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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4.29 08:51
  • 수정 2016.05.04 12:09

“자유 잃은 언론 ‘수평폭력’으로 더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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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VS PD] 전주국제영화제 다큐 영화 상영 앞둔 최승호·김진혁 PD

▲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을 앞두고 있는 최승호 ·김진혁 PD를 지난 28일 오후 서울 동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성헌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코리아 시네마스케이프 섹션에서 오는 30일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두 편이 관객들을 만난다. MBC 해직언론인으로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을 추적한 최승호 <뉴스타파> PD의 영화 <자백>과 이명박 정부 이후 YTN, MBC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의 모습을 묵묵하게 그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전 EBS PD)의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다.

부당한 압력에 저항하다 해직되고, 회사를 어쩔수 없이 나왔던 이들이 만든만큼 두 작품 모두 현재의 언론 환경과 국가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TV 시사 프로그램이 아닌, 다큐멘터리 영화였기에 더욱 거침없이 현실의 민낯을 드러낼 수 있었다. 처음으로 영화 상영관에서 관객을 만날 준비에 바쁜 최승호 PD와 김진혁 PD를 지난 28일 오후 서울 동교동 한 카페에서 만나 영화 제작 뒷 얘기를 들어보았다.

영화는 내운명?

최승호 뉴스타파에서 거의 3년 정도 간첩 조작에 대해 취재 해 왔다. 영화에서는 연출자와 관객이 ‘좁지만 강한 경험’을 만들 수 있겠다 싶더라. 국정원 간첩 조작 이슈를, 뉴스타파 보도(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자백이야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백>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함께 나누고 싶었다. 사실 MBC에 있을 때만 해도, 영화라는 매체에 별로 주목하지 않았다. 휴먼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영화로 개봉한다고 할 때도 ‘그거 뭐 되겠나, 방송 이미 한건데’ 이런 생각이 강했다.

김진혁 나도 그랬다. EBS 출신이라 한 마디 덧붙이자면,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EIDF)가 2004년에 처음 시작할 때 잘 될 거라 생각을 못 했다. 근데 다큐멘터리에서는 방송에서 하기 어려운 맥락들을 강렬하게 전달할 수 있는 매력이 있더라.

최승호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국정원이 간첩 조작으로 우리의 생각까지 제어하는 모습을 깊이 있고 강렬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김진혁 해직언론인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자는 제의를 언론노조에서 처음 받았을 때는 ‘잘 만들 수 있을까’ 싶어 사실 많이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해직언론인에 대한 보도는 단편적인 내용들로만 존재했지 그 맥락을 잘 드러낸 작품이 없더라. 그래서 그들이 파업을 진행하면서 가진 고민들, 해직을 통해 느꼈던 모멸감, 그럼에도 왜 싸움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 등등… 7년의 기록들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모습과 감정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전하고 싶었다. 관객들이 2시간 동안이나마, 해직언론인들이 있었던 그 자리에서 최대한 직접 경험에 가까운 경험을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다큐를 제작했다. 그리고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의 언론에 대한 부분도 추가했다. 그들이 없는 언론, 현재의 언론 환경이 급격하게 나빠진 걸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최승호 ‘해직 언론인’이라는 건… 세계 언론사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상황이다. 정권에 반대한다고 해서 무더기로 언론인들을 해고하는 건 대한민국에만 있다. 그래서 영어로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번에 <자백>에서도 ‘해직 언론인이 만든 영화’란 표현을 영어로 해야 했다. 그때 결국 마땅한 단어가 없어서 ‘블랙리스트(Black list)’라 썼다. 이 모습을 다큐멘터리로 남겨놓는 건, 이후를 위해서라도 정말 꼭 필요하다. 김진혁 PD의 <7년 - 그들이 없는 언론> 덕분에 해직 언론인 사태의 본질을 볼 수 있다.

김진혁 처음에 YTN 노조와 MBC 노조에서 많은 영상 자료를 받아서 보았다. 보다보니 다시금 그들의 치열함에 놀랐다. 그래서 구성을 바로 시작하기는커녕 그거 보면서 혼자 울먹거렸다. 감정의 동화작용이 꽤 오래 지속이 돼서 힘들었다. 지금은 그래도 좀 빠져나온 상태다.

▲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국정원이 간첩 조작으로 우리의 생각까지 제어하는 모습을 깊이 있고 강렬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 최승호 PD ⓒ김성헌

최승호 난 아무래도 취재대상이 국정원이라는 점 자체가 힘들었다. 간첩 조작사건의 인물이 간첩이냐 아니냐라는 부분을 파헤치는 게 중요했고, 국정원이 조작하는 과정에서 어떤 짓을 했는지도 밝혀야 했다. 이 두 가지를 규명하기 위해서 중국 접경지대까지 은밀하게 드나들었다. 이것보다도 더 힘든 건 자기와의 싸움, 스스로를 검열하는 일이었다. 국정원에서는 민형사상 고소를 하겠다고 협박했다. 그 이후 고소를 해서 검찰에도 불려갔다. 그러나 결국은 근거가 없으니까 무혐의처분 됐다.

