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입력 2016.07.28 12:14
  • 수정 2016.08.22 17:08

세트미술 불안한 노동환경, 자부심으로 버티지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방송 스태프 연속 인터뷰] ① MBC아트 세트미술부 직원 A씨

한 편의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기까지 PD와 작가의 역할만 있는 게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보다 수백 배 많은 인원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연출과 대본, 이것을 완성시켜주는 음악과 조명, 그리고 배경은 방송이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이유다. 그렇기에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이들이 방송계에 대한 꿈을 꾸고 있지만, 그에 비해 좀처럼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다만 방송계에 들어와 마주하는 현실이 생각만큼 녹록지 않다고 들려올 뿐이다.

수많은 방송 스태프들은 어떤 마음으로 처음 방송 현장에 발을 디뎠을까. 또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방송 제작 현장에서 어떤 이들이 얼마만큼의 땀을 흘리고 있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 들어 보기로 했다. 이 인터뷰를 읽은 독자들께서 하나의 방송 프로그램이 끝났을 때, 한 번쯤 이들의 노고에 대해 떠올릴 수 있길 바라본다. 방송스태프 릴레이 인터뷰 첫 번째 주인공은, MBC아트 세트미술부 직원 A씨다. 인터뷰의 특성 상 방송 스태프의 처우에 대한 얘기가 빠질 수 없고, 현실에서 이런 부분들은 민감할 수밖에 없는 만큼, 향후 모든 인터뷰는 익명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편집자주>

#1. 종합미술의 완성, 세트미술부

“나무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다. 게다가 방송에 내 손으로 지은 세트가 나올 때 그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일산MBC 드림센터에서 만난 A씨는 세트미술 일을 시작한지 15년이 넘었다. 방송사 자회사 중 유일하게 세트미술부를 둔 곳이 MBC아트다. 이곳에 정직원으로 소속된 A씨는 세트팀 총감독 역할을 한다. 나머지 방송사들은 하청업체와 계약을 맺고, 이 안에서 사람들이 돌아가며 감독 역할을 맡는다.

세트미술은 디자인 파트의 설계로 시작된다. PD와 작가, 디자인팀, 세트팀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전체적인 설명이 있고, 이에 따라 디자인팀이 세부 설계를 마치면 세트팀이 실제 제작에 들어간다. A씨와 같은 총감독은 세트 제작에 좀 더 용이하게 그림을 그려 목공, 페인트, 전식, 작화 등 세부 담당자들에게 할당된 기간에 맞춰 작업을 지시한다.

예를 들어 통상의 일일드라마 하나를 시작하면 여자 주인공 방, 남자 주인공 방, 회장 집, 가난한 등장 인물의 집 등 여러 건물과 세트가 필요하다. 총감독이 이 모든 집과 방의 제작을 총괄한다. 보통 규모에 따라 1~3명만이 전체를 관리한다.

물론 드라마 세트만 제작하는 건 아니다. 같은 이들이 예능·시사교양 프로그램 스튜디오 제작도 담당한다. 그래서 일이 많을 때는 한 감독자가 동시에 총 20개의 프로그램을 담당하기도 한다. 드라마와 같이 한달 이상을 꼬박 붙어있어야 하는 작업이 끝나면, 바로 다른 프로그램 세트장에 투입되는 방식이다.

▲ 세트작업을 하는 과정 ⓒMBC아트

#2. 철수 작업 7년차, 기술을 배우다

“처음에는 이 일을 오래 해야지, 이런 게 없었는데 위에 선배들이 정직원이 될 수 있으니 열심히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그들과의 정, 그리고 직원이 될 거란 희망 때문에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정직원을 뽑지 않으니, 솔직히 이 일을 시작하지 말라고 하고 싶다. 정직원이 되지 않을 걸 알기에, 나조차도 후배에게 정이 안 간다.”

A씨는 십여년 전 세트 현장 용역으로 시작해 정직원이 된 케이스다. 처음엔 그저 막연히 방송 일이 재미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그곳의 ‘정’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지금껏 시간이 흘렀다. 처음 이곳에 발을 딛고 용역 신분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는 철거 작업만 했다. 예능과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경우, 스튜디오 공간은 한정돼 있고 매일 다른 프로그램의 녹화가 진행되기 때문에 야간에 세트 철수작업이 이어진다. 세트 팀 막내가 하는 일이 이 철야 작업이다.

A씨가 일을 하던 당시에는 한 조가 3일 단위로 움직였다. 첫 날에는 24시간 쉬지 않고 근무하고, 그 다음 날 하루를 쉬고, 셋째 날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을 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다행히 24시간 근무는 사라졌지만 스케줄이 빡빡한 건 여전하다. 벽을 뜯다 졸기도 하고, 벽 위에서 작업을 기다리다 잠들기도 했다.

A씨는 이 철수 작업만 7년 동안 하다 7년차에 겨우 목공 기술을 배웠다. 그나마도 당시 담당 부장이 커져가는 방송 산업 안에서 기술이 중요하다며 전 직원에게 기술 교육 활성화를 시킨 덕분이다. 지금 그분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현재 세트미술을 하는 사람들 중 A씨와 같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세트미술 담당자를 정직원으로 고용하는 방송사는 MBC 한 곳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방송사는 모두 하청업체와 계약을 한다. MBC아트 역시 직원을 뽑지 않은지 오래된 상황이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지금 세트미술 일을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은 하청업체의 용역 일로 시작해 어깨 너머로 배우는 수밖에 없다. 전문적으로 일을 가르쳐주는 곳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오픈세트 도색작업 ⓒMBC아트

#3. ‘방송 특성상’ 쉴 틈이 없다

“365일 중 쉬는 날을 세보라면, 주말을 합쳐 30일 정도 된다. 연차가 있지만 차라리 돈으로 받는다. 방송 쪽은 많이 짜다. 제작비는 정해져 있는데 연기자, 작가 등에게 돈이 나가고 나면 실질적으로 밑에 있는 사람들이 적은 돈을 가지고 나눠 갖는 거다.”

