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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6.01 16:28
  • 수정 2016.06.08 17:02

내일이 갑갑한 후배들에게 희망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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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VS PD] 스크린으로 진출한 독립PD 진모영 · 이승준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왼쪽)과 <달팽이의 별> 이승준 감독(오른쪽)은 방송을 무대로 활약한 독립PD다. ⓒ김성헌

2년 전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이하 님아)의 흥행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480만명의 관객이 본 <님아>는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 흥행작으로,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2009년 <워낭소리>의 기록을 훨씬 넘어섰다. 물론 <님아>는 CGV아트하우스가 배급에 뛰어들면서 다른 다큐멘터리와 출발선이 달랐지만, 다큐멘터리의 가능성을 증명한 일임에는 분명했다. 2011년 세계적 권위의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서 장편부문 대상을 거머쥔 <달팽이의 별>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위상을 높였으며 세계적인 배급망을 확보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 두 작품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님아> 진모영 감독과 <달팽이의 별> 이승준 감독은 방송을 무대로 활약한 독립PD다. 이들의 스크린 진출은 그동안 비인기 장르였던 다큐멘터리에 대한 투자 활성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PD저널>은 지난 5월 20일 서울 상수동 인근 카페에서 진모영, 이승준 감독을 만나 독립PD의 스크린 진출 의미와 다큐멘터리 영화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대담은 이승준 감독의 새 다큐멘터리 영화 <달에 부는 바람> 개봉에 앞서 진행됐다. 참고로 <달에 부는 바람>은 시청각 중복장애인으로 태어나 암흑 속에서 열아홉 해를 살아온 예지의 세계를 엄마의 시선에서 들여다 본 이야기다. <편집자>

▲ 시청각 중복 장애인을 다룬 <달팽이의 별>에 이어 <달에 부는 바람>를 개봉한 이승준 감독. ⓒ김성헌

- <달에 부는 바람>이 개봉하는데 기분이 어떤가?

이승준 <달팽이의 별> 첫 개봉 때는 조금 마음이 붕 떠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달에 부는 바람>은 2014년 완성된 작품이다. 벌써 2년이나 흘렀다. 사실 개봉이 쉽지 않았다. 배급사에 미안할 정도로 최소의 비용이다. 어떤 분이 배급사 사장에게 “돈 안 벌거냐”고 했다고 하더라.(웃음) 특히 이런 건 돈을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니 그런 말을 할 법도 하다.

진모영 이승준 감독의 영화에는 일관성 있게 ‘ㄷ’과 ‘ㅂ’이 들어간다. <달팽이의 별>, <달에 부는 바람> (웃음). 사실 <달팽이의 별>은 나에게 동력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를 하게 된 동기부여가 된 작품이다. <달팽이의 별>이 언어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작품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포스터에도 ‘오래된 사랑의 이야기’라고 적혀있다. 그냥 사랑하니까 내 식구니까. 예지에게 바람이 휙 몰아치는 게 아니라 산들바람이 싹~ 한 번 흔들어주기만 해도 그 힘으로 예지네는 살아간다고나 할까? 예지 엄마가 신이 아니라서 카메라가 없을 때 예지에게 화를 낼지언정 예지를 데리고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엄마이고 가족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다. 예지는 그 안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있다.

이승준 언어가 아닌,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보여주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보여주는 방법으로 언어가 전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은 예지고 바람은 어머니다. 과학적으로 달에는 바람이 안 분다고 하지만. 예지에게는 그 바람이 부는 거다. 그리고 달이 가지고 있는 여성성도 드러내고도 싶었다. 엄마와 딸에 대한 이야기기도 해서 그렇다. <달팽이의 별>은 부부라 싸워서 갈라서면 남남이다. 그런데 엄마와 딸은 아니지 않나. 처음 시작했을 때 로그라인을 만들었던 게, ‘나 너 사랑해. 넌 내 딸이니까’ 이거였다. “예지가 힘들게 해도 웃을 때 힘든 게 다 사라진다”고 엄마는 그런다. 그냥 그 한 마디. 넌 내 딸이니까 사랑하니까. 거기에 무슨 이유가 있고 설명이 필요할까?

진모영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이 감독은 우리를 끊임없는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예지가 방에서 회전할 때 화분을 넘어뜨릴까 봐 아슬아슬하다. 관객들 마음에 답답한 걸 구축해놓는다. 하지만 그렇게 또 이야기는 흘러간다. 다큐멘터리에서 주는 리얼리티라는 거는 그렇게 ‘사이다’ 같거나 레이어가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기쁜 것 같지만 슬픈 것 같고. 결론이 안 나는 이상한 인생을 우리는 계속 살아간다. <달에 부는 바람>에서도 그 희망과 슬픔이 교차한다. 분명 예지의 집은 슬픔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하지만 영원한 절망인가. 아니다. 예지에게 엄마가 희망이고 또 예지의 몸놀림에서 희망이 있다. 그렇다고 영원히 해결되지도 않을 문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야기가 틀어지고 또 틀어진다. 전체 이야기에서 다른 사람 같으면 풀어내지 못하고 안 했을 것 같은데 이승준 감독은 끝까지 그걸 했다.

