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5년차 지역PD의 드라마 제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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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 마지막 5개월 그린 울산MBC 드라마 ‘마지막 간수’

3.1절 특집으로 제작된 울산MBC <마지막 간수>(연출 정상민, 촬영 김영기·이지훈)는 울산지역 최초의 자체 제작 드라마다. <마지막 간수>는 1909년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이송된 중국의 뤼순 형무소에서 보낸 생의 마지막 5개월을 일본인 간수 지바 도시치의 눈으로 그린 작품이다. 드라마 제작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방송이라는 여건 속에서 드라마 제작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냈고, 거기에 작품성까지 인정 받아 <마지막 간수>는 한국PD연합회가 주는 193회 이달의 PD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작품의 각본과 연출을 담당했던 정상민 PD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PD저널>은 정상민 PD의 제작기를 게재한다. <편집자>
▲ 울산MBC <마지막 간수> 제작현장 ⓒ울산MBC

<마지막 간수>에 대한 사전 제작을 지난해 7월에 시작했다. 직접 각본을 쓰는 데 한 달이 걸렸다. 원안이나 각색을 맡길 작가를 고용할 여력이 없었다. 1억 원으로 시대극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낯선 작가와 옥신각신하며 협업할 시간적 여유도 부족했다. 그냥 내가 쓰는 게 낫겠다 싶었다.

연출을 맡으며 건네받은 원래의 기획안은 다큐멘터리였다. 안중근과 일본인 간수의 이야기. 이미 수차례 국내 교양 프로그램에서 다뤄졌고, 일본에서는 20년 전에 이미 재연다큐 형태로 방송된 적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또다시 재탕하고 싶지 않았다. 손쉬운 방법이 떠올랐다. 일본인 간수의 시점으로 바라본 안중근이란 소재로 드라마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달 간 각본을 쓰고 나니 8월이 되었다. 2주 동안 글로 된 스토리보드를 만들었고, 나머지 2주는 조나래 작가와 콘티를 그렸다. 울산MBC는 자체 인력을 활용해 직접 드라마를 제작한 경험이 없었다. 그리고 지역 방송사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PD 1인 제작 시스템이 고착화돼 있다. 게다가 나는 5년째 막내 PD였다. 경험을 전수 받을 선배 제작자도, 함께 고민할 후배 연출자도 없었다.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직접 스태프를 꾸리기 시작했다. 조나래 스토리보드 작가도 그렇게 인연이 닿은 것이다.

제작PD도, 캐스팅 디렉터도, 로케이션 매니저도, 사전 제작을 함께할 조연출도 없었다. 9월부터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서울-울산을 오가며 조단역 배우 오디션을 진행했으며, 전라도와 경기도 등지에 답사를 다녔다. 직접 모텔을 섭외하고 스태프들이 끼니를 해결할 식당도 물색했다. 제작진도 거의 그렇게 꾸려졌다. 촬영은 울산MBC 소속의 김영기, 이지훈 감독이 맡았다. 그 외 조명, 동시녹음, 분장, 그립팀 등은 커뮤니티에서 직접 접촉하거나 알음알음 소개를 통해 섭외를 완료했다. 의상이나 소품팀 역시 따로 둘 여력이 안 됐다. 그래서 본사의 MBC아트를 통해 출연자 16명의 의상과 각종 소품을 촬영일수에 맞춰 대여했다.

▲ 울산MBC <마지막 간수>의 한 장면 ⓒ울산MBC

사전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두 가지였다. 각본과 세트였다. 주인공인 지바 도시치와 안중근 사이에는 사실 이렇다 할 일화가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는 지바 도시치가 그저 먼발치에서 안중근을 지켜보며 그를 흠모하게 됐는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내러티브는 다르다. 인물의 변화가 관객이 납득할 만한 계기와 함께 제공돼야 한다. 그래서 고안된 것이 ‘박석필’이라는 허구의 인물이다. 박석필은 극중에서 안중근을 꾀어 탈옥을 시도하도록 하는, 그래서 일제가 안중근을 사살하게끔 돕는 끄나풀이다. 하지만 안중근은 지바 도시치에게 총을 겨눈 박석필을 제지하며 탈옥을 거부한다. 더 이상의 희생을 원치 않고 재판장에 나가 이토의 잘못을 고할 거라는 이유에서다. 이 과정에서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의 진정성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적개심을 거두게 된다.

