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음악, 수다가 있는 2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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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 현장] EBS라디오 ‘책으로 행복한 12시, 최현정입니다’

“이곳에서 그녀는 아무도 아니었다. 그저 친구가 없고 가족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 방에서, 직장으로 가는 거리거리에서, 매장에서 그녀가 유령이라는 뜻이었다. 그 무엇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프라이어리 가에 있는 집의 방들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 방들을 돌아다닐 때면 그녀는 진짜 거기 존재했다. 고향에서는 가게나 직업 학교에 걸어갈 때면, 공기, 빛, 땅 모든 것이 견고했고 모든 것이 그녀의 일부였다. ” - 소설 ‘브루클린’ 중

▲ 매일 보이는 라디오를 통해서도 전해지는 '책으로 행복한 12시' DJ인 최현정 아나운서가 책을 낭독하고 있다. ⓒPD저널

EBS 라디오에서는 이렇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소설을 들려준다. ‘책 읽어주는 라디오’가 시작된 지 2년 동안 계속된 일이다. 지난 4월 20일 오후 서울 우면동 EBS 방송센터를 찾은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책으로 행복한 12시>(이하 ‘책행시’) 생방송 스튜디오의 문을 열자 최현정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난 3월 봄 개편부터 이렇게 매일 책 읽어 주는 일을 하게 된 그이지만 낭독이 이제는 제법 편안해 보였다.

평일 정오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책 이야기를 나누는 <책행시>는 책과 음악 그리고 수다가 있는 방송이다. 일하느라 쉴 틈 없는 일상 속에서 책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에게 <책행시>는 책에 대한 부담감을 잠시 내려놓고, 책 듣는 재미를 알려준다. 책 읽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노동 시간이 가장 긴 나라 아니었던가.

<책행시>에서는 지난 3,4월 동안 <새벽 세 시, 바람이 부나요?>(다니엘 글라타우어, 2008) <감옥에 가기로 한 메르타 할머니>(카타리나 잉엘만순드베리, 2016), <한국이 싫어서>(장강명, 2015), <삶의 끝에서>(다비드 메나셰, 2016), <면장선거>(오쿠다 히데오, 2007) <브루클린>(콜롬토빈, 2016)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이 낭독됐다. (아쉽게도 저작권 문제로 소설을 낭독하는 1부는 다시듣기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최현정 아나운서는 <책행시> 진행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낭독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했다. “묵독만 하다가, <책행시>를 통해 낭독을 시작했어요. 낭독의 즐거움이 굉장히 커요. 소개하는 책도 다 읽고 싶어지죠. 읽을 목록에 책이 추가되는 재미가 쏠쏠해요. 원래 저는 사랑, 심리학 서적들만 주로 읽었는데, 자연스럽게 책 읽는 시야가 넓어졌어요.”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2부 요일별 코너는 다양한 인사들이 각자의 취향으로 고른 책을 소개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웹드라마로 인기를 끌고 있는 윤성호 감독, <씨네21> 이다혜 기자, 밴드 재주소년의 멤버 박경환, 윤대현 정신의학과 교수, 강정 시인이 매주 출연한다.

이날 생방송에 출연한 수요일 ‘대세는 독서’ 코너의 윤성호 감독은 EBS ‘책 읽어주는 라디오’와 인연이 깊다. 2012년 <EBS 북카페>에서 1년 반 동안 ‘책과 영화’ 코너에 출연했던 그는 방송을 잠시 쉬면서 책과 한동안 멀어져 있다가 다시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책행시>에 출연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책행시>에서 자신만의 취향이 담긴 다양한 스타일의 책을 소개하고 있다. 이날 생방송에서 그가 소개한 책은 크리스찬 러더의 <빅데이어 인간을 해석하다>. 빅데이터 속에 숨어 있는 인간의 욕망을 윤 감독은 이 책을 통해 전했다.윤 감독이 읽어 내려간 구절은 이랬다.

“페이스북에 올릴 때는 마치 인터넷을 처음하는 사람처럼 페이지를 여러 번 새로 고치며 댓글이 달렸는지를 확인한다. 좋아요. 즐겨찾기, 대화, 답변을 통해 주목받고 가치를 확인받고자 하는 우리 자신의 점점 커지는 욕망이 이런 문제에 붙을 붙인다”

▲ 지난 4월 20일, EBS FM '책으로 행복한 12시' 2부에 코너가 진행하기 직전 라디오 스튜디오 ⓒPD저널

그는 책을 소개하면서 작품 구상에도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서도 각색할 내용을 구상하는데 머릿속에 들었던 스토리들이 이후 웹드라마 창작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며 기자에게 얘기하기도 했다. 

<책행시> 박미나 PD는 EBS 라디오의 대표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세계음악기행>을 비롯해 <EBS 북카페> 등을 연출한 경험을 바탕으로 음악과 책을 잘 버무려 청취자에게 전한다. 박 PD는 “<책행시>를 통해서 청취자들의 일상생활에서 책과 문화의 범위를 넓히고, 다양한 삶의 문제를 얘기 나누는 프로그램”이라며 “다양하고 좋은 책에 대해 관심이 많은 청취자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인지도가 낮은 EBS 라디오지만 박 PD는 “얼마 전에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태양의 후예>처럼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꼭 다수를 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비록 그 수는 적더라도 라디오에는 <책행시> 청취자처럼, 아날로그적인 사유와 색다른 걸 접하고자하는 ‘적극적인’ 청취자들을 만날 수 있어 보람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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