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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18 10:25
  • 수정 2016.04.25 07:23

“태후는 판타지, ‘상식’이 통하고 ‘명예’를 지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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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KBS ‘태양의 후예’ 이응복 PD

"처음 대본을 보면서, 지진이 날 때 모연이가 안에 갇히고 시진이가 구하러 가면 재밌겠다 싶었다. 그런데 김은숙 작가가 딱 잘라서 ‘모르는 사람 구하는 얘기가 더 재밌죠’ 하더라.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는 사람만 구하는 구나’라고. 그런데 이 드라마는 모르는 사람을 구한다"

세월호 참사 때 ‘그 안에 정치인의 딸, 아들이 있었어도 똑같이 그랬을까’ 하며 분노한 사람들이 많았다. 사선에서 누군가는 모르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이응복 PD가 <태양의 후예>를 처음 접한 것도 세월호 참사 이후 그 분노가 채 가시지 않은 때였다.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만난 <태양의 후예> 이응복 PD는 <태양의 후예>를 처음 접했을 때 이런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 KBS <태양의 후예> 촬영 중 이응복PD ⓒKBS

<태양의 후예>라는 제목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이 PD는 “태양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폭발시켜서 계속 세상을 밝히는 일을 하지 않나.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누군가는 해야 하니까’라는 드라마 대사와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태양은 밝은 느낌을 주고, 그렇게 밝은 데에서 일하면 거대하게 포장이 된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모연(송혜교 분)과 시진(송중기 분), 의사와 군인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이 PD는 이런 대비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는 완전히 판타지다. 두 사람의 로맨스뿐만 아니라, <태양의 후예>가 그려낸 인물들이 현실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 PD는 “명예와 사명감이 중요한 시기라는 데에 작가와 공감했다”며 “상식이 통하고 명예를 지키는, 그런데 그 얘기를 이쁜 남자가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었다”며 웃어보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비판을 받기도 했다. ‘군국주의’라는 시각과, 과거 한국전쟁 이후 미국에게 한국이 원조를 받던 그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다. 민감할 수도 있는 부분을 그려낸 것에 대해 이 PD는 “도와주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다만 ‘다 나눠줄 수 없으면 함부로 주면 안 됩니다’와 같은 대사들이 내가 생각하는 경계선이었다”며 “그런 원조가 주된 내용이 아니라, 어떤 판타지 같은 세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 KBS <태양의 후예> 치훈(온유 분)과 '블랙키 소년' ⓒKBS

‘우르크’는 분쟁 지역임에도 상상 속에 그려질 만한 동화 같은 세상이다. 치훈(온유 분)과 ‘블랙키 소년’은 그런 동화적인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인물이다. 아무도 모르게 괴로워하는 치훈에게 아이가 다가와서는 이마를 짚어보고 ‘지금 아프다’고 말한다. 또 치훈의 고민이 끝이 날 때 아이는 다시 다가와 ‘다 나았다’고 말한다.

이 PD는 “괴로워하는 부잣집 도련님과 가장 가난한 나라의 아이. 말은 안 통하지만, 작은 행동으로 표현하는. 그런 모습이 개인적으로 공감이 많이 갔다”며 “이런 모습이 드라마에 나오면, 맞고 틀리고의 문제를 떠나서, 먼 곳에 이런 이웃이 있구나 하고 관심을 갖게 되고 깨닫게 되니까 그런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치훈을 연기한 온유의 팬연합은 ‘세이브 더 칠드런’을 통해 아프리카에 염소를 후원했다.

다니엘(재스퍼 조 분)과 예화(전수진 분)에게도 비슷한 맥락의 모습이 담겨 있다. 모연이 ‘돈 안 되는 일을 하시는 구나’하고 말하면 예화는 ‘재밌는 일을 하는데 돈 없어도 된다’고 퉁명스럽게 말한다. 이 PD는 “말장난 같지만 시청자들이 ‘아,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삶을 존중하고 이해하기를 바랐다”고 전했다. 그는 “이렇게 성당과 악당, 그 옆에 아이들이 살고, 다니엘과 예화 같은 인물이 있는 최소한의 설정만 주고 시청자들이 상상하기를 바랐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핵심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시진과 모연의 로맨스다. 이 PD는 “제작발표회 때 이 둘을 키스시키려고 그 난리가 벌어졌다고 말했는데 그 말이 농담이 아니다”라며 “그럼에도 기존 드라마와 다른 점은 갈등이 없다는 거다. 대신 이 남자를 내가 감당할 수 있나, 이 여자는 내 사랑을 받을 수 있나, 어쩔 수 없이 고민하며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을 빨리 처리하고 사랑을 하자는 거다. 사명감을 가진 일들이 사실은 두 사람을 응원하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고 전했다.

동화 같은 배경 속에서 펼쳐지는 판타지 같은 사랑이다. 그래서 유시진 대위를 둘러싼 환경들을 과장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예를 들어, 1회에서 유 대위가 헬기를 타고 떠나는 장면은 모연이 시진이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그리는 첫 번째 계기가 된다. 이 PD는 “그냥 택시를 타고 가면 그런 느낌이 없지 않겠나”라고 반문하며 “모연이가 ‘저 남자는 뭐지?’ 하게 만든 거다. 병원헬기만 보다가 커다란 군용헬기를 보고, 날아갈 것 같은 위태한 느낌을 현실적으로 받는다. 멋있으면서도 불안한, 그런 모든 걸 암시하는 엔딩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르크에서 지뢰밭을 헤쳐 나간 장면 역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그들이 갈 길이 도처에 지뢰밭이지만, 설레면서 재미있게 건너가자 하는 메시지였다.

