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샐러리맨들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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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드라마 드라마] ‘욱씨남정기’와 샐러리맨의 비애

<미생>을 보다보면 비정규직 신입사원 장그래(임시완)나 정규직이면서 관리자인 오상식(이성민) 과장이나 그리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걸 차츰 느끼게 된다. 장그래의 시선을 따라가는 작품인 만큼 처음에는 그의 입장이 먼저 도드라져 보이지만, 마치 하루를 전쟁을 치르듯 살아가는 오과장의 모습은 장그래가 앞으로 살아갈 미래일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어느 순간 암담해진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져보자. <미생>이 그리고 있는 회사의 모습은 정상적인가. 우리는 그것을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닌가. 그 샐러리맨들의 일상을 담아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센 드라마가 가능하다는 건 무얼 말해주는 것일까.

<송곳>이라는 드라마는 다국적 기업의 대형마트에서 실제 벌어졌던 노동쟁의를 소재로 담았다. 이수인(지현우)이라는 어찌 보면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푸르미 일동점 야채청과 파트장이었던 인물은 부당한 회사의 직원 해고 명령에 불복하면서 차츰 노동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다. 오로지 경영 수치를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의 입장 따위는 안중에 없는 기업의 부당행위들은 특별한 이야기를 덧대지 않아도 이 드라마의 극성을 높이는 훌륭한 장치들이 되어주었다. 현실을 그대로 가져온 노동운동의 면면들이 극적인 드라마의 장치가 되어준다는 건 얼마나 씁쓸한 일일까. 어째서 우리는 드라마 같은 현실 속에서 일하고 있는 걸까.

▲ JTBC <욱씨남정기> ⓒJTBC

최근 방영되고 있는 <욱씨남정기>는 갑질 하는 대기업 황금화학과 하청업체로 늘 당하기만 하는 영원한 을 러블리 코스메틱의 대결구도를 드라마의 틀로 갖고 있다. 러블리 코스메틱의 남정기 과장(윤상현)은 전형적인 하청업체 샐러리맨으로 사장과 함께 황금화학 김상무(손종학)의 접대를 나가고 필요하다면 무릎이라도 꿇을 것처럼 조아리면서 헛된 접대성 웃음을 날리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옥다정(이요원) 본부장이 등장하면서 하청이 아닌 자사의 제품을 개발하고 그것이 성공하기 시작하면서 각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황금화학은 전문적인 기업사냥꾼인 지상(연정훈)을 통해 러블리 코스메틱의 경영권을 흔든다. 그렇게 해서 러블리 코스메틱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심산이다.

이것은 유망한 중소업체들이 대기업에 의해 먹혀버리는 전형적인 현실들을 잘 반영하고 있다. 자신들을 위협할 정도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중소업체를 돈의 힘으로 무너뜨리고 그들의 주머니 속으로 넣어버리는 현실. <욱씨남정기>는 물론 답답한 ‘고구마’ 현실보다는 이를 통쾌하게 풀어내는 ‘사이다’ 판타지를 더 많이 보여주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우리네 현실들은 너무나 적나라해서 보기에 불편해질 때도 있다. 결국 대기업에 사냥당한 중소업체의 사장이 목을 매 자살하는 장면은 옥다정을 각성시키는 장면이면서 시청자들에게 그 부당한 현실의 무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미생>에서부터 <송곳> 그리고 <욱씨남정기>까지 최근 들어 우리네 노동현실 속에 내던져진 샐러리맨들의 이야기들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회사생활의 기상천외한 부조리들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이들의 비애를 담는다. 이건 ‘밥벌이의 지겨움’ 정도가 아니라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생존을 걸어야 하는 밥벌이의 이야기들이다. 그 뒤편에는 그리고 가족이 있다. 이들이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도 그걸 감내하며 버텨내야 하는 이유.

LG전자 해외법인에서 10년간 일했던 경험을 담은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도발적인 책을 낸 프랑스인 저자 에리크 쉬르데주도는 오로지 회사를 위해 살아가는 것만 같은(아니면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우리네 기업 문화에 대해 ‘미쳤다’는 표현을 썼다.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과의 삶 자체도 저당 잡히는 삶. 거의 집단적인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전투적인 조직문화. 어느 날 회사로 가야할 발길이 엉뚱한 곳으로 옮겨져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무시로 벌어지는 전쟁터. “미쳤다”는 말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시름하는 샐러리맨들. 이런 현실로 믿기지 않는 현실적인 드라마들이 많아지는 건 슬픈 일이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진심을 다해 묻고 싶어진다.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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