이승준 이번 작품은 <달팽이의 별> 보다 훨씬 더 이해하기가 힘든 작품이다. 쉬운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새로운 시도였다. 해외에 피칭에서 일본의 NHK 담당자가 이런 말을 하더라. “너는 네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려고 하느냐”고. 하지만 나는 스스로 믿는 게 있었다. 그래서 그냥 간 거다. 결과에 대해서는 만족한다. 사실 개봉이 어렵다고 해서 조바심 같은 게 있었던 건 아니다. 방송 PD를 오래 해서 그런지 다큐 작업을 ‘계속’하는 게 나에게는 더 중요하다. 어쨌든 개봉을 하게 됐다. 즐거운 일이다.

"방송사 갑질에 모두가 한계라 느꼈다?"

▲ 아이러니하게도 IMF 사태로 자행된 독립 PD와 제작사에 대한 제작비 삭감은 오늘날 독립PD들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 진모영 감독 ⓒ김성헌

- 방송 일을 하다가 스크린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진모영 <워낭소리>(2009년)의 이충열 선배가 불을 질렀다. 당시 방송사에서 주는 제작비가 너무 형편없었다. 저작권도 독립PD들이 가질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모두가 한계라 느끼고 있을 때였다. 그런 고민에서 나온 게 국제공동제작이었고 그 길을 틔운 작품이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이다.

이승준 사실 외주 PD로 생활한다는 거 미래가 뻔한 일이다. 제작사를 차려서 잘할 수도 있겠지만, 모두가 그럴 수도 없다. 독립PD로 있으면 10년 차 이상 되어도 월 300-400을 벌기도 힘들다. 후배들에게도 어떤 희망을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다. 개인의 생활도 챙기기 어렵다. 3D 중 하나다. 그렇다고 연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작품을 만들어도 내 작품도 아니고…. 방송사 내부 사람들은 이런 걸 모른다. 이런 것에 대한 불만 내지는 갑갑함을 독립PD들이 다 갖고 있었다.

진모영 나는 독립PD들을 ‘씨받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낳으면 몇 푼 쥐여주고 바로 쫓겨나지 않나. 그리고 이런 말을 듣는다. “어디 가서 네 자식이라고 절대 말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네 권리는 아무것도 없다.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방송사에서 고액 연봉을 받는 창작자로 살면 이런 저작권 고민 안 해도 된다. 열심히 월급 받고, 콘텐츠 만들면 된다. 그런데 열심히 콘텐츠를 만들어서 생활이 안 되는 독립PD들은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봐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IMF 사태로 자행된 독립 PD와 제작사에 대한 제작비 삭감은 오늘날 독립PD들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많은 독립PD들이 제작비 삭감을 극복하려고 디지털카메라를 직접 들었지 않나.

- <달팽이의 별> 수상 소식은 많은 독립PD들에게 희망을 준 것 같다.

진모영 지금도 생각나는데 독립PD협회 주관으로 장흥에서 ‘국제공동제작 종합선물세트’라는 제목으로 비공개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이승준 감독이 암스테르담에서 받은 상패를 들고 귀국하자마자 그 자리에 왔다. 다들 신기해하면서 상패를 만져봤다. 그 자리에 이 감독은 물론이고 박봉남 감독의 <아이언 크로우즈>, 하시내, 최우영 감독의 <내일도 꼭 엉클 조> 등에 대한 사례 발표가 있었다. 국제공동제작을 어떻게 했는지 동료들에게 모든 걸 오픈했다. 사실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독립PD들이 폭발적으로 전진하지 못했을 거다.

이승준 <달팽이의 별>을 갖고 해외로 나가게 된 건, 단편 다큐로 극영화제에 간 경험이 바탕이 됐다. 영화와 방송을 넘나들면서 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같이 일하던 김민철 프로듀서가 해외 영화제에 <달팽이의 별>을 내보자고 해서 영국의 셰필드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출품하게 됐다. 그런데 그동안은 잘 모르다가 그곳에 갔더니 별세상이더라. 아주 큰 마켓이었다. 많은 독립제작자가 참여해서 BBC, NHK 펀더들과 이야기하고 작품이 괜찮으면 투자를 약속한다. 저작권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생태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한국의 공영방송사 움직여야 한다"

▲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달에 부는 바람> 포스터

-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면서 다큐멘터리 투자에 여력이 생긴 셈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투자가 이루어지나?

