은 어렸을 때부터 해왔어요. 중・고등학교 때는 만화를 그리고 친구들과 연극도 하고 중학교 때 인터넷에 당시 유행했던 장르소설도 쓰고요. 고등학교 때 저랑 친했던 친구들은 음악, 미술, 디자인, 연극, 뮤지컬 예체능계로 갔거든요. 이 친구들이랑 밴드공연하고 뮤지컬, 연극 만들고 대학에 가서는 그 친구들이랑 영화도 찍었어요. 또 대학 때 국제부 프로젝트로 펀드레이징을 하면서 영상을 만들어 홍보도 하고 거리공연도 하고 디자인 상품도 만들어서 팔았어요. 이런 활동들이 굳이 방송으로 따지면 내가 해왔던 게 예능에 가깝더라구요.

그리고 콘텐츠는 기본적으로 유희적 기능을 하는 거고 뭔가 깊이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주는 역할을 하는 게 더 큰 거 같아요. 일단 콘텐츠는 무조건 재밌어야 하는 구나, 의미 이전에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하는 거여야 하는 구나, 그런 고민을 일찍 했던 거 같아요. 제가 엄청 재밌는 사람이라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매주 재밌는 콘텐츠를 만드는 곳에 가면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죠.

“나는 계속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할 사람”

-지난 1년 <뉴스타파-타파스>, <치안전문주식회사 저스티스> 등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며 지냈어요.
권성민:
그래도 회사에서 만든 것보다 훨씬 적죠.(웃음) 정직 때는 상업적이거나 정치적인 게 아니어도 제가 개인적으로 연출하는 게 조심스러웠던 면도 있고, 선배들도 얌전히 있다가 정직 끝나고 예능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해서 정직 6개월은 비교적 잠자코 있었던 편이에요. 그런데 해고되고 나서는 만들고 싶은 콘텐츠를 마음대로 만들었어요. 저는 계속 콘텐츠 만드는 일을 할 거니까요. 회사로 돌아가서 제작국에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직장은 모르겠지만 직업으로서는 이걸 계속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일부러라도 계속 콘텐츠를 만들자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한 거 치고는 많이 못 만든 거 같기도 하고요.

-바쁜 조연출 생활 때문에 해보지 못하다가 해고 후에 한 일이 있나요?
권성민:
데이트를 많이 하고요.(웃음) 지금 김진혁 PD(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전 EBS PD)께서 MBC 뿐만 아니라 해직 언론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데요. 전에 한 번 MBC 해직 선배인 최승호, 박성제, 이용마 선배와 다 같이 등산간 적 있는데 그걸 찍으러 왔어요. 그때 이건 편집 안 되고 들어가겠다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다들 해직되고 개인의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저도 연인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면서 허허허 막 웃는 게 있어요. 그래서 김진혁 PD가 재밌다는 표정으로 찍었죠. 사실 자조 섞인 이야기들이죠.

-웃픈 이야기죠. 그러고 보니 해고 후배가 판결 선배가 되게 생겼네요. 해직 선배들은 뭐라고 하세요?
권성민: 아직은 같습니다. 아직은.(웃음) MBC 해직 선배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거 같아요. 판결이 빨리 나올 거라고 말이죠.

-다른 곳에서도 많이 물어봤지만, 2014년 오유에 쓴 글이 발단이 되어 해고에 이르렀는데, 후회하지는 않나요?
권성민: 물론 성격 탓이 큰 것도 있겠지만. 저 학교 다닐 때 되게 많이 맞았거든요. 선생님들한테 반항해서.(웃음) 평소에는 안 그렇지만 저도 고쳐야 하는 점이라 생각하는데, 필요 이상으로 선생님들한테 건방질 때가 있었어요. 뿔이 날 때가 있나 봐요. 그래서 나서서 선생님한테 뭐라고 했다가 맞기도 하고. 조금 그런 게 있는 거 같긴 해요.

사실 제가 엄청난 짐을 진 것처럼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은 다 나름 합리적인 판단 안에서 하는 거예요. 이걸 올리면 어떻게든 징계가 되긴 하겠지만 그게 징계 수준이 별로 높지 않은 수준이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거 같고, 심한 수준이면 당연히 법정에 가서 무효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노조나 다른 매체라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나설 수도 있는 거였잖아요.
권성민: 언론노조나 노조나 기존 지면에서 다뤄주는 이야기들은 빤하게 들리고 듣는 사람만 듣고 너무 익숙한 이야기이고. 그런데 유머 커뮤니티에 젊은 예능 PD가 실명으로 이야기했을 때는 이 상황을 모르는 사람들한테도 훨씬 더 파급력이 있고 많이 들을 거 같은 거예요. 선배 중에는 그걸 읽고 저한테 뭐라고 한 게, 아침에 빨리 글을 내리라고 연락한 선배도 있고, 네가 많이 퍼지라고 일부러 쓴 걸 내가 뭐라고 하겠니 라고 이야기한 선배도 있어요.

