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잠든 새벽, ‘지상팟캐스트’가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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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FM zine', '고릴라캐스트' 등…지상파 라디오-팟캐스트 접점 찾기

새벽 1시부터 6시 사이. 모두가 잠든 시간 ‘토이스토리’의 인형이 깨어나는 것처럼, 라디오에서는 틀을 벗어던진 실험이 시작된다. ‘DJ가 청취자의 사연을 소개하고, 사연에 맞는 음악이 나가는’ 전형적인 라디오 패턴이 깨지는 유일한 시간이다.

한때 새벽 2시에 사람이 아닌 ‘사이버 DJ’가 나타나 소름끼치는 음성으로 사람보다 더 사랑받던 때가 있기도 했고(KBS <올 댓 차트>),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던 ‘요일별DJ 체제’가 도입되어 자리를 잡기도 했다(SBS <애프터클럽>). 또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에게 DJ 자리를 내어주기도 하고(MBC <심야라디오 DJ를 부탁해>), ‘귀로 듣는 음악잡지’가 출간(?)되기도 한다(SBS <FMzine>). 부드러운 목소리와 감성적인 음악으로 채워지던 새벽 시간이, 때로는 라디오에 있어 가장 실험적인 시간이 되고 있는 것이다.

▲ KBS CoolFM <올 댓 차트> 사이버DJ ‘윌슨’의 가상 모델

스마트폰이 발달되지 않아 홀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마땅치 않았던 시절에는 새벽 시간대가 라디오 마니아층이 몰려드는 때이기도 했다. 하지만 라디오를 대체할 수단이 많아지면서 라디오 자체의 청취자 수가 감소했고, 새벽 시간대의 청취자 역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김영우 SBS 라디오 편성기획팀장은 “1020이 주로 듣는 시간대인데 그들을 만족시키는 다른 콘텐츠들이 많이 생겼다”며 “(라디오 입장에서) 이 시간대는 거의 몰락했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라디오 시장 상황이 변화하면서, SBS는 새벽을 ‘실험 시간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김 팀장은 “수익성 없는 시간대를 돈 안 들이고 쉽게 만드는 프로그램으로 갈 것인지, 돈을 좀 들이더라도 실험적으로 갈 것인지, 두 가지 방향이 있다. 우리 쪽은 실험적으로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라디오의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는 이때에 새로운 시도는 필수적이지만, 주요 시간대에 파격적인 변화를 꾀하기에는 아직 위험부담이 크다. 하지만 어차피 광고가 붙지 않아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새벽 시간이라면, 위험부담은 줄이면서도 일정 부분에서는 청취자 반응을 볼 수 있다는 판단이다.

특히 최근에는 SBS가 지상파 라디오와 팟캐스트의 접점을 찾아나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지난 가을 신설된 ‘귀로 듣는 음악잡지’ <FM zine>이다. SBS 조정식 아나운서가 새벽 1시부터 3시까지 ‘힙합feel’ 충만한 ‘편집장(<FM zine>에서 DJ를 일컫는 말) 알렉산더 조’로 변신했다. 얼핏 보면 말로만 잡지를 표방했을 뿐, 기존의 라디오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음악 혹은 영화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른 라디오 방송들과 달리 청취자 중심의 코너를 대폭 축소했다. 청취자 문자와 사연 소개 등 라디오의 주요 특징이었던 ‘실시간 상호작용’을 과감히 탈피한 것이다. 대신 음악‧영화 전문 게스트가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심도 있는 정보를 전해준다. 말 그대로 잡지처럼 ‘글’이 중심에 섰다.

▲ SBS 파워FM 〈FMzine〉(AM 01:00-03:00) 편집장 알렉산더 조 ⓒSBS

주목할 점은 <FMzine>이 ‘실시간 청취자’가 아닌 ‘다시 듣는 청취자’를 고려한 팟캐스트 포맷의 방송이라는 데에 있다. <FMzine>의 최다은 PD는 팟캐스트 유저들이 선호하는 ‘하나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전하는 포맷’을 추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팀장은 “<FMzine>은 모바일 기반의 방송서비스를 향한 교두보 차원에서 기획한 프로그램이다. 코너 하나하나를 보면 팟캐스트 형태에 가깝다”라고 설명하며 “<송은이, 김숙의 언니네 라디오>와 <씨네타운S> 등이 기존의 인기 있는 팟캐스트를 지상파로 옮겨온 것이라면, <FMzine>은 역으로 지상파에서 팟캐스트로 진출해보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새벽 4시부터 6시까지 신설된 SBS <고릴라캐스트>는 2시간을 온전히 팟캐스트를 위한 시간으로 열어두었다. 웹툰 작가들이 만든 <어떤 교집합>과 같이 기존에 존재하던 팟캐스트나, <배성재의 주말유나이티드>처럼 팟캐스트 성격을 지녔지만 다른 시간대에 방송되는 SBS 특집 프로그램을 재방송 해준다. 아직까지는 지상파 매체의 특성상 팟캐스트 방송 전체가 나오지 못하고 편집되는 부분이 있어 재미가 반감됐다는 평이지만, 일정한 시간대를 온전히 팟캐스트 형식의 방송을 위해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13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SBS <애프터클럽> 역시 실시간청취자보다 ‘팟캐스트 팬층’이 두터운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새벽 3시부터 4시까지 정기고, 김예림, 푸디토리움, 소울스케이프 등 전문 음악 장르가 전혀 다른 DJ들이 각자의 취향대로 매 요일을 꾸민다. 정해진 틀도, 일관성도 없다. 덕분에 청취자들은 <애프터클럽>이라는 하나의 프로그램을 매일 듣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DJ의 방송은 따로 챙겨듣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청취자 중 한 명은 “매일 들어야한다는 부담감이 없다. 대신 좋아하는 DJ의 방송은 팟캐스트로라도 챙겨 듣는다”고 말했다.

▲ SBS 파워FM <애프터클럽> (AM 03:00-04:00) ⓒSBS

팟캐스트가 지상파 라디오를 위협하고 있다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지는 꽤 오래 됐다. 하지만 여전히 지상파 라디오와 팟캐스트가 지향하는 부분은 확연히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지상파 라디오 전체가 팟캐스트 형식으로 넘어가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고, 무엇보다 현재로서는 그럴 필요성 자체가 크지 않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소외된 새벽’이기에 이런 변화된 시도들이 가능하다.

김영우 SBS 라디오 편성기획팀장은 새벽에 이런 프로그램들을 시도하는 것에 대해 “현재 청취자의 70% 이상이 차 안에서 라디오를 듣는다. 그런데 커넥티드 카, 자율주행차가 발달하면 차 안에서도 라디오를 듣지 않을 거다. 그때까지 라디오가 아닌 오디오 시장 자체를 키워야 한다”며 “그 중심이 아마 팟캐스트가 될 거다. 하지만 아직까지 팟캐스트 시장은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고, 우리(지상파 라디오) 역시 확신이 없는 상태니 새벽 시간을 이용해서 시도해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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