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막장드라마’ 판결에 대한 복잡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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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막장드라마’ 판결에 대한 복잡한 시선
사법부가 내용에 대한 가치 판단을? …‘막장드라마=지상파’ 부메랑으로
  • 방연주 객원기자
  • 승인 2016.01.27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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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백야’ 방심위 제재 조치 정당 판결

불륜과 패륜으로 얼룩진 이른바 ‘막장 드라마’에 대한 방송통신위원회에 대한 징계가 정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MBC 일일 드라마 <압구정 백야>(2014년 10월~2015년 5월 방영)에 대한 방통위의 제재 조치에 대해, MBC가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사회윤리에 반한다”며 방통위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판결은 드라마와 관련한 심의 불복 소송의 첫 사례라는 점에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과연 ‘막장 드라마’에 대한 기준을 법의 잣대로 판단하는 게 온당한지부터 시청률을 담보하기 위해 ‘막장 드라마’ 편성에 앞장서온 방송사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다시 짚어보게 된다.

<압구정 백야>는 ‘흥행 보증 수표’라는 수식어와 함께 ‘막장계 대모’라는 불명예까지 떠안은 임성한 작가의 작품이다. 임 작가는 전작인 <인어아가씨>, <왕꽃 선녀님>, <오로라 공주> 등에서 상식을 벗어난 소재와 극단적인 이야기 전개로 시청자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렸다. <압구정 백야>도 여주인공 백야가 가족을 버린 어머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의 의붓아들을 유혹해 며느리가 되려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방통위는 지난해 4월 시어머니가 며느리이자 친딸인 주인공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폭언하는 장면과 패륜적 소재를 지적하며 ‘관계자에 대한 징계’와 ‘경고’ 처분을 내렸다. 청소년 시청자의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MBC는 “사회 통념의 범위 내에 있다”며 제재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 MBC 일일 드라마 <압구정 백야>(2014년 10월~2015년 5월 방영)에 대한 방통위의 제재 조치에 대해, MBC가 취소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사회윤리에 반한다”며 방통위의 손을 들어줬다.ⓒ뉴스1

이에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5일 “지상파 방송사는 가족 시청 시간대에 가족구성원 모두의 정서와 윤리 수준에 적합한 내용을 방송할 책임이 있다”며 “이 방송은 사회적 윤리의식과 가족의 가치를 저해하고 구성원들 간의 정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또 “이 사건 드라마를 집필한 임성한 작가가 쓴 드라마 ‘오로라 공주’(2013)에 관해 제재 처분을 받았고, 당시 방송사는 저품격 드라마에 대한 집중 심의 기간임을 알고 있었다”고 설명하는 등 MBC에 대한 제재 조치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이번 ‘막장 드라마’에 대한 판결은 여러 가지 생각거리를 남긴다. 먼저 ‘막장 드라마’의 기준을 법의 잣대로 판단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선 의문이 든다. 법원이 “사회윤리에 반하”고, “청소년의 올바른 가치관 등을 저해한다”고 밝힌 판시에서 ‘사회윤리’, ‘올바른 가치관’을 무엇으로 상정하는지에 따라 ‘막장 드라마’의 기준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드라마는 장르의 특성상 반(反) 윤리적 소재를 다루더라도 충분한 개연성을 담보한다면 양질의 콘텐츠로 완성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또한 방송 콘텐츠에 대한 심의 강화로 인해 표현의 자유 영역이 좁아진 상황에서 제작진은 법의 잣대에 따른 자기 검열의 부담을 안게 됐다.

그렇다고 해서 ‘막장 드라마’가 무조건 ‘방송사의 표현의 자유’ 영역에 속한다고 주장하긴 어렵다. 방송사의 공적 역할과 책임을 지나치게 간과, 축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공영방송 MBC를 비롯한 방송사들이 쏟아낸 ‘막장 드라마’에 대한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러한 문제제기에 방송사들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도, 제작비 부담으로 ‘저비용 고효율’의 막장 드라마를 제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호소했다. 하지만 편성권을 쥔 방송사들이 시청률을 견인하기 위한 방편으로 자극적인 소재의 스토리에 주력하면서, 드라마 생태계가 악순환에 빠지는 데 일조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 MBC '압구정 백야' ⓒMBC

일각에서는 ‘막장 드라마’ 범람이 계속되는 가운데 법원의 판단에 따라 ‘막장 드라마’ 제작이 주춤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법의 판단으로 인한 제동보다, 오히려 방송사 스스로 편성권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으로 해석하는 건 어떨까. 시청률만큼 방송사의 입지를 넓게, 좁게 만드는 것도 없지만, 오직 ‘막장 드라마’를 통해서만 시청률 효과를 누릴 수 있는 때도 아니라는 흐름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드라마의 화제성은 케이블과 일부 종합편성채널이 선점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내의 자격>, <밀회> 등은 불륜 코드에도 ‘웰메이드’라는 찬사를 받았고, <시그널>, <미생> 등은 ‘막장 요소’없이 누리꾼들의 입소문을 타고 온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이들 채널은 지상파와 달리 채널의 성격, 시청 타깃층이 다르다고 여겨졌지만, 최근 종영한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면 케이블 드라마라고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젊은층을 비롯해 중년층까지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신드롬을 일궈냈다. ‘막장’이 아닌 콘텐츠의 경쟁력으로 시청 타깃층의 외연을 넓혀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지상파 방송사들도 “지상파=막장 드라마”라는 인식을 깨기 위해서 ‘막장’을 걷어낸 콘텐츠로 편성해 승부수를 띄워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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