-밖에 나와서 보니 MBC 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게 보이나요?
권성민:
정말 안에 있으면 답답함과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분노가 느껴지는데, 생각보다 밖에 있는 사람들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실 언론계 관계자가 아니면 미디어 전문지 뉴스를 보는 사람도 없을 거고, 노조에서 내는 성명 같은 것도 당연히 볼일 없을 거고. 시청자 입장에서는 예능도 재밌고 겉보기에는 방송도 잘 나가서,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MBC 내부 상황을 공감하기 어렵겠다 싶어요.

▲ 두번의 승소에도 강경한 MBC의 태도에 부모님이 화를 많이 내셨다고 한다. ⓒ김성헌

“나에게 오는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하나하나가 다 빚”

-그럼에도 MBC로 다시 돌아가고 싶나요?
권성민: 일단은 돌아가야죠. 원하고 말고를 떠나서 지금은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어쨌든 다른 것보다도 이 해고가 말도 안 되는 거였다는 걸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렇고 그 다음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봐야죠. 제가 미래는 생각 잘 안하는 편이라서….(웃음)

해고 때도 그랬고 정직 때도 그랬고 어떻게 해야 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한 건 아니라서요. 그래도 조합이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여러 가지 지원해주는 게 큰 힘이 되긴 해요. 그래서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저보다 주변 사람이 더 고통스러워 한다는 게 제일 큰 부담인 거 같아요.

-부모님이 걱정 많이 하실 거 같아요.
권성민: 부모님도 신경은 쓰실 텐데 거기에 대해 저한테 표현하신다거나 하진 않아요. 요즘 자주 봐서 좋아요. 한 달에 두 세 번씩 꼬박꼬박 보니까요. 부모님은 항상 제가 하는 것들을 지지해주고 이해해주셨어요. 물론 속은 타시겠죠. 아버지가 (판결 후에 나온) 회사입장을 읽고 너무너무 화를 내시더라구요. ‘내가 상암 간다’ 이러시면서요. 진짜 가실 거 같아요.(웃음) 이건 너 뿐만 아니라 부모까지 함께 헐뜯는 거라고 하셨어요. 평소엔 안 그러셨는데 MBC 공식입장을 보면서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셨어요.

그건 확실히 피곤 한 거 같아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저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는 신경을 안 쓰긴 하지만, 세상에 나를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만큼 있다는 건, 정당하냐 정당하지 않느냐를 떠나서 성가신 일인 거 같긴 해요. 한 번씩 그런 게 짜증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어요. 어쩔 수 없이. 그럴 때마다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은 삶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웃음)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텐데, <라디오스타>에서도 늘 물어보는 질문이 있죠. 권성민에게 해고란?
권성민: 한 마디로 해야 하나요? 음…. 빚이다? <오마이뉴스> 이정환 기자님이 얼마 전에 스토리 펀딩을 한다면서 저를 계속 지켜보고 있는 분들한테 메시지를 남겨 달라고 요청이 와서 생각을 하다가 써서 보내드렸거든요. 그때 써서 보낸 말이 맞는 거 같아요.

해고자라는 타이틀을 받게 돼서, 본의 아니게 이런 저런 노동현장이나 다른 해직상황에 있는 분들하고 교류할 일도 있고 관련해서 인터뷰 하거나 알게 되고 만나는 분들도 많은데요. 되게 민망할 정도로 저는 편하게 지내고 있는 해고자라서요. 노조의 힘이 많이 빠졌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함께 해주는 조합원이 많은 노조 소속으로서 법정 싸움이나 생활 문제 등 고생 안 하고 있거든요.

저한테 관심 가져주고 기사도 다뤄주고 하는데, 사실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사 한 번 나가기 어려운 분도 많잖아요. MBC 안에도 1년, 2년 열심히 싸우고 저널리스트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다가 해직된 다른 선배보다 제가 제일 화제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할 기회가 많아지는 것도 그렇고. 이 카메라가, 이 지면이, 이런 관심이 사실 나한테 와야 할 게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아요. 그 하나하나 다 빚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해고에 정직에 MBC에서 실제로 인한 기간은 얼마 되지 않는 권 PD는 예능 프로그램 PD로 많은 걸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김성헌

“MBC로 돌아가 즐겁게 일하고 싶다”

-마지막 질문인데 MBC로 돌아가면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싶나요?
권성민: 지금 있는 프로그램 중에서는 <마리텔>에 제일 가고 싶어요. 그 팀에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다 아니까. 진경 선배도 그렇고 재석 선배도 다 좋은 선배고요.

연차로 따지면 벌써 제가 5년차에 접어드는데, 해고에 정직에 파업에, 실제로 일한 기간이 길지 않아요. 그래서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기보다는 조금 더 배우고 해야 할 게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MBC로 돌아가서 프로그램을 한다면,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팀에 가고 싶어요.

<마리텔>은 팀원들이 즐거워하는 거 같아요. 프로그램이 잘 되고 있고, 또 잘 되는 걸 떠나 제작진이 방송의 뒤에 있는 게 아니라 제작 과정에 완전히 섞여서 참여하고 있는데, 그런 게 이전에는 없었잖아요. 그 정도로 제작진이 유기적으로 얽혀서 제작하는데, 그런 걸 즐거워하고 있는 게 보여요. 고되긴 고되지만 어느 프로그램 보다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는 게 보여요. 저도 그렇게 즐겁게 일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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