김진혁 EBS에서도 <지식채널e>외에 한 시간짜리 시사 교양 프로그램은 제작했다. 그러나 120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는 처음 만든 거다. 그래서 익숙하지가 않았다. 2시간이나 되다 보니 영화의 호흡이 괜찮은지 알기 위해서는 여러 번 볼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도 계속 보여주면서 “재미있어? 재미없어?”, “이해되?”라고 물어봤다. 편집하고, 시간을 두고 본 다음 다시 편집하는 일을 끝없이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한계다’ 싶었다. 그래서 편집을 끝냈다. 이런 과정을 거쳤지만 그래도 이 작품은 연출자인 내가 아니라, 출연자인 해직 언론인들의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영상에 담긴 그들의 7년을 엮었을 뿐이다.

최승호 그런데 엮는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대단하다. 나도 김진혁 PD처럼 TV 프로그램만 만들었다 보니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다는 건 쉽지 않았다. TV는 계속 여러 장치를 통해 “이게 증거야! 이걸 봐!!”하며 시청자를 끌고 가야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강요하지 않는 구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다시 MBC로 돌아간다면 시청자가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방송을 만들고 싶다. 물론 우리 후배들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겠지만, 나는 구닥다리니깐 그러지 못했다.(웃음) 그리고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다 보니, 영화의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더라. 많이 배웠다. 다큐 영화를 많이 찾아서 보게 됐는데 그것 또한 즐거운 경험이었다. 특히 김진혁 PD가 <액트 오브 킬링>(조슈아 오펜하이머, 2012)을 추천해주었는데 아주 훌륭한 다큐멘터리여서 기억에 남는다.

해직과 이직, 방송사를 나온 최승호와 김진혁

▲ 해직언론인들의 7년 동안의 투쟁 과정을 보면서 감정의 동화작용이 꽤 오래 지속이 되어 힘들었다고 말한 김진혁 PD ⓒ김성헌

김진혁 2013년 EBS에서 나왔다. 그 당시 나는 2012년 5월부터 EBS <다큐프라임> ‘나는 독립운동자의 후손입니다’(반민족특별위원회 편)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2013년 1월 15일) 수학교육팀으로 발령이 났다. 반민특위를 다루지만 내가 다루고자한 건 국가시험에서도 나올 정도의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 이후 다시 제작부서로 돌아왔다.(2013년 4월 8일) 그런데 인사발령이 다시 또 난 거다. 그때 참,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벽에다 대고 뭔가를 계속 반복해서 하는 행위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면 선택이 두 가지였다. 벽이 무너질 때까지 기다리거나, 그 자리에서 뒤돌아서서 반대방향을 가는 건데, 나는 후자를 택했다.

최승호 굉장히 용감한 선택이다. 인사발령을 내서 더 이상 제작을 못하도록 한 것 아닌가. 바로 박차고 나왔다니. 나 같았으면 아마 계속 좀 더 해보려고 버텼을 것 같다.

김진혁 사실 나도 바로 박차고 나온 것은 아니다. 처음 수학교육팀으로 인사발령 받고는 그냥 있었다. 물론 처음에는 하기 싫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보니 내가 ‘근의 공식’ 영상 등을 만들고 있더라. PD로서 습관적으로 하는 거였다. 그런데 이렇게 적응하며 지내다가는 6개월, 1년이 지나버릴 거 같았다. 그게 가장 무서웠다. 또 그 당시엔 ‘내가 EBS에 부담이 되는 건 아닐까‥’. ‘진보적인 PD’로 유명세를 얻으려고 보이지 않았나? 싶었다. 섭섭한 점이 있으면서도 그런 양가적인 감정이 있었다. 그리고 창피한 말이지만 인사발령이 나던 당시에 정확한 이유를 몰랐다. 역사문제에 대한 다큐를 만든다고 인사발령을 내는건가? 주위 동료들도 의아해했다. 그런데 이후에 국정교과서를 보면서 경악을 했고 이유를 그때서야 제대로 파악했다.

최승호 해고되었던 2012년 그 때를 떠올리면,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해직되고 나서 금방 문제가 해결될 거라 믿었다.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 여야 원내대표들,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들도 모두 그렇게 약속했다. 지금도 그 얘기를 부인에게 하면 “그걸 믿었느냐”며 야단을 친다. 해직 이후에는? 잘 살았다. (일동 웃음) 뉴스타파에서 계속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시절이 좋을 때 MBC에 있었다 하더라도, 이렇게 원하는 아이템을 계속 만들기는 어려웠을 거다. 자유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행복했다. 그런 면에서 내가 나 자신을 볼 때, 내 인생을 소모하지 않았다.

