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건너간 ‘꽃할배’의 이유 있는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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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WW 2016] ‘글로벌 포맷 컨퍼런스’…‘슈돌’과 ‘꽃할배’로 본 K포맷 북미 수출의 현주소와 미래

8월부터 미국 NBC에서 미국판 <꽃보다 할배>(미국판 제목 <Better late than never>, 이하 <꽃할배>)가 방영됐다. 한국 방송사 최초로 미국에 수출한 프로그램 포맷이 실제 방송까지 이어진 사례다. 해당 방송은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아메리칸 아이돌>에 이은 일간 시청률 2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오는 11월에는 미국판 <슈퍼맨이 돌아왔다>(미국판 제목 <Breaking Dad>, 이하 <슈돌>)가 디스커버리의 라이프, TLC, 패밀리 등 세 개 채널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지상파 방송으로는 최초로 미국에 수출된 프로그램 포맷이 실제 편성까지 이어진 경우다.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 지역으로의 한국 프로그램 포맷 수출은 이미 활성화된 지 오래다. 하지만 북미, 유럽 등 다른 지역으로의 진출은 좀처럼 쉽지 않았다. 포맷 수출 계약이 성사된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실제 방송 편성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엎어지기 일쑤였다. CJ E&M <꽃할배> 역시 계약 후 편성 확정까지 2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 9월 1일 'BCWW 2016' 글로벌 포맷 컨퍼런스에서 (왼쪽부터) ‘더포맷피플’ 토니 그레고리 컨설턴트와 저스틴 스크로기 부대표가 한국 프로그램 포맷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PD저널

지난 1일 오후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BCWW(Broadcast Worldwide) 2016’에서는 KBS <슈돌> 북미 수출 담당자였던 전제연 KBS TV제작 투자담당 그룹 팀장과 CJ E&M <꽃할배> 수출 담당자였던 황진우 CJ E&M 글로벌 콘텐츠개발팀 팀장이 북미로의 포맷 수출 과정에 얽힌 얘기들을 전했다. 더불어 ‘더포맷피플’의 토니 그레고리 컨설턴트, 저스틴 스크로기 부대표 등 세계적인 포맷 수출 전문가들이 한국 포맷이 북미 등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요건에 대해 조언했다.

# 중국과는 다른 미국…인내심+제작 ‘바이블’ 중요

미국으로의 포맷 수출은 계약 체결 과정에서부터 실제 제작까지 중국으로의 포맷 수출 과정과 매우 달랐다.

우선 계약하는 부분에 있어, 중국과는 주로 방송사와 직접 계약을 해왔다. 계약 후 편성까지도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방송사와 계약을 맺을 때는 중간 매개자가 필요하다. CJ E&M은 영미 배급사 ‘스몰월드’와 협업했고, KBS는 미국에서 방송 관련 사업을 하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를 거쳤다.

문제는 이 과정이 그리 수월하지 않다는 점이다. 전제연 KBS TV제작 투자담당 그룹 팀장은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이었다. 그 사이 내부갈등도 많았다”며 “포맷에 자신감이 있다면 첫 계약 후에도 실제 제작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나가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제작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 중국은 한국에서 해당 프로그램을 연출했던 PD가 일명 ‘플라잉 PD’로 중국 현지에 나가 프로그램 기획, 제작, 편집 과정을 함께 한다. 

반면 미국은 현지 제작진이 한국에서 건네준 제작 ‘바이블’을 토대로 프로그램을 제작한다. <꽃할배>의 경우 500장에 달하는 분량의 바이블을 전달했다. 제작 과정에서 분명히 지켜야 할 부분, 어떤 지점에서 재미를 뽑아내고 어떤 감정 선을 가져가야 할지, 어느 부분을 리얼리티로 살리고, 어떤 부분을 설정으로 가져갈지 등을 정리한 가이드라인이다. <슈돌>의 경우에도 “제작 현장을 찾아가니, 현지 제작진이 바이블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궁금한 점을 질문했다”고 한다.

