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들’ 트랙 밖 삶에 대한 참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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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들’ 트랙 밖 삶에 대한 참조점
  • 방연주 객원기자
  • 승인 2016.03.22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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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사람과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개인의 다양한 삶의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들> 타이틀 ⓒKBS

물질적 풍요를 등지고, 느림의 일상을 예찬하는 삶을 다룬 KBS 1TV <사람과 사람들>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대한 칭찬을 마다하지 않는다. 소감 게시판에는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소소하지만 진솔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때때로 흐르는 음악, 자연스러운 내레이션이 참 좋다”며 호평 일색이다. <사람과 사람들>은 오는 23일 방영한 지 반 년째를 맞이한다. 사실 교양 프로그램치고 짧은 방영 기간이지만 날이 갈수록 교양 프로그램의 입지가 좁아지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들>은 나름의 색깔을 지녔다. 우리네 인생을 현미경처럼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에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사실 방송가에서 교양 프로그램의 전성기는 지나갔다. 방송사들은 치열한 시청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예능과 드라마를 편성해 성공시키는 데 온 관심을 집중하고 있고, 시청자들은 시시각각 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화젯거리를 쫓아 ‘핑거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교양 프로그램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물론 방송사들은 시사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을 비롯해 휴머니즘을 소재로 한 KBS <인간극장>, <다큐멘터리 3일> MBC <휴먼다큐-사랑>, SBS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등을 통해 교양 프로그램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 KBS <사람과 사람들> '철학자 졸리앙 그가 한국에 사는 이유' ⓒKBS

이러한 가운데 <사람과 사람들>은 어찌 보면 ‘취향저격’하는 프로그램이다. “트렌드를 넘어서 패러다임, 아니 문화로도 굳어질 가능성이 큰 것이 슬로 트렌드”(책 <라이프트렌드 2016>)라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 프로그램은 소득 수준의 향상과 고령화 등으로 인해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개인의 다양한 삶의 방식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은 모두 평범해 보이지만, 떠밀리듯 사는 도시 생활이 아닌 자신만의 라이프 스타일,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는 사람들이다. 사회 곳곳에서 퍼지고 있는 주류가 아닌 대안적인 삶을 택하는 ‘라이프스타일’을 하나의 ‘트렌드’로서 포착한 것이다.

특히 프로그램 출연자로 20~30대 청년이 자주 등장하는 점이 눈에 띈다. ‘석사 청년들’편에서 사회 초년생 나이에 어촌행을 택한 청년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처음에 (어부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생각해보니 괜찮은 것 같았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니 (어부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게 좋았다”며 선택의 기로의 순간을 담담하게 전한다. 물론 이들의 시행착오는 불 보듯 뻔하다. 하지만 직접 배에 기름을 넣느라 “(수동 주유기를) 8백번 돌리면 한 통 들어간다”며 연신 히죽히죽 웃는 이들의 모습에서 만족감이 묻어난다.

신접살림을 산자락에 차린 30대 중반의 부부도 있다.(‘이 부부가 겨울산으로 가는 까닭은’편) 결혼해도 캠핑하듯이 살고 싶었다는 이 부부는 제작진이 인터뷰를 엄두내지 못할 정도로 거센 바람이 불고, 식수가 꽁꽁 얼어붙는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40kg이 넘는 배낭을 지고 산길을 오르는 등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밖에도 1인 가구 증가하면서 늘어난 싱글 여성의 귀촌 생활을 전하거나, 프랑스 아마존 32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등 명성을 얻었지만 한국에서 “공중목욕탕이 좋다”는 뇌성마비 장애 철학자 알렌상드르 졸리앙의 일상을 다뤘다.

▲ KBS <사람과 사람들> '어부가 된 석사 청년들' ⓒKBS

다양한 인생의 스펙트럼을 담은 <사람과 사람들>은 짧은 방영 기간에도 첫 방송 시청률 7%에서 지난달 10일에는 할배 사랑이 유별난 4대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방송분이 12.5%(닐슨 코리아 기준)라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눈길을 끌었다. <인간극장>,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 이어 이번 프로그램의 집필을 맡고 있는 조예촌 작가도 한 인터뷰에서 “출연자들 중에서는 도시에서 물질적인 삶을 포기하고 자연에서 삶을 찾아서 옮겨간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며 “(시청자들이) 자연이나 대가족 속에서 따뜻함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인간이 태어나 살면서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게 느낄 수 있는 그 무엇, 그걸 찾는 것 같다”(월간 <방송작가> 3월호)고 프로그램의 화제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들>은 사회가 정한 트랙이 아니라 자신만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 택한 삶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쉼을 주는 동시에 또 다른 삶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묻는다. ‘푸어싱글’, ‘나홀로족’ 등 개인은 날이 갈수록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립되고, ‘주거’, ‘취업’, ‘노후’ 등 각종 불안이 팽배하면서 자신만의 방식대로 삶을 꾸려 나가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방송가에서는 사회적 불안 요소들을 ‘집방’ ‘먹방’ 예능으로 소구시키면서 현실의 무게감을 덜어내려 하지만 그 불안은 좀체 해소되지 않는다. <단속사회>의 저자 엄기호 씨가 “어제 겪은 경험이 오늘 하고자 하는 일의 참조점이 될 때 그 사람의 삶은 연속성을 지닌다”고 했듯이 <사람과 사람들>은 시청자에게 삶의 다양성에 대한 ‘참조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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