이승준 지원 금액 3000~4000만원 주고 조건은 단 하나다. 자기네 방송사에 방송하고 제작지원 사실을 다큐에 넣어주면 된다. 완성된 테이프만 넘기면 끝이다. 정말 그게 다다. 해외 펀드들도 많다. 미국 선댄스영화제를 주최하는 선댄스 인스티튜트 펀드가 있고, 일본의 NHK, 영국 BBC, 프랑스 아르떼 등에서 다큐멘터리에 투자한다. 투자금이 2만~3만달러 쥐꼬리만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 조금 저기에서 조금 받으면 다큐 제작에 필요한 최소 경비는 마련할 수 있다. 나야 열정페이로 한다 하더라도 조연출에게 열정페이 줄 수 없는 거 아닌가. 이렇게 지원을 받으면 조연출에게 열정페이 아닌 정상적인 인건비를 줄 수 있다. 사실 KBS가 이런 걸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서는 공영방송사가 이런 일을 한다. 한국에도 그런 게 생기면 제작하는 입장에서 훨씬 더 가능성이 커진다.

진모영 모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같이 해보자고 하더라. 그런데 실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네 사장과 독립PD협회장이 MOU를 체결하자. 당신은 인사 이동되면 그만 아니냐. 남들이 한 거 너무 쉽게 보지 마라. 정식으로 MOU 체결해서 다큐멘터리 영화 프로젝트를 만들자" 이런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 담당자가 진짜 다른 부서로 가버렸다. 소리도 없이 진짜 갔다. 맨날 이런 식이다.

이승준 세계적으로도 다큐멘터리는 영화보다 방송사가 더 큰 시장이다. 방송사가 움직여야 한다. 방송 한 번으로 히트 칠 거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러한 생태계를 바꾸어야 한다. 방송도 하고 영화로도 상영하고 자유롭게 하나의 콘텐츠로 오고 가야 시장이 커진다.

진모영 공영방송사들이 다큐멘러티 영화 프로젝트에 할 의지가 있다면 말만 하지말고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

- 다큐 영화는 배급 문제도 크다.

이승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7~8년 전과 비교해 보면 제작 여건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그런데 유통과 배급 문제는 여전히 힘들다. TV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 개봉을 일주일 앞두고 있는데도 극장이 어딘지 모른다. 영화 개봉한다고 말하면 당연히 따라오는 질문이 “어디에서 하느냐”는 건데 “아직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다큐멘터리 상영 역시 상업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분명히 공익적인 부분이 있다. 유럽 쪽도 상영 자체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밤 12시에 한 번 상영하고선 공익적인 영화를 상영했다며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런 식은 해선 안 된다. 제발 이런 건 안 했으면 좋겠다. 돈벌이를 떠나서 배급을 조금 더 과감하게 하는 시스템이 없을지 국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 그런 정책이 필요하다. 우리는 잘 만들 자신이 있다. 그런 여건도 잘 다져지고 있다.

진모영 똑같이 공감한다. 모두가 똑같은 개봉관을 요구할 수는 없다. 다큐멘터리의 작품도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다큐는 분명히 마이너다. 마이너 세계에 대한 지원 정책이 있어야 한다. 일정한 쿼터를 부여해야 한다. 대기업들도 상업적인 영화로 돈을 벌었으면 일정 정도 사회적 환원도 해야 한다. 정부가 제도적으로 스크린에 대한 과감한 정책들을 펼칠 필요가 있다.

▲ 지난 5월 20일 서울 상수동 인근 카페에서 진모영, 이승준 감독을 만나 독립PD의 스크린 진출 의미와 다큐멘터리 영화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성헌

- 영화와 방송, 경계에 있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나?

이승준 영화와 방송 사이에 벽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업적인 문법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신경쓰진 않고 지낸다. 그리고 지금은 그 벽은 많이 허물어졌다. 국내 영화제에 가서 다큐멘터리 감독들도 만나고, 방송사 들어가면 PD들과도 얘기한다. 그냥 지금 하는 일이 재밌다.

진모영 기존 영화계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냥 색깔이 다른 거다. 다큐의 아버지가 플래어티라면 성격 다른 아이들이 여럿 있는 거로 생각한다. 사실 일정 부분은 자유롭게 일정 부분은 부자유스러울 수 있다. 그런 것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리되고 마음도 편안해질 거로 여긴다. 사람들의 정체성은 다양하다. 걸어 다니면 보행자이면서 자전거를 타면 자전거족 그리고 집에 차가 있으니 운전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걸 하나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 본질은 창작자다. 어떤 플랫폼을 선택하느냐는 그 콘텐츠가 갖는 특성에 따라 기인한다. PD냐 영화감독이냐? YES or NO로 답해. 이건 아니다. 그냥 다큐를 만드는 다큐멘터리스트다.