▲ KBS <태양의 후예> 현장스틸 ⓒKBS

하지만 이런 판타지를 그려내는 일이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세트를 짓는 데에서부터 촬영까지 예상치 못한 난관들이 많았다. 핵심이 되는 ‘지진 장면’을 찍기 위해선 발전소 역할을 할 공장이 필요했고, 또 그걸 부숴야만 했다. 주변 조건 상 도심이 안 되니 갱도를 알아봤다. 그런데 산림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산림청의 허가를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허락을 받고 나니 이번엔 장마가 찾아왔다. 비를 맞고 태백에서 두 달 정도 거주하며 세트를 지었다. 지진이 발생한 이후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돌 더미를 만들어야 했다. 배우들이 있는 곳에는 가짜 돌을, 배우와 떨어진 곳과 카메라 앞에는 진짜 돌을 두고 찍었는데 찍을 때마다 카메라 방향이 달라지니 이 각도를 맞춰 돌을 세우는 데만 7시간이 걸렸다.

병원 장면을 찍으려 하니 이번엔 메르스 사태가 터졌다. 병원에 들어갈 수 없어 응급실 세트를 짓고, 병원 외부 장면을 먼저 찍어야만 했다. 성당 막사, 메디 큐브, 군부대 등의 세트는 현지 느낌을 주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 특히 성당 막사의 경우 이국적이면서도 가짜 티가 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실제로 그리스에서 창문, 테이블과 같은 소품을 공수해왔다.

해외촬영 때는 날씨가 변수였다. 특히 시진과 모연이 초반에 찾아가는 난파선이 있는 해변은 이 PD가 가장 공을 들인 장소였는데, 날씨가 따라주지 않아 계속 스케줄이 변했다. 다른 장소면 몰라도 그곳만은 날씨가 좋아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비바람이 부는 날이 많았다. 이밖에도 드라마에서는 한 달 동안 해외촬영을 해본 경험이 없어 많은 일들이 막막했지만, 영화 <쎄시봉>을 제작한 강명찬 프로듀서, 영화 <어벤져스> 한국 촬영 당시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김동식 PD가 많은 도움을 줬다.

그나마 사전제작을 한 덕분에 모든 촬영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중국 사전심의 때문에 시작하게 된 완전 사전제작이었지만, 만약 사전제작이 아니었다면 모든 게 불가능했을 거란 말이다. 이 PD는 “규모가 큰 것들을 합리적으로 계산해서 사전에 효율적으로 실험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며 “프리프로덕션을 많이 하면서 제한된 것들을 빨리 정리하고 불필요한 작업을 많이 줄일 수 있었다”고 했다.

사실 사전제작은 시청자와의 교류를 전혀 할 수 없다는 점에서 불안한 점이 많다. 이 PD 역시 그런 점에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는 “배우들은 하나의 생명체 같다. 어떤 몸짓, 말투 같은 걸 시청자들이 좋아해주면 그 부분을 더 살아 움직일 수 있게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들이 있다”며 “하지만 완전 사전제작에서는 그런 걸 할 수 없어 아쉬웠다”고 전했다.

▲ KBS <태양의 후예> 제작진 ⓒKBS

그럼에도 드라마가 이렇게 성공한 것에 대해 이 PD는 배우들의 진심이 빛난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말했다. 촬영 순서도 뒤죽박죽이었지만 훌륭하게 해준 배우들이 있었다. 사실 송중기, 송혜교를 만난 건 운명 같은 일이었다. 중국 사전심의제가 갑자기 생기지 않았다면 촬영 일정상 송중기는 캐스팅을 할 수도 없었다. 동시에 캐스팅이 진행된 송혜교는 미팅을 하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이 둘 외에도 <태양의 후예>에서는 수많은 조연들이 사랑을 받았다. 진구(서대영 역) 같은 경우 드라마 해외촬영에 도움을 줄 강명찬 프로듀서의 <쎄시봉>을 보러 갔다가 만난 인재였다. 영화 속 분량이 적음에도 그 눈빛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동안 드라마에서는 빛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워 캐스팅했다. 김지원(윤명주 역)은 오디션을 많이 봐왔던 배우인데, 그 밝은 에너지가 <상속자들> 때 잘 터졌다고 생각해 함께 하게 됐다. ‘송닥터’ 이승준은 그 맑은 느낌과 에너지가 좋아 같이 하게 됐고, ‘하쌤’ 서정연 같은 경우 <풍문으로 들었소>에서 눈여겨봤는데, 마침 함께 하게 될 이승준과 예전부터 연극으로 인연이 있다고 해 그 합이 좋아 캐스팅했다. 온유, 김민석 등의 배우들은 오디션 때 그 날 것의 느낌이 좋아 합류시켰다

이 모든 과정들을 이 PD는 “온 우주가 ‘태양의 후예’를 위해 도와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작가가 가진 선한 생각들이 배우와 스태프, 게다가 날씨까지 움직인 기운이 있었다”며 웃어 보였다. 마지막 회의 에필로그를 보며 사람들이 ‘시즌2’를 생각하게 될지도 모를 것 같다는 그는 “다른 배우와 연출가가 제 2의 모연과 시진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며 “물론 착한 드라마로 안 봐주신 분들도 있겠지만, 이렇게 안 보이는 데에서 노력하는 사람들을 다른 곳에서 또 그려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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