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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07 07:26
  • 수정 2016.04.12 09:14

“휴먼다큐 주인공처럼 내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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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BS 웹툰 다큐 ‘다큐프라임-우리집 꼰대’ 윤미영 독립PD

잘 나가는 웹툰 작가들이 아버지와 소통하기 위해 펜을 들었다. 지난 3월 28일부터 3일간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 ‘우리집 꼰대’의 이야기다. 꼰대로 느껴지는 아버지를 ‘작가로서’ 바라보고 아버지의 삶을 쫓아가는 과정을 담은 ‘우리집 꼰대’는 웹툰과 개그맨들의 톡톡 튀는 내레이션까지 더해진 유쾌한 다큐멘터리다.

‘우리집 꼰대’ 더빙 작업이 한창이던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한 사무실에서 만난 ‘우리집 꼰대’를 연출한 윤미영 독립PD는 8년 전 문득 부모를 취재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의 단초에서 탄생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20년 넘게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윤 PD에게 아버지는 여전히 어려운 산이었다. “휴먼다큐를 촬영할 때는 ‘심장도 내어준다’는 말이 있을 만큼, 출연자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문득 창작자가 취재대상을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알아간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싶었다. 그 당시엔 부모님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거든요.”

▲ '우리집 꼰대'를 연출한 윤미영 PD는 “참여해준 작가들 모두 진정성을 가지고 촬영에 임해주었고, 덕분에 스스로도 촬영하며 배운 점이 굉장히 많았다"고 말했다. ⓒ윤미영

윤 PD는 처음부터 다큐멘터리 주인공을 ‘웹툰 작가’로 고정할 생각을 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일단 ‘스토리메이커’로 생각했어요. 저 처럼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든, 영화감독이든 글을 쓰는 작가든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싶었죠.” 그러다가 웹툰 작가를 떠올렸어요.” 스치듯 지나가던 생각이 기획안으로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구체화되던 2015년 봄 무렵에는 한국콘텐츠진흥원과 한국방송콘텐츠진흥재단으로부터 지원도 받게 되면서 EBS <다큐프라임> 기획안 공모에도 통과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런데 웹툰 작가를 섭외하는 게 쉽지 않았다. 기획의도에 맞는 작가를 섭외하려다 보니 어려웠다. 아버지와 자식 사이에 갈등 요소도 있어야했고, 가족들이 출연하는 점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도 있었다. 작가들은 작품 활동 할 때에도 필명을 쓸만큼 사생활을 중시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는 작가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다행히도 세 명의 작가를 섭외할 수 있었고, 그들을 촬영할 수 있었다. 윤 PD는 “참여해준 작가들 모두 진정성을 가지고 촬영에 임해줘 촬영하면서 배운 점이 많았다”며 작가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우리집 꼰대’의 주인공 웹툰 작가들은 왜 아버지와 소통하고 싶었을까? “우리 때는 말이야”,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자기 입장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흔히들 ‘꼰대’라 한다. 작가들의 아버지도 ‘만화가’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만화가로 어떻게 돈 벌고 살 거냐”며 잔소리를 했다. 작가들은 그래서 아버지를 ‘꼰대’라고 생각했다.

▲ 2부 '아빠의 반성문'에서 김수용 작가는 사춘기 때에 춤추고 만화그린다며,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자신을 떠올린다. ⓒEBS

1부에 등장하는 이정일 작가(필명 ‘정이리이리’)는 조선시대 세자들의 치열한 경쟁을 코믹하게 그려낸 <세자전>으로 팬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지만 아버지는 만화도 싫어하신다. 그리고 조금만 잘못해도 크게 소리내고, 나무란다. “지금도 만화가인 나를 탐탁지 않아 한다. 약주를 드실 때면 평범한 직장 생활하라고 꼭 한 마디씩 하신다.”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와주며 함께 살다가, 결혼을 계기로 ‘아빠 탈출’을 하게 된 그는, 아버지와 멀어지는 것일까.