세트는 순전히 예산의 문제였다. 촬영을 위해서는 형무소, 감방, 내무반, 취조실, 재판장, 사형장, 면회실 등 여러 공간이 필요했다. 초기에는 뭣 모르고 미술팀 여기저기에 촬영 콘셉트와 함께 견적을 의뢰했다. 돌아온 대답은 전체 예산을 초과하는 1억 원 이상의 세트 제작비였다. 대안을 찾아야 했다. 서대문형무소는 촬영 시간에 제약이 많고 비용이 많이 들어 익산시에서 운영 중인 교도소 세트장을 선택했다. 현대적인 장식들만 떼어내고, 운동장과 담벼락 등 최대한 공간을 활용할 심산이었다. 나머지 실내 공간은 울산MBC 스튜디오 내에 짓기로 했다. 하지만 100평 남짓한 스튜디오는 이미 일일 생방송 프로그램, 각종 주간 프로그램 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활용 가능한 공간은 50평 남짓. 하루에 한 공간씩, 해당 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모든 씬을 몰아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4일 동안 감방, 내무반, 취조실, 재판장 4개의 공간을 촬영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2일에 크랭크 인, 익산 교도소 세트장에서 5일, 울산MBC에서 4일을 촬영했다. 9일 동안 43개 씬, 620여 컷을 찍었다. 서글프지만 촬영은 철저하게 예산 절감이라는 목적을 달성도록 진행되었다. 대개의 테이크는 최대 세 번을 넘지 않았고, 쫓기 듯 스태프들을 내몰았다. 한 공간에 자리를 잡으면 필요한 모든 장면을 찍었다. 극의 시간 순서나 배우들의 감정선은 무시되었다. 하루라도 촬영 일수가 늘어나면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해가 지고 자정이 넘어도, 비가 와도 모든 일정을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사실 이광희 감독의 조명부가 가장 고생했다. 밤을 낮처럼 만들고, 비오는 야외에 조명 장비를 노출시켜야 했다.

▲ <마지막 간수> 연출자 정상민 PD ⓒ울산MBC

돌이켜보면 아쉬운 점이 많다. 주연인 강필석 씨와 이율 씨는 최선을 다해 연기해주었다. 하지만 제작 여건에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조연/단역 배우들의 연기를 꼼꼼하게 챙기며 연출에 집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는 현장에서 내가 연출자인 동시에 제작자였기 때문이다. 연출하는 와중에도 수십 명이 넘는 스태프들의 각종 제반 민원을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 하나. 낙후된 숙소를 바꿔달라는 팀원들의 민원을 전달하지 못해 전전긍긍했던 조명 감독님이다. 연출자에게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무척 낯설었던 것이다. 사전제작 시기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섭외 단계에서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이 응당 나와는 다른 인물일 거라 생각했던 스태프도 있었고, 감독님이랑 직접 계약서를 쓰는 게 굉장히 낯설다는 배우도 있었다.

이외에도 말하지 못한 일화들이 많다. 하지만 무사히 제작을 마쳤고, 방송을 했으며, 과분한 상까지 받았다. 이게 다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준 스태프들과 배우들 덕분이다. 터무니없는 제작비로 드라마를, 그것도 시대극을 하겠다고 한 건 그만큼 열정이 있어서였다. 앞으로 드라마를 다시 하겠느냐고 하면 물론 그렇다고 대답하겠다. 하지만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모르겠다. 그만큼 모두들 고생했다.

[울산 MBC '마지막 간수' V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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