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통제’를 통제할 수 있는 법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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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포커스] ②낙하산 사장과 ‘이정현 녹취록’ 방지부터 스스로 무력해진 방통위 개선까지

제53회 방송의 날(9월 3일)을 앞두고 이른바 방송 정상화 법안들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는 목소리들이 방송계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여소야대(與小野大)로 구성된 20대 국회의 첫 번째 정기국회가 1일 시작된 가운데, 임기 시작 이전부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에 뜻을 모으며 정기국회 내 처리를 공언한 야당의 모습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시작부터 파행이긴 하지만, 정기국회에 주어진 100일의 시간 동안 야당이 여당의 협조를 끌어내 처리해야 할 법안들은 무엇이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또 이 법안들이 적용될 경우 방송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제2의 김재철 방지법= 해직언론인 문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다 해고된 언론인이 아직도 아홉 명이나 있다. 이들이 낙하산 사장을 반대한 이유는 간명하다. 공영방송의 사장을 뽑는 단위는 표면상 이사회이지만, 이사회 구성의 주체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이며, 방통위의 의사결정을 맡는 위원장과 상임위원의 다수를 대통령과 여당에서 추천‧선임하기 때문이다. 층층이 단계별로 대통령과 여당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사장이 사실상의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방송사 내부의 인사권을 활용해 보도‧제작 단위에 최고 인사권자, 즉 대통령의 뜻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할 경우 방송법 등에서 명시하고 있는 방송‧제작의 자율과 독립은 의미가 사라진다. 즉, 지배구조가 공정언론을 좌우할 수 있는 것으로, 해직 언론인들은 이런 상황을 우려했거나, 혹은 목도한 후 개선을 주장하다 해직됐고, 지금도 해직 언론인으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

▲ 야3당이 7월 21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법안의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법안 발의에는 야3당 162인의 국회의원이 참여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 소속 국회의원 162인(대표발의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월 21일 국회에 제출한 방송법 등 4개의 언론관련 법안, 이른바 지배구조 개선 법안에서 방통위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선임 권한을 국회로 넘기도록 한 이유다. 또 여야 7대 4(KBS이사회) 6대 3(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7대 2(EBS이사회) 등 여권 몫이 압도적인 이사회 구성을 여야 7대 6의 비율로 조정토록 했다. 또한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할 때 이사회에 사장추천위원회 구성을 의무화 하도록 했으며 재적 이사 3분의 2 이상이 찬성토록 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도록 했다. 인사권자의 뜻대로 사장을 선임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일종의 방화벽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련의 절차를 거쳐 선임된 사장이 임원 등의 인사를 통해 보도‧제작 과정에 개입할 수 없도록 취재‧제작‧편성부문 종사자 대표와의 동수 추천을 통해 편성위원회를 구성할 의무를 부여했다. 노사에서 추천한 편성위원들은 방송편성 규약의 제‧개정과 방송편성 책임자를 임명제청할 수 있다. KBS에서 발굴하고도 내외부의 압박에 반쪽 방송으로 끝난 <훈장> 등의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사실상 노사 동수의 편성위원회 구성을 의무화하고 권한을 강화하는 이 같은 내용의 개정안은 공영방송을 비롯한 지상파 방송만이 아니라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등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사장도 안 된다= 방송법 제4조(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 2조는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해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이 조항에서 말하는 “누구든지”에 사장 등의 경영진이 포함되는 건 방송가의 공공연한 상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동법 제4조 3항은 방송사업자로 하여금 방송편성 책임자를 선임하고 그의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장 등 경영진이 마음대로 개입할 수 없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사장 등 경영진은 “누구든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백종문 녹취록’에서 백종문 당시 미래전략본부장이 편성에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을 때도, ‘이정현 녹취록’ 폭로의 당사자인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참사 직후 길환영 당시 KBS 사장의 보도 개입을 증언했을 때도 방송법 제4조 2항의 “누구든지”의 범위에 대한 논란은 등장했다. 방통위 내부에서, 또 야당에서 두 개의 녹취록 논란을 놓고 방송법 제4조 2항 위반을 지적하며 진상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할 때마다 대통령이 선임한 방통위원장과 여당은 “방송법에서 적고 있는 ‘누구든지’는 외부의 누군가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진상조사 요구를 반박하고 묵살했다.

▲ <뉴스타파> 1월 25일 방송 ‘백종문 녹취록’ 관련 ‘MBC 고위간부의 밀담, 그 둘은 증거없이 잘랐다’ ⓒ<뉴스타파> 화면 캡처

12인의 더불어민주당 의원(최명길 의원 대표 발의)이 8월 17일 국회에 제출한 방송법 개정안에서 제4조 2항의 “누구든지”를 “정부 및 특정 단체의 관계자, 방송사업자의 임직원 등 누구든지”로 수정한 이유다. 아울러 제4조 3항에서 방송편성책임자를 선임해 자율적인 방송편성을 보장하도록 한 것을 구체화했다. 방송편성책임자와 방송제작책임자, 보도책임자 등으로 각각 세분화 해 자율적인 방송제작과 편성을 보장하도록 했다. 즉, 경영진이라 하더라도 보도‧제작‧편성에 개입하는 행위를 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한 것이다. 또 제4조 6~8항을 신설해 편성 개입 등의 위반 행위가 있을 경우 방통위로 하여금 직권으로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방송사로 하여금 협조 의무 등을 부과했다.

■ 무기력을 방패삼는 방통위는 그만= 최명길 의원은 방송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날 방통위 설치법 개정안도 함께 제출했다. 방송법 개정에 따라 방통위 설치법도 개정해 방통위의 조사 권한과 의무를 부여한 것이다. 사실 방통위의 조사 권한을 둘러싼 논란은 여러 차례 반복됐다. 방송 재허가(재승인)과 공영방송 이사 선임 등을 맡고 있는 만큼 조사와 시정명령 등의 권한이 있음에도 최성준 방통위원장을 비롯한 다수의 여권 추천 위원들은 언제나 “(조사 등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지 검토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특히 최성준 위원장의 경우 ‘백종문 녹취록’이 등장했을 땐 ‘백 본부장은 내부인이기에 방송법 제4조 2항에서 말하는 ’누구든지‘에 해당하지 않는다“(1월 27일)고 했다. 반면 ’이정현 녹취록‘ 등장 이후 야권에서 ”청와대 홍보수석은 외부자인 만큼 방송법 제4조 2항 위반을 조사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최 위원장은 ”이미 (세월호 특조위에서 고발해) 검찰에서 수사 중이니 방통위가 나설 필요가 없다“(7월 11일)고 주장했다.

최명길 의원은 “방송법에서 정하고 있는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앞장 서 지켜야 할 방통위의 수장이 방송법의 핵심 가치 훼손에도 ‘나 몰라라’하는 걸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갖가지 변명으로 방통위가 스스로의 권한을 무력화 시키는 일을 막겠다고 밝혔다.

▲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이 7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이날 ‘이정현 녹취록’의 방송법 제4조 2항 위반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이라며 개입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혀 비판을 받았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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