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청년에게 ‘희망’을 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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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KBS스페셜-지옥고, 청년의 방’

▲ 〈KBS스페셜〉'지옥고-청년의 방' ⓒKBS

12.5%

올해 2월 청년실업률이다. 1999년 이후 역대 최고란다.

36%

청년주거빈곤률이다. 청년 세 명 중 한명은 제대로 된 집에 살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통계 수치로 실감이 되는가? 수치는 수치로만 존재할 뿐, 개인의 삶을 드러내지 못한다. 통계수치 속에 숨은, 혹은 외면했던 청년들의 삶을 우리는 알고 있을까? 짧은 뉴스 속의 모자이크 쳐진 간단한 인터뷰, 단 몇 컷만으로 스케치된 청년들의 삶. 그 속에 들어가 보고 싶었다. 또한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한 이유였고 표현하고 싶은 것이었다.

무엇을 모티브로 청년 문제를 다룰 것인가. 그들의 문제가 집약된 것은 무엇일까. 방이었다. 주거문제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누군가 말했다. 이 시대 청년들은 더 이상 “집”을 원하지않는다, 단지 편하게 쉴 수 있는 “방”을 원할 뿐이라고.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는 청년들의 주거 환경을 일컫는 대표적인 말이다.

<KBS스페셜>‘지옥고-청년의 방’을 준비하면서 수십 명의 청년들을 만났다. 그들의 삶을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다. 진솔한 얘기를 듣는 과정도 신뢰를 얻는 것도 어려웠다. 뻔하디 뻔한 일상의 모습으로 한 시간 분량의 방송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떤 단계를 넘어서는 순간, 그들은 말하고 싶어 했다.

“학자금 대출이 없으니 은수저다. 내 꿈은 15평이다. 결혼은 생각지 않는다” 축소된 그들의 꿈. 충격이었다. 그동안 주변의 문제에 눈을 감고 있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1997년.

나는 지하방에 살았다. 스케치북 만한 크기의 조그만 창이 있는 방. 반지하라기 보다는 지하에 가까웠다. 볕이 거의 들지 않기에, 잠에서 깨면 아침인지 밤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라디오를 틀면 흘러나오는 <2시의 데이트> 김기덕의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기 일쑤였다.

2년 후 옥탑방으로 이사를 갔다. 창고를 개조한 방. 소나기라도 내리면 누군가 기관단총으로 지붕을 갈기는 듯 요란했다. 겨울에는 변기가 얼어서 뜨거운 물로 녹이곤 했다. 주변의 친구들이 사는 것에 비해 좋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일테니 괘념치 않았다. 어차피 내 삶은 더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그리고 믿음대로 몇 년 후 취직을 했고, 옥탑에서 전세를 거쳐, 아파트를 샀다.

그런데 지금 청년들은 그런 믿음, “점차 내 인생은 좋아질 거야” 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까? 좋은 일자리를 구하고, 서울시내 아파트를 장만하고. 그렇게 본인의 삶의 개선될 것 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까? 내가 만난 수십 명의 청년들에게 물었다. 그 누구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꿈꾸고 싶어했지만, 꿈꾸는 것도 사치라고 말했다. 단지 하루하루, 한 달 한 달의 삶을 허겁지겁 이어나가고 있었다.

취재하면서 20년 전 옥탑에 살던 ‘나’를 찾을 수 없었다. 착각이었다. 이미 40대가 되어버린 내가 찾고자하는 환상이었다. 어쩌면 대부분의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환상. 조그마한 본인의 성취가 바탕이 된 환상. 지금 청년들의 조건은 20년 전에 비해 훨씬 가혹하고 불안하다.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환상이 확신이 되고, 확신 가득찬 표정으로 우리는 청년들에게 말하곤 한다. “나 때도 그랬어. 너희들은 나약해. 실패를 두려워 마라”

하지만 조건이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말하면 안 된다. <KBS 스페셜>‘지옥고-청년의 방’을 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청년들이 가르쳐준 것이다.

▲〈KBS스페셜〉 '지옥고-청년의 방' ⓒKBS

9.5%

시청률이 높았다. 블로그나 SNS에서도 반응이 뜨거웠다. 며칠간을 인터넷에 올라온 반응을 보느라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시청률 수치로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그 수많은 반응 속에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리얼리티에 대한 갈증이었다.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 방송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현실을 외면하거나, 혹은 현실에서 겉돌면서 누구를 위한 방송인지조차 불명확한 방송이 그간 얼마나 많았던가.

높은 시청률은 어쩌면 지난 수년간 퇴행한 방송에 대한 ‘외면의 역설’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을 제대로 담기 위해 노력하면 만듦새가 비록 뛰어나지 않을지라도 사람들은 호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쓸데없이 폼 잡고, 어깨 힘주고,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방송에 사람들이 반응하던 시대는 지났다. 13년차 PD로서, 그간 시사프로그램을 제법 만들었다고 착각해왔던 내게, 이번 경험은 큰 깨달음을 주었다.

“현실에 뛰어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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