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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은 PD의 뽕짝이 내게로 온 날]

1년여에 걸친 휴직을 마감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암 진단 이후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 그리고 후속치료와 약간의 회복기까지 딱 1년을 쉬었다. 치료를 하느라고 일을 놓았지만, 복잡하고 심난한 항암 과정을 끝내고 나니 지난 1년이 꿈같이 아득하다. 감당하기 힘든 순간도 많았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희멀건 기억으로 잔상(殘像)조차 아득하다. 누군가 ‘지나간 것은 모두 아름답다’고 말했던가. 고통은 짧고 희열은 강렬하다. 그리하여 흘러간 세월이 ‘추억’으로 포장된다. 어느 날부터인가 ‘병가’가 ‘휴가’ 같고 매일 매일 공휴일의 연속선상이었다. 어떤 선배는 나에게 “암 투병도 이벤트같이 즐기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쩔 것인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투병(鬪病) 기간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으니 견뎌야지, 이왕이면 즐겨야지…. 그렇게 1년을, 전라도 말로 ‘오지게’ 놀았고 ‘꼬숩게’ 즐겼다.

그리고 다시 출근하는 날, 오랫동안 쉬고 있던 자동차 시동을 켜니 이 친구도 부르르 몸을 털면서 기지개를 켠다. 성한 몸뚱이를 굴리지 못하고 주차장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근신해야 했으니, 그도 몸이 근질근질했을 게다. 동반자로서 좀 짠한 마음이 든다. 나는 그의 목덜미를 만지고 심장을 더듬으면서 “자,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야”라고 속삭인다. 전주-익산까지 출근길을, 거의 매일 무사고로 나를 보호해주던 고마운 친구다. 크고 작은 상처는 누군가 들이받은 흔적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먼저 사고 낸 적은 없으니 지나온 세월이 또다시 감사하다. 운전대를 부여잡고 눈은 부릅뜨고 팔에 힘을 준다. 애마는 기분 좋게 출발한다.

▲ '출발'이 수록된 김동률의 5집 '모놀로그' ⓒ로엔 엔터테인먼트

아주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낀 카메라 때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테니까

(김동률 노래 <출발> 가사 중)

1년 만의 출근길은 도로 좌우로 건물이 들어서고 조경이 바뀐 곳도 있어서 조금 낯설다. 마치 첫 출근처럼 사뭇 설레고 긴장된다. 방송국 주차장에서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후배를 만났다. 멀리서부터 반갑게 뛰어오는 그녀 모습이 풋풋한 소녀 같다. 방송국 건물 1층 상점 매장 리모델링 공사로 출입구도 바뀌었다. 1층 판매원 언니가 나를 보고 문을 활짝 열어주며 반겨주신다. 이렇게 성대한 환영 인사로 첫 출근을 시작하니 뿌듯하다. 직원들의 반가움이야 이루 말할 수 없는데 무엇보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잘 정돈된 책상이었다. 오랜 시간 비워둔 책상은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청결하고 정갈하다. 사장님이 여러 번 살피셨다고 직원이 귀띔해준다. 오랫동안 책상을 비우면 책상이 없어진 곳도 있다는데, 자리를 지켜주고 이렇게나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준 사장님과 직장동료들이 고마울 따름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전 직장에서의 내 책상도 생각난다. 모 방송국에서 시사 다큐 방송작가로 일하던 때였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 출산 휴가를 신청했는데 담당 PD는 대체 작가를 구하느라 애쓰다가 결국 작가를 구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복귀했을 때 일거리가 없어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의 출산 휴가 동안 K선배와 P선배 두 분 PD가 작가 없이 방송을 제작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송구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몰랐는데, 이번에 방송국에 복귀하고 보니 그때의 사연도 생각이 난다. 참 고마운 분들이다.

