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PD, ‘김용수’를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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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PD, ‘김용수’를 말하다
‘베이비시터’ 탐미적인 화면 연출로 드라마를 해석하다
  • 방연주 객원기자
  • 승인 2016.03.30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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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화이트 크리스마스> ⓒKBS

어떤 영화에 대한 수식어로, ‘봉준호스럽다’, ‘박찬욱 작품같다’는 말이 쓰이곤 한다. 그만큼 이들 영화감독의 스타일이 뚜렷하다는 반증이다. 드라마계로 눈을 돌려보자. 한 해 제작되는 드라마가 100편이 넘는 가운데 연출 스타일이 두드러지는 드라마 PD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아마도 그 이유는 드라마가 흥행하더라도 시청자의 관심이 PD, 작가보다 배우에게 쏠리기 때문일 수도 있고, 방송사의 수익이 좌지우지될 정도로 막대한 자본이 투입되는 드라마의 속성 때문에 시청자의 구미에 맞춘 연출이 반복됐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드라마를 찍는 PD가 있다. 김용수 KBS 드라마국 PD다. 그의 입봉작 <아름다운 청춘>(2002)은 “완성도도 굉장히 높고 소재도 문학적이면서 의미가 상당하다”(기사)는 평을 받았다. 이후 총 10편이 넘는 단막극을 비롯해 <적도의 남자>, <칼과 꽃>, <아이언맨>, <베이비시터> 등을 연출했다. 김 PD는 공간에 대한 탁월한 해석, 과감한 표현방식으로 ‘김용수 스타일’을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의 작품들을 통해 실험적인 연출법을 파헤쳐본다.

공간과 화면, 인물의 정서를 표현하다

▲ KBS <적도의 남자> ⓒKBS

김 PD의 작품들을 보면 연출가로서의 고집이 엿보인다. 그가 연출한 드라마 속 공간은 그저 한낱 배경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공간을 등장인물의 정서를 대변하는 데 활용하거나 서사의 흐름을 이끌어가는 장치로 삼는다. 예컨대 복수를 바라면서도 끊임없이 갈등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은 <적도의 남자>(극본 김인영)에서는 부러 영상을 암바톤(갈색)으로 보정해 극의 어두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복수의 대상인 진노식 회장(김영철)의 집은 검붉은 빛이 감도는 벽면과 계단으로 표현(기사)해 욕망을 쫓다가 파멸하는 인물로서의 묘사를 극대화했다.

악(惡)은 태어나는 지, 만들어지는 지 ‘악의 근본’을 조명한 8부작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극본 박연선)의 공간은 고등학교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자아라는 것이 확립되기 이전이고 드라마로 다루기 좋은 곳이 고등학교였다”고 말했다. 또한 김 PD는 등장인물이 처한 상황 혹은 고립감을 강조하기 위해 특수영상과 특수촬영으로 눈을 표현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당초 16부작이었으나 8부작으로 압축 편성되면서 작가가 “(인물의) 호흡과 리듬감이 없어졌다”(기사)며 아쉬움을 토로하긴 했지만 단막극으로는 이례적으로 DVD로 발매되는 등 마니아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냈다.

최근 방영된 단막극 4부작 <베이비시터>(극본 최효비)도 연장선에 있다. <베이비시터>는 신인 연기자의 어색한 연기가 시청자들의 입길에 올랐지만, 김 PD의 독특한 영상미는 여전했다. 온실 속 화초 같은 삶을 살던 천은주(조여정 분)가 남편의 불륜에 대한 핏빛 복수로 파국을 맞이하는 과정을 컷의 분할, 교차, 대비를 통해 은주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려냈다. 비밀을 감추고, 들추며 빚어지는 인물 간 긴장감도 거울, 사물의 패턴, 회화 요소 등을 활용해 표현했다. 이처럼 김 PD는 서사에만 기대는 게 아닌 기존 TV 영상 문법에서 잘 시도하지 않는 탐미적인 화면 연출법으로 드라마를 해석하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줬다.

▲ KBS <베이비시터> ⓒKBS

복잡한 설정, 실험정신으로 풀어내다

김 PD는 실험정신이 강하다. 그는 쉽사리 도전하기 어려운 컴퓨터 그래픽(CG)을 사용해 드라마의 소재를 풀어내고, 영상의 완결성을 추구한다. 다만, 실험정신에 대한 성적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이언맨>(극본 김규완)의 주홍빈(이동욱 분)은 표현하기 어려운 설정을 지닌 캐릭터다. 홍빈은 마음 속 상처가 몸에 칼로 돋아나고, 후각 능력이 지나치게 예민할 정도로 발달했다. 이를 두고 김 PD는 “가장 중요한 원칙은 ‘어색하면 내보내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CG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홍빈이 드라마 속에서 어떤 냄새(과거 사랑했던 연인의 향기, 시궁창 냄새 등)를 맡았는지를 시각적 이미지로 풀어냈다.

그는 <칼과 꽃>(극본 권민수)을 연출할 땐 기존 사극을 넘어선 영상 미학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실제 방송에서 5분가량 방영된 궁중 가면신을 사흘에 걸쳐 촬영하는가 하면, 연개소문의 역모 신을 내레이션과 함께 흑백효과로 처리한 연출로 이목을 끌었다. 이러한 김 PD의 연출법은 때로 시청자에게 낯섦을 안긴다. 엄태웅이 <칼과 꽃> 제작발표회 당시 “<칼과 꽃>은 시청률로든, 연출로든, 사고로든 길이 남을 것”이라고 말이 재현된 듯, 드라마 시청률이 5%대에 머물렀다. 사극답지 않은 시각적이고 화려한 미장센에도 시청자들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 KBS <칼과 꽃> ⓒKBS

‘김용수PD 스타일’, 드라마 다양성에 기여하다

김 PD는 한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대중적인 감독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그가 지금까지 연출한 작품들을 보면, 시청률이 잘 나온다면, 감사해할 테지만, 그렇다고 지레 시청률을 걱정하면서 자신을 표출하는 연출법을 포기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김 PD의 고집은 그만의 드라마적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밑바탕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배우들은 김 PD를 두고 “자신이 뽑아내려고 하는 신에 대한 욕심이 굉장하다”(엄태웅), “연출의 장악력이 있다. 작품을 찍는 게 아니라 담는 듯하다”(최민수)(기사)고 평한다.

사실 국내 드라마계가 ‘드라마 왕국’이라 불릴 정도로 드라마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김 PD처럼 자신만의 색깔을 녹여낸 드라마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단적으로 작품 그 자체로 완결성을 지닌 동시에 다양성의 척도로 여겨지는 단막극이 처한 현실만 봐도 알 수 있다. 김 PD의 드라마국 동료인 안준용 PD는 “(단막극은) 드라마 PD들에게는 꽃”이라고 하면서도 단막극의 미래에 대해선 “디스토피아”라고 일갈했다.(기사) 날이 갈수록 상업성에 최적화되고 있는 드라마 시장에서 ‘김용수 PD 스타일’을 고수하는, 그리고 그가 쌓아온 드라마 세계가 버텨낼 수 있길 기대한다.

▲ 김용수 KBS PD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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