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최다 표절 中 방송 제재 가능토록 역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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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학회, 중국 한류 방송 표절 대책 토론회…“PD 등 인력 유출, 돈 때문만 아니다”

“중국의 방송 표절을 소송으로 풀긴 어렵다. 소송을 위해 투입한 비용이나 시간 대비 승소 확률이 낮은 게 큰데, 방송업계에서 소송을 회피하는 더 큰 이유는 우리가 피고로 세우고자 하는 이들이, 즉 중국이 가장 큰 고객이기 때문이다. 소송은 바람직한 형태일 수 없다.”

‘한류 시대 방송 콘텐츠 가치 보호를 위한 모색과 전망’을 주제로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국방송학회가 주최한 토론회에 참석한 김일중 SBS 차장의 이 말은 반복하는 중국의 방송 콘텐츠(포맷) 표절 논란을 마주하는 국내 방송사들의 딜레마를 그대로 드러낸다. 한중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한 정부는 제2의 한류를 말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지만, 정작 필드 위 플레이어들은 문제는 분명한데 제재 방안은 마땅치 않고 갈등해야 하는 상대가 최대 고객인,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현실에서 저마다 살아남을 방안을 모색 중이다.

▲ KBS는 지난 1월 12일 상해 동방위성TV의 <사대명조(四大名助)>가 KBS의 인기 예능인 <안녕하세요>를 표절 방송했다고 밝혔다. ⓒKBS

중국의 국내 방송 콘텐츠 베끼기 의혹은 심각한 수준에서 반복하고 있다. 지난 1월 12일 KBS는 중국 상해 동방위성TV에서 1월 7일 방송한 <사대명조(四大名助)>라는 프로그램이 KBS의 인기 예능 <안녕하세요>를 표절해 중국 내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 시청자 중 선정한 의뢰인들을 대상으로 고민 사연을 소개하고, 해당 고민에 대해 방청객들이 투표해 우승자를 뽑는 기본 설정뿐 아니라, 스튜디오 형태와 구성, 진행방식, 사연 의뢰자 등장방식, 투표 및 우승자 선정 등 세부 설정도 거의 동일하다는 설명이다. KBS는 상해 동방위성TV에 표절로 인한 권리침해에 항의하며 정식 판권구매 후 제작 방송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상해 동방위성TV는 진행자와 사연이 다른 만큼 토크쇼에 있어 표절은 성립할 수 없다며 표절을 인정하지 않았다.(1월 17일, <연합뉴스> ‘짝퉁 천국 중국 예능, 항의해도 적반하장’) 상해 동방위성TV는 지난해 MBC <무한도전> ‘극한알바’, ‘여드름 브레이크’, ‘돈 가방을 갖고 튀어라’, ‘나 잡아봐라’ 등의 특집과 JTBC <히든싱어>와 거의 유사한 <극한도전>, <은장적가수> 등을 방송해 표절 의혹에 휩싸이기도 했다.

국내 인기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중국의 여러 방송에서 표절 의혹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례로 <무한도전>의 경우 상해 동방위성TV뿐 아니라 강소위성TV(<진심영웅>), 절강위성TV(<도전자연맹>) 등에서의 표절 의혹이 있었다. 그밖에도 SBS <백년손님 자기야>(강소위성TV <사위가 찾아왔다>), <영웅호걸>(호남위성TV <우상이 왔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호북위성TV <사랑한다면>), JTBC <비정상회담>(호북위성TV <비정식회담>), tvN <꽃보다 누나>(호남위성TV <화아여소년>) 등 국내 방송사의 많은 예능 콘텐츠들이 중국 방송사들의 베끼기 논란으로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포맷의 경우 중국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아이디어로 간주, 저작권법으로 보호하는 경우가 드물다. 권호영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위원은 “포맷에 대한 권리를 저작권법으로 보호한다 하더라도 완벽한 복제에 대해서만 보호 가능할 뿐, 세세한 사항에 대해선 저작권 침해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속수무책의 상황을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는 걸까. 권호영 연구위원은 “한국저작권위원회 하부 조직으로 포맷과 관련한 법률 자문위원회를 설치해 포맷 권리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에는 포맷의 개발과 거래, 법적 분쟁과 같은 단계별 접근방안과 포맷 창작자와 거래 담당자, 이용자 등 대상별 접근을 통해 법의 미비점 보완책, 포맷 권리보호 관련 교육 등을 담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권호영 연구위원은 “포맷의 저작권상 보호를 위해 세계저작권재산기구(WIPO), 포맷 인증 및 보호협회(FRAPA) 등과의 협력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방안이 실효성을 내기까진 시간이 필요하다. 즉, 하루가 멀다 하고 중국의 표절 의혹에 대응해야 하는 국내 방송사들 입장에선 당장의 대책일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김일중 차장은 최근 지상파와 케이블, 종합편성채널 등이 참여한 가운데 열린 방송포맷 수출 관련 간담회에서 나온 말을 전했다. “함께 모여 표절 사례를 얘기하다보니 특정 방송사의 이름이 연이어 나왔다. 전수조사를 하면 이 방송사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표절했는지 확인할 수 있을 텐데, 최소한 이 방송사에 대해서라도 (중국 당국에서) 규제나 경고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유명 PD들, 100억 받고 중국 진출? 국내보다 나은 제작 여건과 기회

