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에서 살아남은 자, 세상을 구원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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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드라마 속 남성 캐릭터의 변화

▲ KBS <동네변호사 조들호> ⓒKBS

남성 캐릭터의 수난 시대다. 최근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속 남성 캐릭터를 보면 삶의 밑바닥까지 떨어지거나, 치명적인 위기에 빠진 설정이 잦아졌다.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버텨내는 평범한 가장의 일상도 녹록치 않다. 이제껏 남성 캐릭터가 ‘결핍’보다 ‘완결’형 인물(이미 사회적 부와 지위를 획득한 경우)로 그려지거나 ‘캔디렐라’의 ‘백마 탄 왕자’로 묘사되던 때와 다르다. 어쩌다가 드라마 속 남성 캐릭터들은 ‘위기의 남자’가 되었을까.

지난달 28일 동시에 스타트를 끊은 KBS <동네 변호사 조들호>, MBC <몬스터>에서 조들호(박신양 분)와 이국철(강지환 분)은 거리를 전전하는 노숙자로 등장해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았다. 조들호는 잘 나가던 검사에서 졸지에 ‘비리 검사’라는 누명을 쓰고서 길바닥을 떠돌았다. 이국철은 개밥을 먹기 위해 오히려 개를 위협하는 등 “더 이상 추락할 곳 없는 인간계의 가장 초라한 밑바닥”이라고 할 정도의 생의 나락에 떨어졌다. 이들이 처한 배경과 상황은 각기 다르지만, 양 드라마에서 남성 캐릭터가 동시에 노숙자로 등장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tvN <기억>의 박태석(이성민 분)과  JTBC <욱씨 남정기>의 남정기(윤상현 분)의 상황도 아슬아슬하긴 마찬가지다. 박태석은 ‘돈이 권력’이라는 명제를 충실히 따르며 속물 변호사로서 ‘돈과 권력의 맛’을 보며 승승장구했다. 그는 “바쁘다”는 이유로 매번 가족과의 약속을 놓쳤는데, 이유가 있었다. 한창 잘 나가는 시점에 치명적인 병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것. 남정기는 신분상승을 향한 갈망도, 떼돈을 벌어야 한다는 욕망도 없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대기업과의 계약 수주를 위해서 ‘몸 로비’를 해야 한다는 압박에 못 이겨 실행하려다가 도리어 망신만 당하고 만다.

이처럼 남성 캐릭터가 처한 위기는 계급을 가리지 않는다. 재벌, 엘리트, 서민 등 권력과 부의 크기에 상관하지 않는다. 의료재벌의 상속자인 이국철은 죽음의 위기에 처하며 실명했고, 선우그룹의 외아들 차지원(이진욱 분)은 살인 혐의로 도망자 신세가 되었다.(MBC <굿바이 미스터 블랙>) 변변찮은 출신 박태석과 조들호는 ‘신분상승 사다리’를 올라 ‘엘리트’ 대열에 합류해 안정적 삶을 보장받는 듯 했지만, 위기의 파고도 깊어졌다. 월급쟁이 남정기도 하루하루가 전쟁터다. 위기는 부와 권력의 야망을 드러내는 남성에게도, 평범한 삶을 꿈꾸는 남성에게도 관통하고 있다.

▲ tvN <기억> ⓒtvN

이렇게 남성 캐릭터가 겪는 수난은 서사의 강력한 기폭제로 작용한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극적 반전을 꾀하는 장치가 된다. 예컨대 <몬스터>는 드라마 초반에서 복수 대상을 공개하면서, 이제부터는 길바닥을 헤매던 이국철이 잔혹한 복수를 ‘어떻게’ 하는지 관전하는 몫이 남아있다. 또한 모처럼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길을 걷는 도중 갑자기 약속 장소를 잊어버린 박태석이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고 “아직은 안 돼. 난 아니야”라며 절규하는 모습에서 그가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무엇을’ 잃지 않으려 할지 지켜볼 일이다.(<기억>)

드라마 바깥의 시선으로 해석한다면, 남성 캐릭터가 처한 위기는 현 사회 분위기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장기 불황의 여파와 장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는 요즘 상황을 빗댄 듯 남성 캐릭터들이 난관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어날 당시 일과 사랑을 동시에 성취하는 여성 캐릭터 중심의 로맨틱 코미디물이 봇물 터지듯 나왔듯이 불황일수록 남성성을 극대화하는 캐릭터가 호응을 얻기 마련이다.

따라서 남성 캐릭터의 위기는 위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몰락 속에서도 불사조처럼 살아난다. 드라마는 늘 판타지의 몫을 남겨둔다. 이들의 몰락은 남성 캐릭터의 강력한 존재를 부각시키기 위한 물밑 작업처럼 보인다. 모든 것을 잃은 이국철은 강기탄으로, 차지원은 블랙으로 되돌아왔다, 아마 박태석도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인생을 건 마지막 변론을 펼치며 ‘부성애’를 회복할 것이다. 매번 대기업에 머리를 조아리던 남정기도 ‘세 번 참으면 바보고 착한 끝은 호구’라며 불의를 못 참는 욱다정(이요원 분)과의 의기투합으로 승기를 잡게 되지 않을까.(<욱씨 남정기>) 이처럼 드라마 속 ‘위기의 남자들’은 돌파구 없는 현실의 민낯을 감춘 채, 남성성의 얼굴로 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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