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런’보다 ‘볼넷’을 바라게 된 우리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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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보다 ‘볼넷’을 바라게 된 우리 모두에게
[되감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태풍이 지나가고’
  • 이혜승 기자
  • 승인 2016.07.26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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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어렸을 적 홈런타자를 꿈꾸지만 결국 하루하루 볼넷을 바라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런 우리에게 최고의 위로는 ‘힘내’라는 말보다 같은 처지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의 존재 아닌가. “홈런보다는 볼넷을 노렸다”는 극중 아이의 말은 영화 내내 귓가에 맴돌며 ‘실은 모두가 그래’라는 안도감을 준다. 그렇기에 영화가 끝난 후 마냥 후련할 수는 없지만, 복잡한 마음이 마치 태풍이 한껏 불고 지나간 듯 차분해진다.

27일 개봉하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대기만성형’ 소설가를 꿈꾸지만 결국 취재를 핑계 삼아 흥신소에서 일하고 있는 료타의 삶을 보여준다.

▲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끝내 철들지 못한 그는 아내 쿄코와 이혼했지만, 아들 싱고에게는 여전히 좋은 아버지이길 바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전 부인 쿄코를 몰래 좇으며 새로운 남자친구를 질투한다. 그러나 쿄코는 이미 “사랑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어른은”이라는 진리를 깨달아버린 후다. 그들 사이에서 아들 싱고는 너무 일찍 철들어버린 아이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복권에 당첨된다면 온 가족이 함께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진 어린 아이다.

태풍이 휘몰아친 밤, 이들은 료타의 어머니이자 싱고의 할머니인 요시코의 집에서 하룻밤 머물게 된다. 그때 이들은 비로소 서로가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다만 그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물론 이들 모두 '되고 싶었던 어른'이 되지는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아직까지도 대박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경륜에 돈을 날리는 료타의 모습은 보는 내내 어떻게 저렇게까지 찌질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영화가 다 끝나고 났을 땐 문득 저렇게 철없는 어른일지라도, 아이에게 만큼은 최선을 다하려 애쓰는 모습만으로도 조금은 원하는 어른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 그런 마음이 우리에게 왠지 모를 위로를 준다.

▲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도대체 언제까지 잃어버린 것을 쫓아가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그렇게 살면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은데... 행복이라는 건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받을 수 없는 거란다. 난 평생 누군가를 바다보다 더 깊이 사랑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살아가는 거야. 날마다 즐겁게.”

좀 더 큰 집에 사는 것을 평생 꿈꿨지만 남편이 죽은 후 연립주택에서 홀로 여생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 요시코의 삶은 언뜻 보기에 유쾌할 수만은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다고, 날마다 즐겁게 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관객에게 물어온다.

매주 복권을 사는 사람들을 누군가는 요행을 바라는 삶이라 손가락질 할지 몰라도, 현실은 교과서대로 살 수만은 없는 세상 아닌가. 영화가 끝나고 나면, 스스로를 조금은 한심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복권을 샀던 우리가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로또 당첨을 꿈꿀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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