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보다 아픔이 두려운 아이들을 위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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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보다 아픔이 두려운 아이들을 위한 길
[리뷰] 소아 호스피스 다룬 KBS '5월, 아이들'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6.05.05 02: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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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1 특집 성장다큐 2부작 <5월, 아이들> 중 1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에서 김민선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소아완화의료팀 전문의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KBS 화면캡쳐

“(의사로서 환자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는 건 받아들여졌는데, 그건 받아들여졌는데...그런데 꼭 이렇게, 처참해야 하나? 그게 계속 의문이었던 거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건가?”

세상은 어찌나 이리 잔혹한지. 오늘도 온힘을 다해 ‘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들이 있다. 너무 안타까워 외면하고도 싶지만, 이 아이들을 단순히 ‘중증희귀질환환자’로만 바라보기에는 한명, 한명이 참 특별하고 소중하다. 이런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럽게, 또 조금이라도 더 많은 시간을 엄마, 아빠와 함께 보낼 수 있도록 ‘소아완화의료팀’이 존재한다.

‘완화의료’는 질병 자체의 치료를 넘어 통증을 완화해주기 위한 의료적 접근을 병행하는 걸 의미한다. 환자의 치료뿐 아니라 가족들의 심리적 부담도 함께 나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희귀중증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 수는 5만여 명. 이로 인해 사망하는 아동 수는 매년 1,300여 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약 3.6명이다. 하지만 소아완화의료-호스피스 시스템은 국내에 거의 전무하다.

지난 4일 KBS 특집 성장다큐 2부작 <5월, 아이들> 1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에서는 전문의로서는 국내 최초로 소아완화의료팀을 꾸린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 김민선 교수를 따라 네 명의 아이들의 삶과 통증완화치료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 KBS1 특집 성장다큐 2부작 <5월, 아이들> 중 1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에서 통증완화치료를 받고 있는 이수진 환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KBS 화면캡쳐

“제가 죽으면 다 없어지잖아요, 감각이. 그러면 사라지는 거예요. 제가 사라지면 아무것도 안 느껴지고 그러면 아픔도 없고, 배고픔도 없고, 그러면 행복할 것 같은데. (행복함을 느끼는 주체는 누구야?) 없죠. 그런데 이렇게 그게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죽으면 그 전엔 무서운 게 없잖아요”

교모세포종(악성뇌종양)을 앓고 있는 열일곱 살 수진이는 죽는 건 안 두려운데 아픈 게 두렵다고 말한다. 그래도 지금은 치료를 중단하고 집에서 엄마와의 데이트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김민선 교수가 가정방문을 통해 통증완화치료를 도와주고 있는 덕분이다.

생후 2개월에 ATRT(악성뇌종양) 진단을 받은 아현이는 이제 생후 5개월에 접어들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에, 아현이 엄마는 치료를 중단하고 집에서 아현이와 함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을 만들고 있다. 역시 김민선 교수의 가정방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현이는 120일의 촬영기간 도중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위급한 순간에 아현이의 집으로 달려간 김민선 교수는 엄마가 아현이와의 마지막 순간을 오롯이 함께할 수 있게 도와준다.

소아완화의료팀에서 1년 동안 37명의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또 그들의 가족 옆을 지켰던 김 교수는 말한다. “덜 슬플 수는 없는 일이고, 덜 처참하다고 해야 될까요. 그런 정도.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드리는 것. 그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아닐까 싶어요"

▲ KBS1 특집 성장다큐 2부작 <5월, 아이들> 중 1부 '사랑할 수 있는 시간'에서 통증완화치료를 받고 있는 이현후 환자가 엄마와 함께 찍은 사진 ⓒKBS 화면캡쳐

“하늘나라에 가면 모든 병이 다 치유될까요? 저는 하늘에서 엄마, 아빠, 단유(동생)를 내려 볼 수 있지만 엄마, 아빠는 저를 못 보잖아요. 서로 보면서 얘기하고 싶은데 못 하니까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백혈병을 앓고 있는 열세 살 현후는 병원에 입원해있지만 1인실에서 엄마, 아빠, 그리고 자신을 무척이나 잘 따르는 동생 단유와 함께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보내고 있다. 현후 곁에서 김 교수는 지금 겪는 혼란, 불안한 마음이 당연한 일이라고 다독여준다. 24시간 동안 현후의 몸에 들어가고 있는 진통제는, 암세포와의 투쟁 중에도 현후가 웃을 수 있는 이유다.

촬영기간 중 김 교수의 새로운 환자가 된 열다섯 살 승재는 난치성 희귀병인 고함스 병을 앓고 있다. 사춘기를 막 지나고 있어 김 교수에게 마음을 여는 시간은 더디지만, 애니메이션 작가를 꿈꾸는 승재에게 병원에서 보내는 미술시간은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다. 유난히 자신보다 어린 아기들을 좋아해 자기가 그린 그림을 곧잘 나눠주곤 한다. 이런 승재 역시 통증완화치료를 받으며 엄마와 늘 붙어있을 수 있기에 치료의 시간도 견딜 수 있다.

아빠와 함께 먹는 밥, 그때 나누는 일상적인 대화, 엄마와 함께 보는 영화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다는 걸 너무 빨리 깨달아버린 아이들이다. 그래도 투병 기간이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함께하는 추억을 하나라도 더 만들 수 있는 시간이 되고 있는 건 ‘통증완화치료’ 덕분이다. 김 교수는 말한다. “가장 중요한 건 통증이랑 증상조절. 그게 안 된 상태에서 가족과 함께 있는 것, 심리적인 것, 저는 못 한다고 생각해요. 몸이 힘든데 뭘 더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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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쌈장 2016-05-06 15:32:57
아이를 키우는 주부로서 너무나 눈물이 나서 계속 훌쩍였습니다.
이쁜 아기 천사는 좋은 곳으로 갔으니 울지마세요...

토끼토끼 2016-05-05 13:51:40
정말 감동적이었어요.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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