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정녕 청춘의 자화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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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따져보기] 청년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시 청년이다. 지난 8일 SBS <SBS 스페셜> ‘헬조선과 게임의 법칙-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나용’ 편이 전파를 탔다.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5포 세대’(내 집 마련, 인간관계 포기), ‘7포 세대’(꿈, 희망 포기)라는 수식어에 이어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현실을 견주어보면 TV가 청년을 주목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이미 뉴스에서도 숱하게 청년 문제를 다뤘다. 너무나 평범해 한국에서 버티기 힘든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저)가 한동안 베스트셀러 순위에 머물렀던 것만 봐도 청년 문제는 대중 곁에 있는 듯 보인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나용’에서는 청년 실업 문제를 다룬다. 대학졸업자 55만 명이지만, 역대 최고의 청년 실업률을 기록하는 요즘, 개천의 용을 꿈꾸는 청춘들을 조명한다. 기획 취지에 걸맞게 녹록지 않은 현실을 버텨내는 젊은이들이 소환된다. “아르바이트에는 선택권이 없고(필수), 학업에는 선택권이 있다”며 여러 개 아르바이트가 생업이 된 대학생, “집에 돈 좀 원 없이 있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놓는 학생, 학자금 때문에 신용 불량자가 된 취업 준비생까지. 한국 사회는 청춘에게 끝없이 ‘노오력’을 요구하지만, 실제 그들의 ‘노오력’은 ‘돈’ 앞에 쉽게 매몰된다.

'헬조선과 게임의 법칙-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나용?' ⓒSBS

‘용이 되기 위한 조건’인 ‘스펙’도 소용없다. 실제 지난달 ‘학벌없는사회’가 출범 17년 만에 자진 해산했다. 단체는 해체 선언문에서 “자본의 독점이 더 지배적인 2016년 지금은 학벌이 권력을 보장하키는커녕 가끔은 학벌조차 실패하고 있다”며 “학벌과 권력의 연결이 느슨해 졌기에 학벌을 가졌다할지라도 삶의 안정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꼬집었다. 학벌이 예전만큼 권력 기제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40대 출연자는 지방대 출신으로 사회생활 내내 ‘학벌 콤플렉스’에 시달렸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현재 이민 준비 중이라는 그의 ‘탈주’는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미디어는 청년 문제를 취업의 높은 문턱뿐 아니라 거주 문제로도 천착한다. 지난달 말 방영된 KBS <KBS 스페셜- 지옥고, 청년의 방>. ‘지옥고’는 지하방, 옥탑방, 고시촌의 줄임말로, 젊은 세대가 생활하는 열악한 주거공간을 빗댄 말이다. 서울 지하, 옥탑 거주 청년은 49만 4631명. 서울 청년 인구의 21.6%이다. 1인 청년가구 주거빈곤율은 36.3%(2015년 서울시 발표)에 달한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임용고시 준비 중인 한 대학생은 “(자랄 때만해도) 중산층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자녀로서 중산층이 될 자신이 없다”고 일갈한다. 또 다른 비정규직 청년은 넉넉지 않은 집안 환경에서 빠듯한 월급으로 생활하는 자체를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표한다.

이처럼 미디어가 주목하는 청년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청춘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낙관하기 어려운 미래를 걱정하고, 안전하지 못하다는 불안감을 시달린다. TV 프로그램이 청년 문제를 자주 다루면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는 기능을 한다. 예컨대 청년들의 생활상을 밀착 취재함으로써 이들이 처한 현실을 진단하는 데 집중한다. 청년 빈곤률, 취업률, 공교육비 민간 부담률, 학자금 대출자의 수 등 각종 수치를 통해 청년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한다. 이는 청년의 비관을 ‘패기 없다’고 고개를 내젓는 기성세대의 시선에 일침을 가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지옥고-청년의 방' ⓒKBS

하지만 한계도 여실히 드러난다. 프로그램은 청년 문제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지만, 카메라가 청년을 비추는 방식은 일방적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은 인터뷰를 하면서 눈물을 짓고, 답답한 현실을 호소한다. 미디어가 청년을 대하는 시선이 ‘불황을 겪는 청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흙수저’로 전락한 대학생, 취업문이 좁아진데다 치열해진 경쟁으로 거듭된 낙오를 겪는 취업 준비생, 똑같이 일하면서도 정규직은 언감생심이라, ‘무기 계약직’을 꿈꾸는 비정규직 교사의 입을 빌어 현실의 벽을 재확인하는 데 그친다.

이처럼 미디어에서 소환되는 청년의 자화상은 반쪽짜리다. 프로그램은 청년 문제의 현실을 진단함으로써 해결책을 모색하고자 하지만, 정작 ‘청년’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깔려있다. 시청자 의견 게시판마다 다뤄야 할 아이템을 다뤘다고 하면서도 답답함이 남는다는 의견이 자주 눈에 띄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미디어가 다룬 청년 문제를 보고 나면,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 듯 떠오른다. ‘불황’이라는 구조적 문제 앞에서, ‘낙수효과’는 옛말이 된 요즘, 청년들은 도대체 어떤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것일까. 제아무리 ‘학벌’의 힘이 예전만 하지 못하다지만 이른바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로 불리는 청년들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할까. 미디어는 청년이 갈급하는 그 ‘무엇’에 대해선 깊게 묻지 않고, 대답 또한 원치 않는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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