김일중 차장은 중국 방송에서 국내 콘텐츠(포맷) 표절을 반복하고 있는 상황의 배경엔 외국 콘텐츠에 대한 중국 광전총국의 강한 규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차장은 “중국에서 한국 방송 프로그램이라는 라벨이 붙으면 그 가치가 급등하는, 한국 콘텐츠라는 게 일종의 브랜드로 기능하고 있는 상황인데, 광전총국의 규제로 한국 방송포맷을 구매해 방송하는 데 제약이 있다 보니 이에 대한 회피책으로 표절이 이뤄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 광전총국은 외국 드라마‧영화 쿼터제(수량 제한, 내용 요구, 선 심사 후 방송, 전편 등록)로 규제를 하고 있다.

김 차장은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 미래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며 최근의 사례를 언급했다.

“그동안 국내 방송 콘텐츠의 경우 추석과 설 등 명절에 파일럿 방송을 하고 반응에 따라 정규편성을 결정했다. 그렇게 정규편성 된 포맷으로 일정한 성과를 거두면 (중국에서) 포맷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하지만 지난해 가을부터 양상이 바뀌고 있다. 명절 기간 동안 방송하는 파일럿 프로그램을 중국에서 통역을 대동해 실시간으로 시청한 후 재미있고 유익하다는 판단을 하면 시청률과 상관없이 바로 다음날 구매의사를 타진해 온다. 지난 설 명절에 방송한 SBS <판타스틱 듀오>도 방영 직후 바로 중국에서 구매의사를 타진해 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마케팅이 필요 없는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이런 상황에서 더욱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경우 또 다른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 한국방송학회 주최로 16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기자회견장에서 ‘한류 시대 방송 콘텐츠 가치 보호를 위한 모색과 전망: 중국의 방송프로그램 표절 확산을 배경으로’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PD저널

김일중 차장은 중국의 국내 콘텐츠 표절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하진 않을 거란 전망도 내놨다. 김 차장은 “중국의 기획‧제작 능력이 빠르게 향상하고 있고, 많은 한국의 기획자들-PD와 작가 등-이 중국에 진출했기 때문에 표절 행위는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중 차장은 그러나 “한국의 핵심 연출자들을 스카우트 한 중국 측에서 (국내에서 성공했던 콘텐츠와) 유사한 포맷을 제작하도록 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 경우 표절은 아니지만 한국의 지적 재산이 제 값을 못 받는, 또 다른 형태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우려 된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의 규제나 그로 인한 포맷 표절 등의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게 바로 국내 연출진의 유출 문제라는 지적이다. 현재 방송가 주변에선 중국으로 이동한 PD 등이 100억을 받아다는 둥의 얘기들이 파다하다.

하지만 김일중 차장은 돈의 문제로만 상황을 봐선 안 된다고 말한다. “중국으로 이동한 PD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중국의 회사들로부터 (100억씩) 연봉을 받는 형태가 아니라 제작사를 차리도록 하고 그 자본금을 대주는 식이라고 한다. 즉,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자본을 대주는 형태인 것이다. (연봉 등) 개인 신상이 아닌 국내보다 더 좋은 제작 여건, 보다 많은 기회를 제공받아 중국으로 이동하는 거라면 이는 뼈아픈 얘기다.” 돈 때문에 PD들이 보따리를 싸서 회사를 나간다는 식의 반응으로 상황을 이해한다면 중국으로의 인력 유출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박상호 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은 “한중 FTA로 중국 기업들의 한국 제작사 경영권 인수나 지분 참여, 국내 제작 핵심 인력 스카우트, 공동제작 등이 더욱 가속화하면서 국내 콘텐츠 산업 자체가 중국 자본에 잠식, 어느 순간 중국의 콘텐츠 제작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산업계 전반에 확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상호 팀장은 “한류 활성화를 위해선 내부 역량의 강화와 대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며 “국제공동제작을 위한 제작비 재원 조달을 위해 진흥기관의 직원 지원제도 예산을 확충하고, 미디어와 통신회사, 영화투자‧배급사, 연관 콘텐츠 및 상품화 업체 등과 연동한 대규모 컨소시엄 프로젝트를 진흥기관 공동 주도로 진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중국 문화보호주의 완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 △공동제작 작품 투자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 및 해외시장에 대한 연구‧조사를 통한 정보 제공 △실효성 있는 법률지원서비스 등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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