매해 방송광고 시장의 규모가 줄어들고 방송수익이 줄어들면서 방송사들은 제작비를 박하게 책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세트 제작 기간은 점점 촉박해지고, 한정된 인원으로 세트 제작 기한을 맞춰야 하니 쉴 틈이 없다. A씨는 일 자체는 너무 좋지만,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쉴 수 없는 게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A씨의 경우 평균적으로 주말까지 모두 합쳐 1년 365일 중 쉬는 날이 3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드라마와 같은 장기프로그램 제작에 한 번 들어가면 주말 근무가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주말 근무에 대해 대체휴가가 생기지만 3개월이 지나면 사용하지 못한다. 연차 휴가는 돈으로 대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돈으로 받는다. 어차피 여건상 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특히 드라마 세트 제작을 할 때는 평균 한 달 정도 드라마 세트장으로 출장을 나간다. 제작이 끝나도 휴가는 2일, 길어도 3일밖에 사용하지 못한다. 다른 프로그램의 총감독을 할 인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곳에도 투입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또 사극과 같이 현장에서 세트팀의 손이 필요한 경우에는 제작 기간이 끝날 때까지 현장에 상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실질적인 노동 시간으로 따지면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A씨가 막내 용역 직원으로 일할 때는 한 달 평균 150만 원 정도 받았고, 현재 정직원이 된 후 평균 10년차 이상의 직원은 한 달 기준 250만 원 정도를 받는다.

하청업체의 경우 일이 정기적으로 있지 않고, 매번 계약을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형편이 다르다. 하지만 평균적으로 따졌을 때 받는 돈은 비슷하다. 독립적으로 계약을 맺고 일하는 사람들의 경우 일당이 하루에 15만원이지만, 역시 필요할 때만 고용이 되기에 안정적인 수입을 벌기 어렵다. 이들은 불안한 노동여건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 세트 작업에 포함되는 포스터 및 간판작업인 '작화' 제작 과정 ⓒMBC아트

#4. 산업이 커질수록 노동환경은 나빠지는 아이러니

“방송이 고급화되고 세분화되면서 스튜디오 작업장이 늘어났다. 하지만 오히려 프로그램 제작 단가는 줄어들고, 정직원을 뽑지 않아 1인이 해야 하는 일의 양은 늘어났다. 이 일은 미래가 불안하다. 앞으로 점점 더 힘들어질 게 눈에 보인다.”

세트미술부는 몸을 쓰는 일을 해야 하다 보니 잔병을 달고 산다. 큰 사고가 났을 때는 산업재해 처리를 해주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잔병이 문제다. 특히 정직원을 뽑지 않아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도 일을 줄이지 못하는 구조가 되면서 갈수록 목과 허리, 손 등에 통증이 심해진다. 그나마 MBC아트 소속 직원의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하청업체 직원들은 전혀 건강 관련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작업환경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 스튜디오 세트 제작은 주로 지하 2층 공간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세트 작업 특성상 지하 폐쇄된 공간에서 나무를 잘라야 하니 먼지가 많다. 또 어두운 곳에서 세밀한 작업을 해야 하니 시력을 잃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노사관계에서 환경개선에 대한 말을 꺼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히 하청업체의 경우에는 계약을 갱신해야 하기 때문에 불만은 꺼내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더 큰 문제는, 여타 문제들이 나아질 기미 없이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A씨가 일을 시작한 뒤로 방송 환경은 많이 변했다. 방송 산업이 점점 더 커지고, 그에 따라 세트미술 역시 점점 더 세밀해지고 고급화됐다. 하지만 정작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물량은 세 배가 늘었는데, 오히려 제작 단가는 줄어들고 1인이 해야 하는 일의 양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더 이상 정직원을 뽑지 않으니 밑에서 일하던 사람들 중 기술을 갖춘 사람들이 외부로 나가 독립적으로 일을 하게 되면서 하청업체가 점점 많아졌다. 그 사이 경쟁도 치열해져 계약을 따내기 위해 전체 인건비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 용인 대장금파크 '대전(The Great Hall)' ⓒ대장금파크 홍보영상

#5. 그럼에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드라마는 MBC의 상징이다. 그걸 우리 손으로 만드는 거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한옥의 매력을 느끼고 기술을 터득해왔다. 사극 세트장은 지어두면 보존도 된다. 용인에 새로 지은 '대장금파크'도 우리가 직접 세웠다.”

인터뷰 내내 A씨에게서 세트미술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이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었냐는 질문에, 단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만큼 목공의 매력, 세트장만의 매력을 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트 제작 기술은 한 번 배우고 나면 전문 기술로 키워나갈 수 있다. 나무로 다양한 공간과 소품을 창조해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가구 공방을 하던 사람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기에 더, 일을 계속 하는 것과 몸이 힘든 것은 별개의 일이다. 방송 노동 환경을 ‘좋아서 하는 일 아니냐’, '힘들면 그만하라', ‘방송 일은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덮고 넘어가기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