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빼앗긴 ‘그들’, 공정방송 잃은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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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해직언론인 문제 담은 다큐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첫 상영

“‘그들이 없는 언론’이라고 제목을 지은 이유는, ‘없는’을 ‘있는’으로 바꾸고 싶어서였습니다. 이분들이 언론으로 돌아가면 어떨지 상상해보세요. 가슴이 뛰지 않으십니까?”

‘그들’이 없는 7년 동안 우리는 세월호 참사 오보에 충격을 받았고, 기자들은 ‘기레기(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리고 그 7년 동안 ‘해직 언론인’들은 단체가 아닌 개인으로서 고통의 시간을 견뎠고, 언론의 자유를 찾기 위한 긴 여정을 묵묵히 지나왔다.

지난 30일 오후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김진혁 감독이 연출한 <7년-그들이 없는 언론>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전 EBS PD인 김 감독은 EBS <다큐프라임> ‘나는 독립운동자의 후손입니다’(반민족특별위원회 편)를 제작하던 도중 부당한 인사발령을 받고 2013년 퇴사했다. 이후 2014년 전국언론노동조합(이하 언론노조)의 제안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이어진 YTN, MBC 해직 언론인의 ‘7년’을 그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김진혁 감독의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전주국제영화제

YTN, MBC 파업 사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때 그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지금은 또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은 언론인을 ‘기레기’라 쉽게 욕하면서도, 왜 그들이 ‘기레기’가 되어가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영화는 그런 사람들에게 지난 7년의 과정과 ‘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YTN에는 ‘낙하산 사장’이 내려온다. 당시 YTN 기자들은 강한 반대 투쟁을 했지만, 결과는 ‘6명 해직’이었다. 100일, 200일, 그리고 2000일이 지났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3명 해고 무효, 3명 해고 유효’였다.

2012년 김재철 사장의 만행과 공정방송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없었던 MBC 언론인들은 총파업에 돌입한다. 하지만 역시 결과는 무더기 해직과 부당 인사발령이었다. MBC는 1년 계약직 기자와 PD, 아나운서를 채용해 그들의 빈자리를 채워 넣었다.

해직 이후, 누군가는 시민들의 지원금으로 운영되는 인터넷 독립 언론사 ‘뉴스타파’를 만들어 진정한 탐사보도를 위해 나섰고, 누군가는 거리로 나서 공영방송에서는 철저히 외면 받고 있는 ‘미디어 폭격지’를 찾아다녔다. 시청 앞 현대 자동차 노동조합, 제주 강정마을, 진주 의료원 등 미디어에서는 더 이상 다루지 않는 현장을 방문했다.

하지만 원래 있던 자리, 있어야만 하는 자리로는 돌아가지 못했다. 2012년 박근혜 대선 후보는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을 약속했지만 당선 이후 그 약속은 처참히 묵살됐다. '공정방송'은 공약 파기와 함께 침몰했다. 영화는 끝내 ‘그리고 그들은 다시 복직해 민주 언론을 수호하고 있습니다’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 김진혁 감독의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상영후 GV에서 참석자들이 대답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권성민, 정유신, 현덕수, 노종면, 박성제, 최승호, 김진혁, 조승호 ⓒPD저널

영화 상영이 끝난 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정유신 YTN 기자는 “밖에서 기자라고 하면 시민이나 학자 분들이 ‘왜 이렇게 언론이 전과 다르게 망가졌을까’하고 질문하시는데, 그 답이 영화에 담겨있다”며 “그렇게 망가지는 동안 기자나 PD는 뭘 했는지, 싸우긴 싸운다는데 도대체 안에서 뭘 하는 건지를 보여준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반 대중들이 함께 공정방송을 위한 목소리를 내주기를 바라고 있다. 노종면 YTN 해직기자는 “현실이 언론인만 싸워서 될 일이 아니라는 걸 지난 8년간 경험했다. 사회가 같이 변해야만 언론의 자유, 또 다른 중요한 자유들을 획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성제 MBC 해직기자 역시 “정부 입맛에 맞는 사람이 공영방송의 사장이 되는 구조, 그걸 개혁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그것이야말로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야 한다. 언론인만의 싸움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영화는 현재의 언론인들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영화 말미에 최승호 MBC 해직PD는 어떤 큰 변화가 외부에서 이뤄지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지금 저항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누군가가 권력을 잡았을 때 “그때는 하라는 대로 했으면서, 왜 지금은 그러지 않느냐”는 억압을 또 다시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 김진혁 감독의 <7년-그들이 없는 언론> 상영후 GV에서 김진혁 감독이 대답을 하고 있다. ⓒPD저널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한 조승호 YTN 해직기자, 최승호 MBC 해직PD, 박성제 MBC 해직기자, 노종면 YTN 해직기자, 현덕수 YTN 해직기자, 정유신 YTN 기자, 권성민 MBC 해직PD는 “어떻게 언론인으로서의 신념을 지킬 수 있었느냐”는 한 언론인 지망생의 질문에 한 목소리로 “우리는 특별히 어떤 신념을 강하게 가졌던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현덕수 YTN 해직기자는 “어떤 장에 있든지 간에 누구나 판단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며 “그 순간에 내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판단을 해야 할지를 생각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권성민 MBC 해직PD는 “다른 분들과 다르게 예능PD로서, 언론과 신념 이런 걸 고민할 일이 많지는 않다”며 “그런데 ‘이건 진짜 아니잖아, 와 진짜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 숨지 않은 것뿐이다. 눈앞에서 책임을 1/n로 나눌 수 있는 순간에, 내 몫의 책임을 지고가자고 생각한 것”이라고 전했다.

영화는 현재진행중이다. 여전히 YTN, MBC 해직 기자와 PD들은 복직을 하지 못했다. 정유신 YTN 기자는 ‘해고 무효’ 판결을 받고 YTN으로 돌아간 직후 또 다른 징계를 받았고, 1심에서 승소했지만 다시 항소를 받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MBC는 노동조합마저 여러 개로 나눠지고 부당 인사발령이 거듭되고 있다. 공정방송 구조의 ‘골든타임’이 끝나기 전에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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