잘나가던 1세대 춤꾼이었던 김수용 작가는 자신이 10대 자녀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하고, 이해하려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그런데 화장한 딸아이 얼굴을 보면 한숨부터 나오고 잔소리 하는 내가 꼰대일까?” 고교자퇴생의 일상을 그려낸 <학교를 떠나다>의 정가연 작가(필명 ‘버선버섯’)는 스스로 자퇴를 선택했고, 행복하다. 그러나 아버지와의 관계는 여전히 서먹하다. “내가 어떻게 일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빠가 날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아빠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요. 도대체 어떤 일을 하시기에 늘 힘들다고만 하시는지, 왜 항상 술을 드시고 늦게 오시는지…” 아버지와의 사이가 나아질 수 있을까?

자신만의 개성 있는 웹툰으로 독자들과 소통하던 작가들, 그들은 이해하기 힘든 ‘꼰대’ 아버지와도 잘 소통할 수 있었을까? 이정일 작가는 아버지의 친구들을 통해 아버지가 축협조합장 선거에 나가고 싶었지만 자식의 결혼 비용 때문에 꿈을 접었단 걸 알게 된다. 김수용 작가도 사춘기 때에 아버지에게 반항하던 자신을 떠올린다. 재작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으며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려 본다. 또한 아버지가 만화가인 아들을 친구들에게 많이 자랑했단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된다. 정가연 작가도 아버지가 문학소년이었지만 집안형편을 위해 꿈을 포기했단 걸 아버지로부터 들었다.

▲ 1부에서 이정일 작가의 아버지는 아들의 작품을 보며 “웹툰에 일상과 가정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는다. ⓒEBS

이 과정을 찍는 데에 몇 개월이 걸렸다. 웹툰과 다큐를 함께 보여주는 이 작업이 어렵지 않았는지 윤미영 PD에게 물어봤다. “일주일에 평균적으로 한 번씩 찾아가서 찍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어요. 그리고 촬영이 끝난 후에는 웹툰과 다큐를 적절하게 조화시키는 작업이 중요했어요. 웹툰 작품이 따로 있다 보니, 다큐에서 웹툰을 어디까지 보여주어야 하는지, 적절한 정도를 함께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했죠. 가편집을 하고나서, 웹툰 내용 맞추는 과정을 반복했어요.” 후반 작업이 길어졌지만, 시청자들은 그 덕분에 다큐멘터리 장면이 웹툰으로, 웹툰 장면이 영상으로 교차되는 ‘웹툰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었다. 이렇게 다큐멘터리 촬영 중에 완성된 작가 세 명의 웹툰은 코믹스퀘어 사이트에서 3월 한 달간 4회에 걸쳐 연재되기도 했다.

아버지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던 작가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들이 웹툰을 완성할수록, 말이 안 통하던 ‘꼰대’ 이미지의 아버지는 희미해져갔다. 그들은 아버지를 이해하고, 아버지도 그들을 이해했다. 아버지도 결국은 자신처럼, 꿈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자신의 꿈과 인생을 접고 살아왔다. 그리고 아버지들은 만화를 그리는 자식에 대해 겉으로는 못마땅해 했지만, 사실 궁금하고 더 알지 못 해서 외로웠다.

▲ 3부 '아빠 보고서'에 등장하는 정가연 작가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서먹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빠가 날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아빠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요…” ⓒEBS

각 작품의 후반부에서 이정일 작가의 아버지는 아들의 작품을 보며 “웹툰에 일상과 가정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다”고 활짝 웃었다. 김수용 작가의 아들도 “함께 화실을 가자”고 아빠에게 먼저 다가왔다. 초반에서는 언제나 무표정하던 정가연 작가의 아버지도 딸과 친해지며 웃음을 되찾았다. 정가연 작가도 ‘어쩌면 아빠는 노는 방법을 몰랐던 게 아니라 체력이 부족했을 지도 모른다’며 아빠를 이해했다. 이 모든 게 바로 윤 PD가 작품을 기획하면서 바랐던 점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자식은 서로를 몰랐기에 이해하기 어려웠다.

윤 PD의 부모님은 이 작품을 어떻게 보았는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더니 “‘꼰대’라는 단어가 있어도, 부모님이 굉장히 재미있어 하던데요?”라며 밝게 웃었다. 8년 전 그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생각들이 현실이 된 셈이다.

▲ 1부 이정일 작가의 웹툰 '우리집 꼰대' ⓒ이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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