60억명의 사람이 모두 다큐 주인공

- 휴먼 다큐를 고집하는 이유?

이승준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 있다. 한 사람의 어떤 점에 대해 그냥 눈이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 사람에 내재해 있는 표정을 보는 걸 좋아한다. 사람마다 다른 무언가가 있는데 이런 것을 공유하고 싶다. 흔히 휴먼다큐라고 하면 <인간극장> 등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냥 그 사람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한다. 아직까지 사람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많다. 뻔하지 않은 관습화되지 않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 소설을 보더라도 역사나 인류에 대해 이야기 하더라도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사실 60억명 모두의 다큐를 만들 수 있는 거다.

- 60억명의 사람 중에 다큐 주인공으로 그 사람을 채택하는 이유는?

이승준 작품을 하려고 한다면, 그 시기에 그때 사는 곳에서 계속 그 생각에 빠진다. 책을 보기도 하고 신문을 읽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떤 이야기를 할까. 누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고민한다. 그렇게 지내면서 세상에 평화가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 평화라는 키워드가 되게 중요하면 그 아이템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어느 순간 나에게도 그 아이템이 온다. 전작인 <달팽이의 별>도 그렇고 이번 작품 역시 그랬다. 예지는 <달팽이의 별>을 할 때 만났다. 주인공이 그 집에 방문했는데 가족들을 보았다. 그때가 예지가 15살 정도 된 해 2010년이었는데 예지의 가족은 어떻게 15년 동안 살았는지 그리고 일상이 어떻게 되는지 그 디테일이 궁금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생각이 나더라.

진모영 매우 개인적인 취향인 것 같다. 연애 같은 특성이 있다. 가령 10명의 여자 중에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그 중 한 명 정도일 수 있다. 그런 거다. 그 시기에 어떤 것이 내 마음을 흔들었느냐에 따라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정치적인 이슈를 다룰 때 흥분하는 사람이 있다. <워낭소리> 이충렬 감독은 소와 할아버지를 찾아 3년을 쫓아다녔다고 한다. 전국 이장단 명단을 뽑아놓고 날마다 전화를 했는데 3년 만에 한 이장한테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 소재를 정할 때 어떤 특정한 걸 정해놓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연히 그 기회를 포착하는 사람도 있다. 창작자마다 특성이 다르다.

▲ 2011년 11월 26일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IDFA) 장편 경쟁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달팽이의 별>(Planet of Snail) 이승준 PD가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다. ⓒIDFA 홈페이지

-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의 꿈은?

진모영 그동안 독립PD로 있으면서도 매니저의 역할 많이 했다. 기획하고 사람들 만나고 프로그램 관리하고 납품 그리고 돈 계산까지. 그때가 마흔이 넘었을 때인데 관리자로 사는 것에 대해 신물이 났다. 영화의 길로 마음먹고 갔다기보다 관리자로 사는 거에 신물이 났다. 당시 아무 대책 없이 프로덕션을 관두었다. 앞서 말했듯이 작정하고 영화로 온 것도 아니다. 그냥 창작자의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승준 감독 말처럼 앞으로도 계속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잘 만들었다”라는 소리를 듣고 욕 얻어먹지 않는 작업을 계속하는 게 나의 꿈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이후에 스트레스 없느냐고 많이 묻는데 왜 없겠나. 강박은 있다. 그런데 그건(흥행여부) 내가 장담할 수 있는 세계는 아닌 것 같다. 다른 것들을 계속 만들면서 앞으로도 창작자로서 사는 삶을 계속 살고 싶다.

이승준 매순간 어떤 꿈을 가지고 살아오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다큐멘터리를 하고 싶어 했다. 뭘 해야지? 누굴 만나야지? 이런 고민을 되게 치열하게 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매순간마다 선택했던 것 같다. 인도로 가기도 하고, 출판사에서도 일하기도 했고. 영화 그리고 방송 오가며 일하기도 했다. 다행히 잘 해온 것 같다. 죽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다. 극영화를 해보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듣기도 하는데 나중에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 <춘희막이> 박혁지 감독과 준비하는 EBS <길 위의 인생>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방송과 영화라는 두 플랫폼을 어떻게 하면 잘 만들 수 있을지 그리고 기존의 방송 문법들을 좀 끌어안으면서 조금 더 색다르게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다. 그래서 애착이 많이 간다. 한창 편집을 하고 있는데 잘 되면 좋겠다. 또 다른 꿈이라면 얼마 전 입양한 고양이가 조금 덜 뛰었으면 좋겠다는 거. 그리고 가족들과 한 달 정도 아시아 여행을 하고 싶다.

▲ 이승준 감독과 진모영 감독은 다큐멘터리를 계속해서 제작하는 거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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