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문제도, 힘든 현실도, 결국 연대만이 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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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도, 힘든 현실도, 결국 연대만이 살길”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눈길’ 관객과의 대화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6.06.07 14: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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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위안부 관련 영화 <눈길> (연출 이나정, 극본 유보라)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GV)’가 이어졌다. 이 자리에는 유보라 작가가 참석해 대화를 나눴다. <눈길>은 지난해 광복 70주년 특집으로 KBS에서 방영된 2부작 드라마를 영화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부유한 집 딸이었던 영애와 가난한 집 딸이었던 종분이 어느 날 위안소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 서로 의지하게 되는 이야기와, 현재 시점에서 할머니가 된 종분이 불량 여고생을 도와주는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다음은 ‘관객과의 대화’ 일문일답.

▲ 영화 <눈길> (연출 이나정, 작가 유보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관객1 기존의 위안부 서사와 다르다. 특히 자극적인 장면이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위안소에서의 삶을 다룰 때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배치하고자 했는지 궁금하다.

유보라 작가 기본적으로 드라마여서 보여주는 데에 한계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로는 위안부가 소녀와 할머니의 이미지로만 각인되는데, 다른 면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래서 본래는 소녀의 이야기가 아닌, 살아남은 분들의 3-40대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그런데 살아남은 분들이 지금도 힘들게 살고 계신 이야기를 하고, ‘이분들이 사실 위안부셨어’ 하는 것이 소재주의로 보였다. 그래서 다 엎고, 그때의 이야기를 최대한 잘 보여주자는 생각으로 다시 만들었다.

또 하나는 위안부 이야기를 20대 배우들이 하게 된다면 선정적으로 보일 것 같았다. 그래서 감독님과 얘기할 때 당시와 마찬가지로 15-16세 나이대의 배우가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들을 배우로 했을 때, 이런 폭력적인 상황이 있었단 걸 우리가 사실대로 보여주는 건 또 하나의 폭력이 될 수 있으니 최대한 그런 부분을 뺐다. 대신 그들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이 위안소 안에서 연대하고 노래하는 게 동화적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이분들이 꼭 그렇게 끔찍하게만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그들을 버텨내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 지난 5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눈길>의 유보라 작가가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관객2 역사적 사실을 고취시키면서 재확립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따뜻함을 느꼈다. 보는 사람이 어떤 걸 느꼈으면 좋겠다고 의도하셨나.

유보라 작가 사실 현재의 이야기가 많이 잘려나갔다. (극중 할머니가 된 종분과 대화를 나누는) 뜨개방 아주머니들 이야기 대부분이 잘려나갔다. 위안부 이야기를 할 때, ‘일본은 나쁘고 한국은 피해자야’라고 이분법적으로 나누면 답이 없다. 대신 왜 이렇게 늘 폭력에 시달리는 분들이 계실까, 우리는 왜 이것에 무감각해질까를 생각해봤다. 그래서 뜨개방 아주머니들이 서로 연대하고 도와주는 모습, 고등학생과 할머니가 서로 도와주는 모습을 통해 이렇게 힘든 사회 속에서도 결국 연대만이 살길이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위안소 안에서는 따뜻한 모습들이 더 있었을 거다. 서로에게 서로가 있어서 살아남지 않았을까 라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 감독님도 위안소에서 아이들 셋이 만나는 장면은 조명도 따뜻하게 하려고 많이 노력하셨다.

사회 (손희정 평론가) 영화에서 일본군이 폭력을 행사할 때 일본군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국의 문제란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일본 제국의 책임을 지우고 대신 조선인 포주, 일본 민간 포주 등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담론이 퍼지기도 하지 않나. 하지만 영화 중간에 보면 일본제국이 이 아이들에게 간호사 옷을 입히고 사진찍는 장면이 나온다. 일본이 위안부로 끌고 간 사실이 알려졌을 때 윤리적 문제가 될 거란 걸 정확히 알았던 것이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어떤 역사관을 만들 것인가에 대한 답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관객3 아이들이 읽는 책이 ‘소공녀’다. 부유한 소녀가 읽을 수 있는 많은 책들 중 이 책을 설정한 이유가 무엇일까.

유보라 작가 그때 나왔던 책들 중 소녀들이 읽을 수 있는 것을 찾으니 뜬금없이 ‘소공녀’가 있었다. 그 당시 이걸 읽었을 거라 생각을 못했는데, 자료를 준비하면서 다시 읽으니 이 상황과 되게 안 어울리더라. 동화적이었다. 일부에서는 이런 식으로 동화처럼 그리면 현실이 반감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아이들도 이런 소공녀였다는 대비를 주고 싶었다. 영화 중간에 길가에 앉아있는 할아버지가 종분에게 ‘소공녀’는 ‘작은 공주’라는 뜻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이 원래는 더 길게 찍었는데 많이 잘려나갔다. 사실은 거기에 포인트를 맞춘 거였다.

사회 (손희정 평론가) 영화 안에서 아이들이 ‘소공녀’ 책을 통해 글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살아야한다'는 당위와 '살 수 없겠다'는 당위가 공존해 있는 시기에 종분과 영애에게 존재이유를 주는 게 아니었나 싶다. (영애의 장래희망이었던) ‘가르치고 싶다’는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었다고 보았다.

▲ 영화 <눈길> (연출 이나정, 작가 유보라)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관객4 극중 여성적 연대가 인상 깊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우리가 위안부 문제를 너무 여성적 연대로만 치우치게 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유보라 작가 고민했던 지점이다. 그럼에도 여성적 연대로 갔던 건, 폭력의 주체가 국가이긴 하지만 가해자가 이분법적으로 일본과 한국, 혹은 남자나 여자가 아니게 보여 지길 원했기 때문이다. 본래 대본을 쓸 때는 소년병처럼 나오는 일본 병사가 계속 주절거렸다. “나도 돌아가야 되는데” 하고. 위에서는 왜 그쪽을 보여 주냐며 편집을 하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어떻게 보면 억지로 끌려온 사람이 그쪽에도 있었다는 걸 통해, 더 큰 무언가가 뒤에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 (손희정 평론가) 덧붙이자면, 실제로 위안부 할머니들이 한국에 돌아왔을 때 굉장히 오랫동안 당신이 위안부 피해자였단 걸 말할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 가부장적 사회 때문이기도 했고, 한일 관계 문제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할머니들이 증언할 수 있었던 건 분명히 여성운동의 성과였고, 다른 여성들의 공감 덕분이었다. 따라서 이 문제에서 여성적 연대는 아주 중요하다.

사회 (손희정 평론가)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유보라 작가 개인적으로 소재주의로 안 빠지려고 고민했다. 그럼에도 보기 불편한 부분이 있었을 거다. 하지만 불편하다고 외면하면 해결되지 않는다. 이 문제에 대해 다른 국가, 더 큰 폭력에 대해 눈 감지 말고, 우리가 계속 지켜보고 있단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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