언론자유지수 80위! 언론의 자유만큼 떨어진 자유의지

최승호 MBC가 무너져가는 걸 보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 이제는 MBC를 안 본다. 안타깝기도 하고.. 후배들이 다큐 만들었다고 하면 그것만 본다. 지금 한국 언론의 상태는 최악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전 중앙정보부에 끌려갈 정도로 언론인에게 자유가 없는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방송민주화운동도 일어났고, 그 맥락에서 <PD수첩>도 생겼다. 한 아이템 때문에 <PD수첩> PD 전원이 교체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묵묵히 한 발, 한 발 걸어오며 영역을 넓혔다.

김진혁 그런데 지금은 그런 PD들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들의 단결이 방법론적으로 해체되어 버린다. 해체하는 방식도 예전에 비해 세련됐다고 해야 하나. YTN에도 6명 해직을 시키고, 나중에 법정에서 3명을 해직시키고, 3명을 복직시켰지 않나. 이런 건 굉장히 기술적인 방법이라고 생각을 한다. 전원을 복직시키거나 다 해직을 시키면 결집이 일어날 수 있다. 결국 언론장악까지 포함해서 ‘수평폭력’(분노가 문제의 근원이 아닌,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향하는 현상. 뉴스타파 ‘썩은 상자와 수평폭력’)인 거다. 언론사 내에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서로를 안에서 공격한다. 그러다 “우리는 안 돼” 자기가 자기를 자해하기도 한다.

최승호 맞다. 김 PD 말대로 정권에서 어떤 방송이 마음에 안 들면 인사발령이라는 조치를 취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 안에 있는 개개인들, PD들은 굉장히 힘들어진다, 그 어느 때보다 그 안에 있고 싶지 않을 정도로 힘들겠다 싶다.

김진혁 그런데 거기에 대처하는 노조는 옛날 방식이다. 해직되고 할 수 있는 건 법정에 가는 것 이외에는 없다. 그러다 보니 위에서 인사발령을 내면 속수무책이다. 명확한 대응방안이 필요하다.

최승호 노조 뿐만 아니라 방송사 내부에서도 과연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두들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게만 있다면 세상이 스스로 바뀌기를 원하는 것이다. 설령 세상이 바뀐다 한들 “너네는 어차피 피동적인 인간들이고, 권력이 하라는 대로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할 게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씩이라도 지금 무엇이라도 하는 게 필요하다. 2008년 당시를 떠올려보면, 사실 나는 YTN이 굉장히 끈질기게 싸우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처음에는 그렇게 오래 싸우리라 예상을 못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YTN이 열심히 싸웠기 때문에, KBS나 MBC는 다가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그리고 YTN이 영화 <300>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치열하게 싸웠기에 다른 조직들도 부조리한 상황에 타협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 해직언론인들의 7년을 담은 다큐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김진혁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면서 2008년 영상에 있던 한 젊은 직원이 다른 영상에 있도 시간이 흘러도 있는 걸 발견했다. 화면 맨 앞에 있지 않고 뒤편에 있어서 눈에 띄진 않았지만. 그런데 그가 늙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보인다는 게 서글펐다. 그런데 힘이 나더라. 묵묵히 같은 자리에서 있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희망이 보이더라.

최승호 역시 누군가는 끊임없이 포기하지 않고 한발씩 나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모하게는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이젠 중앙정보부 지하실에 끌려가는 것도 아니다. 물론 나처럼 해직되거나 다른 불이익도 있을 순 있지만. 그래도 PD라면 자기 양심에 비추어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고, 지금 대치하고 있는 영역을 넓혀 나가야 한다.

하지만 나는 PD다!!

최승호 이런 상황 속에서도 PD를 계속 하는 이유는, PD로서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세상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왔다. PD는 영상으로 직접적이고 광범위하게 영항을 줄 수 있다. 물론 정치를 통해서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런 거보다 훨씬 더, 아름답지 않나?(웃음)

김진혁 개인적으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PD다. 일을 할 때 즐겁고 재밌다. 나는 영상으로 소통을 하는 게 취향에 맞다. 하지만 최승호 선배가 신기할 때가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EBS에서 탐사보도 영상(주로 학교폭력, 학교비리 소재)을 제작할 때, 몰입하다 보니 감정적으로 힘들었다. 그래서 예전에 최승호 PD에게는 그렇지 않은지 물었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다고 하더라.

최승호 <PD수첩>을 제작하면서 여러 사건을 다뤘지만 마음이 힘든 적은 별로 없었다. 어떤 일에 대해 깊이 상처를 받는 스타일이 아니다. 개의치 않는다. 그래서 사실 뭐… 나를 해고시킨 김재철 전 MBC 사장에 대해서도 큰 감정이 없다. 하여튼 자기적성이 있는 거라 생각한다.

김진혁 역시, 천직이군요.

▲ 부당한 압력에 저항하다 해직하고, 회사를 나왔던 이들이 만든만큼 두 작품 모두 현재의 언론 환경과 국가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왼쪽부터 최승호, 김진혁 PD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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