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개저씨’ 표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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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심의위, ‘SBS스페셜-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 방송언어 심의규정 위반 행정지도

“시사프로그램에서 이슈가 되는 쟁점 사안을 다루며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건 좋다. 하지만 방송에 적합한 아이템이 있다. 그런 면에서 <SBS스페셜> ‘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 편은 주제 선정에 있어 신중하지 못했다.”

자신의 나이와 지위를 무기로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중년 남성을 일컫는 ‘개+아저씨’를 합한 신조어 ‘개저씨’에 대한 문제는 방송에서 다루기 부적절한 아이템인 걸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일부 위원들은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들은 <SBS 스페셜> ‘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에 대해 경징계이긴 하나 제재를 결정했다. ‘개저씨’라는 표현이 방송에 부적합하다는 이유인데, 이 단어로 말미암은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방송에서 해당 표현을 지울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 3월 13일 SBS ‘SBS스페셜-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 편 ⓒSBS

방심위는 30일 방송심의소위원회(위원장 김성묵 부위원장, 이하 방송소위)를 열어 지난 13일 방송된 <SBS스페셜>(SBS) ‘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 편에 대해 방송심의규정 제51조(방송언어) 3항 위반을 이유로 행정제재인 ‘의견제시’를 결정했다.

방송심의규정 제51조 3항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비속어, 은어, 저속한 조어 및 욕설 등을 방송에서 사용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조항에선 예외의 상황도 규정하고 있는데 ‘프로그램의 특성이나 내용전개 또는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다.

‘개저씨’라는 단어를 등장시킨 배경엔 지위와 나이를 앞세워 ‘갑질’을 하는 게 가능하도록 하는 비대칭의 사회 구조가 있다. ‘개저씨’라는 단어를 빼고 ‘개저씨’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과 문제를 짚은 방송을 기획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의 과정에서도 이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제재 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선 반영되지 못했다.

이날 방송소위에서 함귀용 위원은 “(전체 내용에선) 문제없어 보이나 (개저씨라는) 제목이 방송언어로 적절하지 않아 ‘의견제시’(행정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하남신 위원은 “언어 자체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하는 게 타당한지 방송사에서 더 고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남신 위원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쟁점 사안을 다루며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건 좋지만 방송에 적합한 아이템이 있다는 점에서 (<SBS스페셜>은) 주제 선정에 있어 신중하지 못했다”며 “‘권고’(의견제시보다 한 단계 높은 수위의 행정지도) 또는 ‘의견제시’ 의견”이라고 말했다.

김성묵 부위원장은 “‘개저씨’라는 표현이 일반화 된 상황이 아닌데, 굳이 이런 작명을 해야 하나”라고 문제를 제기하며 “(방송 내용에선) 문제가 없는데 제목과 자막에서 (개저씨 표현을) 반복했다”고 ‘의견제시’ 쪽에 무게를 실었다.

반면 장낙인 상임위원은 “이 방송은 ‘개저씨’라는 말이 어떻게 생겨나게 됐는지 (한국 사회를 돌아보자는) 고찰”이라며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윤훈열 위원 또한 “방송에서 (개저씨라는 말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설명하는 것으로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볼 부분이 충분히 있다”며 ‘문제없음’ 의견을 더했다.

하지만 하남신 위원은 “방송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개저씨는) 다루기 껄끄러운 주제이자 용어”라며 “인쇄매체와 방송매체는 전파력, 표현 기법이 달라야 하는 만큼 주제를 선정할 때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거듭 행정제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함귀용 위원은 “방송에 (개저씨 표현 뿐 아니라) ‘꼰대XX 꺼져’, ‘시베리아 같은 XX야’ 등 저속한 표현이 여과 없이 나왔다”며 “인터넷에서 저질의 이상한 용어들이 혼재돼 쓰이긴 하지만, 방송에서만큼은 이런 용어를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SBS스페셜> ‘아저씨, 어쩌다 보니 개저씨’ 편은 방송소위 위원 5인 중 다수인 3인의 의견에 따라 ‘의견제시’ 처분을 받게 됐다. 앞서 민원인은 해당 방송에 대해 방송심의규정 제30조(양성평등) 2항(방송은 특정 성을 부정적, 희화적으로 묘사하거나 왜곡해선 안 된다)과 제51조(방송언어) 3항 위반을 주장했지만, 방송소위 위원들 모두 방송심의규정의 양성평등 조항 위반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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