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살인 사건’ 선정적 보도에 인권침해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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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역 살인 사건’ 선정적 보도에 인권침해 심각”
민언련, ‘강남역 살인 사건’ 보도 모니터…CCTV 남용부터 ‘조현병’ 왜곡 보도까지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6.05.25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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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벌어진 ‘강남역 살인 사건’ 관련 방송 보도가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전달돼 인권침해 소지 크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은 사건 이후 8일 간 KBS, MBC, SBS, JTBC, TV조선, 채널A, MBN 등 7개 방송사의 메인뉴스에서 보도된 내용을 모니터 한 결과 “선정적인 보도로 인권침해가 나타났으며, 일부 방송사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현실을 왜곡하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7개 방송사는 모두 자극적인 모습의 CCTV 화면을 장시간 반복적으로 보도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민언련은 “범죄의 정황을 전하는 것을 넘어, 범죄 화면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것은 피해자와 피해 관련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5절 소재 및 표현 기법 제38조 1항은 “관련 범죄 내용을 지나치게 상세히 묘사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 5월 17일 TV조선 <뉴스쇼판>, <강남 한복판 ‘20대 여성 흉기 피살’> 보도화면 ⓒ화면캡처

특히 TV조선은 7개 방송사 중 유일하게 피해자를 기다리고 있는 가해자 모습부터, 피살 후 피해자를 발견하고 오열하는 남자친구와 실려 나가는 피해자의 모습까지 모든 상황을 노출했다. CCTV를 보도에 사용한 비율은 57.1%로 7개 방송사 중 가장 높았다.

TV조선은 심지어 <‘여성 혐오 범죄’에 충격…추모・분노>(5월 18일) 보도에서 내용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 직후 남자친구의 모습’을 화면에 담았다. 민언련은 “사건의 자극성과 피해자의 슬픔을 악용한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고 전했다.

이어 민언련은 사태의 본질보다 남녀 성 대결로 문제의 본질을 흐린 MBN의 보도 행태도 지적했다. MBN은 <피켓 들고 격한 대치>(5월 22일), <남녀 성 대결 변질>(5월 22일) 등 총 4건의 보도에서 ‘묻지마 범죄’로 결론지은 경찰 발표에 대한 분석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라는 문제의 본질은 외면했다.

반면 JTBC는 같은 날 <여성에 대한 피해망상 ‘묻지마 범죄’>(5월 22일)에서 경찰의 발표를 보도하면서도 “하지만 이 사건 이후 '여성 혐오'를 지적하는 분석이 나온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며 문제의 본질에 보다 신중하게 다가가야 함을 전했다.

SBS 역시 <강남역 현장검증…뒤늦게 “죄송하다”>(5월 24일) 보도에서 “경찰은 정신질환자의 ‘묻지마 범죄’로 규정하고, 모레 사건을 검찰로 넘길 예정입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분출된 추모 열기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숙제”라며 사건이 일어난 배경에 대해 더 깊은 고찰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 5월 22일 MBN <뉴스8>, <피켓 들고 격한 대치> 보도화면 ⓒ화면캡처

한편, KBS는 조현병과 강력 범죄를 직접 연결 짓는 보도를 20일, 22일, 23일에 걸쳐 내보내며 현실을 왜곡했다. 특히 <앵커&리포트/조현병 특징 ‘망상・환각’…심해지면 ‘범죄’>(5월 23일) 보도에서 “최근 4년여 동안 검찰이 집계한 이른바 ‘묻지마 강력 범죄’는 231건입니다. 이 가운데 ‘조현병’으로 인한 범죄는 30% 정도로, 약물남용 다음으로 많습니다”라며 “조현병이 왜 이렇게 강력범죄와 관련이 있을까요?”라고 전했다. 노골적으로 조현병 환자들을 ‘묻지마 강력 범죄자’로 몰아간 것이다.

민언련은 "이는 심각한 왜곡이자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혐오 조장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3일 성명서에서 "조현병 환자들이 범죄를 저지를 위험성은 일반 인구보다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살인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도 매우 드물다"며 “정신질환자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에서 기인하는 편견과 낙인은 또 다른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공격과 혐오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앞으로 프로파일러 이외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 의한 충분한 정신 감정이 더 필요하다"며 "사건의 원인을 조현병의 증상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전했다. 이어 "충분한 조사 과정 없이 여성 혐오나 조현병을 사건의 원인으로 성급히 지목한 기사들이 올라오면서 온 사회가 더 큰 충격을 받고 분노하게 됐다"며 언론의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민언련은 “굳이 남자친구까지 화면으로 노출시킨 TV조선과 ‘여성 혐오 논쟁’에 집착한 MBN, 조현병을 강력 범죄자와 연결시킨 KBS는 모두 사건의 자극성을 악용했다”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물론 사건과 관련 없는 조현병 환자들까지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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