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DJ 최양락을 대하는 MBC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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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시사풍자 라디오의 몰락과 MBC ‘재미있는 라디오’ 의 폐지

“저는 다음 주 월요일 8시 30분에 생방송으로 돌아올게요! 웃는 밤 되세요~”

14년 동안 라디오를 진행한 DJ의 마지막 멘트였다.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MBC 라디오 춘하계 개편으로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이하 <재미있는 라디오>)가 끝이 났다. 2002년에 처음 시작해 14년을 함께했지만, 애청자들은 그의 끝인사조차 들을 수 없었다.

<재미있는 라디오>는 2000년대에 SBS <배칠수, 전영미의 와와쇼>와 함께 ‘시사풍자 라디오 전성기’를 이끌던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DJ 최양락과 게스트 배칠수는 김종필 전 국회의원,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성대모사와 풍자로 이뤄진 ‘3김 퀴즈’,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이어진 ‘대통퀴즈’, 그리고 ‘대충토론’ 등의 시사풍자 코너를 꾸미며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사랑받았다.

▲ 2002년 4월부터 2016년 5월까지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진행해왔던 DJ 최양락 ⓒMBC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고 시사풍자 라디오 프로그램이 하나, 둘 사라지던 시절에도 풍자의 강도는 약해졌을지 몰라도 굳건히 살아남았다.

물론 그 과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크고 작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에 걸리기도 했고, 2013년 ‘MB님과 함께하는 대충 노래교실’ 코너에서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의 비리를 풍자했다가 담당PD에게 ‘정직 6개월’의 중징계가 내려지기도 했다. 이후 법정 절차를 거쳐 PD에 대한 징계는 무효가 확정됐지만, <재미있는 라디오>를 바라보는 MBC의 시선이 어땠을지는 짐작 가능하다.

결국 2014년 ‘시즌2’라는 이름을 내걸은 <재미있는 라디오>는, 사실상 ‘더 이상 시사풍자 라디오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한 것과 같았다. 여전히 ‘재미있는’ 콩트는 진행됐지만, 시사풍자 콩트는 사라졌다. 2002년부터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3김 퀴즈’, ‘대충 토론’ 등의 풍자코너 대본을 써왔던 박찬혁 작가도 ‘그만뒀으면 좋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박 작가는 “하차 이유는 짐작하시는 것과 같았다”며 “일단 MBC가 아시다시피 그런 걸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고, 하던 프로그램들도 그렇게 없어졌다”고 밝혔다.

▲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MBC

어려운 상황 속에서 ‘버틴 게’ 신기할 정도로 최양락DJ의 의지와 열정은 남달랐다. 어떻게든 재미를 추구하며 청취자와의 만남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결국 이번 춘하계 개편 때 프로그램이 폐지됐다. MBC 라디오 한 관계자는 “몇 년 전부터 더 이상 시사풍자를 안 하지 않았나. 그 이후 청취율이 계속 하락해왔다”며 “내부에서 계속 논의가 있어왔고, 이번에 결국 그런 이유로 프로그램을 폐지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물론 청취율은 라디오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과연 최양락DJ만이 청취율 하락의 문제였던 것일까. 시사풍자를 프로그램 정체성으로 내걸고 시작해 사랑받아왔는데, 시사풍자가 사라졌으니 청취율 하락은 예견된 결과였다.  하지만 이때 MBC가 택한 방식은 시사풍자를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이었다. MBC 라디오국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기 개편의 일환이었다는 말밖에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게다가 이 이별의 과정 속에서 14년 애청자들은 마지막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DJ를 떠나보내야 했다. 5월 30일부터 개편이 이뤄지기 전, 최양락DJ는 5월 13일 방송을 평소와 다름없이 마쳤다. 아마 본인도 프로그램 개편 소식을 듣기 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5월 16일 방송부터 돌연 가수 박학기가 나와 “최양락DJ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대체DJ를 맡았다. 2주 동안 대체DJ 체제로 이어지던 <재미있는 라디오>는 5월 27일, “오랫동안 재미있는 라디오를 지켜주셨던 최양락 씨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마지막 방송에 함께하진 못했지만 수고 많으셨고 감사했다는 말씀 꼭 전하고 싶습니다”는 대체DJ의 멘트로 끝이 났다.

▲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마지막 방송 청취자 게시판 ⓒMBC

갑작스러운 이별에 청취자들은 당황했다. 프로그램 폐지에 대한 소식을 기사로 접한 청취자들은 방송 게시판을 통해 최양락DJ에 대한 고마움과, 이유도 모른 채 헤어져야 하는 것에 대한 답답함과 아쉬움을 토로했다.

방송 게시판에는 “최양락님 14년 동안 재미라 함께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양락님!! 그동안 정말 재미라 덕에 행복하고 웃을 수 있는 날이었어요. 마지막방송을 최부장님과 함께 얘기했음 좋았을 텐데...아쉽네요”, “양락디제이도 없고 재미라도 없고 막방이 녹음이고...14년이 참 허무하네요”, “2002년부터 14년 동안 함께해온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우리 아빠도 재밌게 들었는데...” 등의 반응들이 올라왔다.

일부 청취자들은 MBC를 비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골든마우스 얘기한 지가 엊그제인데 한마디 말도 없이...너무 합니다 MBC”, “그래도 13년 이상 하셨는데 팬들에게 인사할 기회조차 안주는 방송. 이게 무슨 재미있는 라디오야”, “인사도 없이 떠나셔서 저도 떠납니다. 재밌는 라디오 정말 재밌었는데 이젠 바이. 재미없어요”, “이렇게 또 하나의 시사풍자 프로그램이 사라지는구나...” 등의 말을 남겼다.

▲ 2014년 가을 MBC 표준FM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디지털 예쁜 엽서전'에 청취자들이 직접 만들어서 보낸 엽서 ⓒMBC

개편과 청취율을 이유로 돌연 하차 통보를 받은 최양락DJ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자의든, 타의든, 최양락DJ는 끝인사도 없이 14년을 함께한 청취자들과 이별했다.

6개월을 진행한 DJ도 마지막 방송 땐 눈물을 참지 못하고 이별하는 공간이 라디오다. 매일 2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DJ에게도, 청취자에게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감정을 주기 때문이다. 하물며 14년의 시간을 끝내는 일인데 이렇게 경우 없는 일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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