▲ 미국 NBC에서 지난 8월 방영한 미국판 <꽃보다 할배> (미국판 제목 'Better late than never') ⓒSky Life

황진우 CJ E&M 글로벌 콘텐츠개발팀 팀장은 “미국은 바이블에 대한 의존이 심하다”며 “(그들은) 바이블이 얼마나 디테일하게 준비돼있는가, 바이블에서 어떤 부분을 현지화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아직 방송사에 포맷 전담 팀이 없다는 것이 큰 약점이다. 한국 방송사 최초로 포맷 전담 부서를 만든 곳은 CJ E&M이었다. 최근에는 SBS에서도 포맷 전담 팀을 구성했지만, KBS와 MBC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바이블 제작도 어렵다. 전제연 팀장은 “미국 수출 당시 포맷 전담팀이 없다보니, 제작이 끝나고 (제작진이) 모두 흩어져 버려서 이미 다른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PD와 작가를 설득해 바이블을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고 밝혔다

# 북미가 원하는 트렌드…‘임팩트’ 있는 결말, ‘모바일’ 활용

그렇다면 지금, 북미・유럽 등 세계가 원하는 프로그램은 무엇일까. ‘더포맷피플’의 토니 그레고리 컨설턴트와 저스틴 스크로기 부대표은 이날 컨퍼런스 참석자들과 한국 프로그램 10여개의 파일럿을 함께 보며 조언했다.

무엇보다 한국 콘텐츠는 ‘결말’이 약하다는 지적이 거듭됐다. 저스틴 부대표는 “한국은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마지막에 상투적인 교훈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다른 국가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마치 용을 죽였으면 소년을 얻는, 확실한 결과가 있는 장황한 엔딩을 원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SBS <백 투 마이 페이스>는 명확하게 엔딩을 터트린다는 점에서 흥미롭다고 전했다.

미국은 시즌제가 정착됐기에 시즌이 거듭될 수 있는 포맷을 중요시하기도 한다. 일례로 KBS <레이디 액션>과 채널A <불멸의 국가대표>에 대해 저스틴 부대표는 “이렇게 과거 전성기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포맷은 흥미롭긴 하지만 한 시즌밖에 가지 못 한다”며 “시청자들은 다음 시즌에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더해 ‘시간여행’과 ‘데이팅쇼’가 좀처럼 소구되지 않는 것도 세계적인 추세다. MBC <미래일기>, CJ E&M <렛츠고 시간 탐험대>에 대해 저스틴 부대표는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현재 시장에서 시간여행 포맷은 잘 팔리지 않는다. 영국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 영국 itv2 〈love island〉 ⓒ화면캡쳐

한편 북미 역시 ‘모바일 시대’로 나아가고 있는 만큼, TV를 넘어 시청자들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모바일 플랫폼, 그리고 SNS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은 상황이다.

최근 북미 방송가에서 가장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꼽히는 <러브 아일랜드>는 영국 ITV의 데이팅 리얼리티쇼다. 2005년에 방영됐던 동명의 프로그램을 ‘멀티 플랫폼’을 활용해 새롭게 탄생시켰다. TV에서는 매일 밤 9시에 방영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유튜브 등 모바일로 방송을 보고 출연자에게 투표를 하는 형식이다. 그날의 투표는 바로 다음날 방송에 반영된다.

마이크 빌 ITV 스튜디오 EVP는 “이 같은 형태가 젊은 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이끌어내고 시청 형태를 변화시켰다”며 “지금 국제 시장 트렌드는 바로 이것”이라고 밝혔다.

# 어려운 지금, 포맷 수출엔 기회의 시기

한국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와 더불어 모바일 시대가 다가오면서 전통 미디어인 TV는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관계자들은 “그래서 지금이 포맷 수출 적기”라고 말한다.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비용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반면 이미 성공 사례가 있는 포맷의 경우 제작에 들어가기가 훨씬 수월하다. 데이비드 웨일랜드 BBC 월드와이드 아시아 EVP는 “이미 짜여 진 플롯과 스토리를 조정하는 것이 더 적은 투자로 더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방안”이라고 말했다

▲ 해외에서 한국 방송 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전용 애플리케이션 '드라마피버(Drama Fever)' ⓒ드라마피버(Drama Fever)

게다가 이제는 세계 각국에서도 한국 프로그램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시대가 됐다. 김일중 SBS 글로벌 제작부 차장은 “예전에는 세일즈가 프로그램을 들고 나가 발품을 팔아야 했다면, 지금은 다른 국가에서도 인터넷으로 방송을 보고 먼저 제안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며 “실제로 파일럿 방송 바로 다음날 해외에서 연락이 오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특히 중국, 동남아 시장을 넘어 북미, 유럽 등지에서도 K팝 마니아를 중심으로 한국 문화가 확산되면서 비키(Viki), 드라마피버(Drama Fever) 등 한국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을 전문으로 내보내는 플랫폼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꽃할배>, <슈돌> 등 북미 수출 성공모델이 나온 만큼 더 적극적으로 북미를 향한 포맷 수출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마사 엔데몰-샤인그룹 CEO는 “한국이 과거에는 폐쇄적인 시장이었기 때문에 포맷 회사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흥미로운 주제가 많이 생겼고, 어떻게 국제적인 감각으로 어필하느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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