▲ 서영은의 '혼자가 아닌 나'가 수록된 드라마 '눈사람' OST 앨범 ⓒMBC

이제 다시 울지 않겠어 더는 슬퍼하지 않아
다신 외로움에 슬픔에 난 흔들리지 않겠어
더는 약해지지 않을께 많이 아파도 웃을꺼야
그런 내가 더 슬퍼보여도 날 위로 하지마
가끔 나 욕심이 많아서 울어야 했는지 몰라
행복은 늘 멀리 있을때 커 보이는 걸
힘이 들땐 하늘을 봐 나는 항상 혼자가 아니야
비가 와도 모진 바람 불어도 다시 햇살은 비추니까
눈물나게 아픈날엔 크게 한번만 소리를 질러봐
내게 오려던 연약한 슬픔이 또 달아날 수 있게

(서영은 노래 <혼자가 아닌 나> 가사중)

돌이켜보면 나의 첫 출근은 늘 축복이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대학신문사였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대학신문사 기자가 되어 ‘기 쎈’ 선배들로부터 신입생 축하의식을 호되게 당하기도 했지만, 나의 직장생활의 기본은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기사 쓰는 법과 인터뷰 하는 법 등 기자 실무는 물론, 위계질서와 조직생활에 적응하는 훈련도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이뤄진 것이다. 대학신문사에서는 고정적인 월급과 원고료가 지급되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제3세대 한국문학> 전질을 할부로 구입하고, 그 책을 꽂을 <보르네오> 책장을 원고료로 구입하고, <인켈> 미니 전축을 구입하고, 디스크를 구입하며 마음의 재산을 불렸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근로를 통해 그에 따른 대가를 지급받았으니 대학신문사야말로 나의 ‘첫 출근지(出勤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학생회관 대학신문사 창가 ‘문화부’ 팻말 아래 책상에서 열심히 원고를 쓰고, 줄 금을 그어가며 편집하던 20대의 내가 지나간다.

대학을 졸업하고 일간신문의 기자가 되어 첫 출근하던 감회도 새롭다. 5㎝ 굽 높이의 빨간 구두를 신고 엄마가 사주신 스커트 정장을 입고 출근했지. 툭 트인 편집국 빽빽한 책상 사이사이로 수없이 전화 벨이 울리고, 유독 사회부와 정치부, 편집부 팻말 아래는 모락모락 담배연기가 피어올랐어. 왜 그렇게들 담배를 피워대던지…. 정치경제부 벽 쪽 두 번째 책상이 내 자리였어. 원고를 쓰다 글이 막힐 때 사회부로 눈길을 주었다가 문화부를 건너 저 건너 편집부를 건네다 보면, 리드를 뽑다 뒷 목을 두드리며 기지개를 켜던 K기자와 눈이 마주치기도 했지. 그의 싱그러운 웃음이 30여 년 흐른 지금도 눈에 선하다.

▲ ⓒpixabay

지금의 직장에 첫 출근할 때도 떠오른다. 새 사람 온다고, 책상도 의자도 새 것으로 준비해서 맞이해주던 따뜻한 마음이 되살아난다. 아, 그러고 보니 참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첫 출근의 기억이다.

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나는 ‘첫 출근’과 같은 마음으로 살자고 다짐한다. 나를 ‘받아 준’ 고마운 일터에서 설렘과 긴장감으로 나를 곧추 세우고, 기쁨과 감동을 주는 ‘일’을 만들어 가자고 그렇게 다짐한다. 나에게 내어준 책상을 유익함으로 채우고 주변을 훈훈하게 밝혀가는 결 고운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모든 것이 지금 시작이야 한순간도 놓칠수 없어 그래
눈을 뜨면 보이는것은 이제와서 돌이키지 말아요
지금 내가 가야하는길 그땐 정말 물거품이야 정말
이제와서 돌이키지말아요
지금 나는 가야하는데
하늘의 떠도는 별들도 나를 보며 오라하는데
어짜피 그대 마음에 한동안 머물다 떠나가는데
돌이키지마 돌이키지마
모든것이 지금 시작이야 한순간도 놓칠수 없어

(이은하 노래 <돌이키지 마> 가사 중)

*필자는 대학졸업 후 신문기자를 거쳐 라디오 PD로 일하고 있다. PD로서 지역의 문화와 지역 발전을 위한 다수의 프로그램을 제작해서 이달의 PD상, 방송문화진흥회 공익프로그램 상 등을 수상했고, 수필가로서 전북여류문학회장 등의 활동을 펼쳤다. 저서로 '뽕짝이 내게로 온 날', '그리운 것은 멀리 있지 않다'가 있다. 전북수필문학상, 전북여류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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